[특집 및 특별기고]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연원(淵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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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충스님 / 2017 년 1 월 [통권 제4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353회 / 댓글0건본문
지난해 12월 3일 열린 한국선학회 가을국제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한 원충 스님이 ‘참가기’를 보내왔다. 원충 스님은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하나조노 대학에서 ‘『보장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제방에서 정진 중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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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년 한국선학회 가을국제학술회의의 주제는 『종경록(宗鏡錄)』를 편찬한 영명연수 선사, 그의 돈오, 견성, 무심이었습니다. 백련불교문화재단과 한국선학회 공동주최로 마련됐으며 특히 학술회의가 열린 연세대 학회장소가 원택 스님의 학창시절 강의실이었고 40년만의 모교방문이었다고 합니다.
2016년 12월 3일 열린 한국선학회 가을국제확술회의 모습
한국선학회에서 영명연수 선사의 사상이 재조명되고 또한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의 실천론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에서 『종경록』을 많이 인용한 것에 대해서 한국학계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이유인즉 『종경록』의 바탕사상이 ‘돈오점수’, ‘정토선’이라는 시각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원택 스님이 오랫동안 간행되지 못했던 『종경록』의 촬요서인 『명추회요』를 출간하게 되면서 『종경록』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일본의 학자가 『종경록』은 선문의 입장에서는 ‘돈오돈수’라는 주장으로 학위논문을 발표하면서 원택 스님께서도 큰 동지를 만난 것 같이 흐뭇해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중국,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께서 『선문정로』의 『종경록』 인용에 대한 학견(學見)들을 내놓게 되어 성철 스님의 사상이 국제 학자들에게도 알려지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일본학자의 논평을 의뢰받고 읽다보니 성철 스님 수행론의 연원을 찾는 하나의 키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대(唐代, 618~907), 오대(五代, 907~960)의 순수선 시대의 실천사상과 북송(北宋, 960~1127)시대의 공안선 수행론의 연결고리에는 『종경록』이 있다는 것은 학계의 정론입니다. 저의 학문의 스승이시며 현대 선학(禪學)을 세우신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교수는 “불교, 선불교(禪佛敎)의 종합 사전적 의의가 있고 돈오사상, 돈오 실천론의 총괄적인 지침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종경록』 100권이라는 방대한 내용에서 성철 스님의 선지(禪知)에 의한 『선문정로』의 1장을 ‘견성즉불’이라고 한 명제, 그리고 돈오돈수를 압축시킨 첫 줄의 인용이 『종경록』 ‘표종장’ 일구(一句)입니다.
성철 스님과 연수 선사의 선사상 동이(同異)
중국의 위도유(魏道儒) 북경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교수는 ‘성철과 연수의 선사상 동이(同異)’에서 『종경록』을 심학(心學)으로 보고 혜능(慧能) 이래의 선사상을 계승한 단어가 ‘견성명심(見性明心)’이라고 정의하며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 서언 “선문은 견성이 근본이니, 견성은 진여자성을 철견함이다.”를 인용하며 ‘견성명심(見性明心)과 같다고 보면서 견성에 대해서 비교분석하였습니다. 다른 점은 ‘견성(見性)’의 수행법으로 연수 선사는 ‘선교융합(禪敎融合)’을 주장하고 불교규정의 만행(萬行)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에 성철 스님의 수행법은 연수 선사 시대에 없었던 공안(公案)참구에 의한 수행으로 당말오대(唐末五代) 시기의 순선(純禪) 사상과 북송말년에 유행한 화두선을 계승했다고 지적합니다.
야나기 교수의 발표문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는 원충 스님
더욱이 성철 스님은 ‘돈오돈수’를 주장하며 하택, 규봉 선사의 ‘돈오점수’를 비판한 것은 연수선사의 선교융합사상을 비판한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돈오돈수를 주장한 이유는 ‘금생성불’
야나기 미끼야스(柳幹康) 교수가 발표한 종밀 선사의 돈오점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쓴 서문(自序)에서 “종밀은 숙생에 어떻게 이러한 마음을 훈습하였는지 모르지만, 스 스로 아직 해탈하지 못하였으나(自未解脫)”고 설하고 있듯이 종밀 자신은 ‘증오(돈오 돈수)’를 저 먼 곳에 설정하였습니다. 더욱이 종밀의 수증론은 시작점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무시이래로 계속해서 윤회하였기 때문에 과거세의 ‘점수’ 역시 시작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수 선사의 『종경록』에 나타난 돈오돈수에 대해서는 인도불교의 성불론, 그리고 중국불교의 동진(東晋), 수당(隋唐)의 교판론사(敎判論師)들이 역설한 수증론에서는 ‘이생에서 기약할 수 없는 성불론이었는데 당대(唐代)의 초기선종은 ‘돈오돈수’하면 ‘금생성불’ 할 수 있다는 것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논증합니다. 그러면 연수 선사가 무엇 때문에 ‘돈오점수’를 중시하지 않고 ‘돈오돈수’를 중시하였을까? 연수 선사가 돈오돈수를 주장한 이유는 ‘금생성불’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조사선과 간화선을 양립
야나기 미끼야스(柳幹康) 교수의 논문을 읽으며 성철 스님이 당오대(唐五代, 618~960)의 순수선시대의 조사선과 북송(北宋, 960~1127)의 간화선을 양립시켰던 키워드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몇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연수 선사가 “상상근(上上根)의 사람은 미세한 망념이 사라진 붓다의 경지”, “성불한 사람은 즉 돈오돈수”, “부처와 같이 돈수를 행한다” 등의, 부처가 행할 바인 ‘돈수’를 규정하였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십지(十地) 위의 불지(佛地)이고 돈수행(頓修行)이란 불행(佛行)인가였습니다.
야나기 교수의 답변입니다. 지적하신 대로 연수 선사의 돈수는 ‘부처와 같은 실천’이고 연수 선사가 상상근(上上根)의 실천으로 제시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의 돈수라는 것은 모든 부처가 완성해야 할 ‘불작불행(佛作佛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수 선사는 ‘돈오돈수, 더욱이 점차(漸次)가 없다’고 말하고 ‘돈오돈수’의 자리에서는 어떠한 수행의 단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돈오돈수’의 최고의 경지에서는 방편으로써 설정된 일체의 단계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 제1장의 ‘견성즉불’ 첫 구에서 『종경록』 ‘표종장’에 의거해서 “견성하면 당하에 무심하여 10지 등각도 초월하므로 약과 병이 다 필요 없어진다고 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10지 등각도 초월한 경지의 견성을 해야 하고 그런 경지가 ‘묘각 불각지’이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아닌 ‘견성즉불(見性卽佛)’이라고 정론하셨는데 『선문정로』의 『종경록』 인용부분을 통해서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의 입장과 그 의의’를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야나기 교수의 두 번째 답변입니다. “성철 스님이 『종경록』을 매우 높게 평가하시고 계시다는 것은 『종경록』을 연구하는 저에게는 성철 스님한테 눈도장을 받은 것 같아서 너무 감사히 생각합니다. 실제로 『종경록』이 송나라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전개를 생각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께서 인용하신 ‘纔得見性,当下無心. 乃薬病倶消, 教観咸息’은 저도 박사논문에서 인용한 것이기에 이상한 인연을 느낍니다. 이 한 문장은 사상적으로 종밀 선사와 연수 선사의 다른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종밀 선사는 『都序』에서 돈오점수의 과정을 아픈 사람의 회복과정에 비유해서 설명하며 ‘돈오(解悟)’는 아픈 사람이 약을 얻어서 목숨을 건진 상태, ‘점수’는 그 후에 점차로 회복해 가는 상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종밀 선사의 생각에는 약을 얻고 돈오해서도 병은 바로 낫지 않고 이후에도 요양이 필요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편 연수선사의 돈오는 ‘약과 병이 함께 없어지는 경지, 단적으로 말하면 본래 부처라는 자각(自覺), 행동하는 이상 이미 번뇌도 없앨 것도 필요 없는 경지입니다.
제가 주제넘지만 이런 의미에서 성철 스님이 연수 선사의 견성(見性=頓悟)를 설명하는데 앞의 글을 인용하신 것은 참으로 정확하다고 감탄한 바입니다. 또한 ‘견성성불’이 아니고 ‘견성즉불’이라는 지적에 있어서도 저는 연수 선사의 사상을 명확하게 파악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견성해서 부처가 된다(見性成佛)’는 것보다도 ‘견성 그대로가 부처(見性即佛)’라는 것이 연수 선사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맺는말
성철 스님은 ‘간화선 수행을 통한 돈오돈수행’을 과연 어떻게 계승하고 승화했는가? 서진(西晉, 265년~317년) 시대의 승조(僧肇)의 이름을 빌려서 저술된 『보장론』(800년대 초기 저술)이 초기선종의 ‘돈오사상’에 근거하고 있고 돈오돈수의 실천론인 『종경록』이 『보장론』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은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송대의 공안선에서 『보장론』이 ‘공안보고(公案寶庫)’로서 여러 개의 선어(禪語)가 ‘고측공안(古則公案)’이 된 것도 이러한 사상적 배경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돈오사상의 원류는 반야공사상의 정립에 새로운 장을 연 승조(僧肇)가 저술한 『조론(肇論)』에 있고 그 이름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선종의 이유 또한 ‘돈오돈수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철 스님의 ‘간화선 수행을 통한 돈오돈수행의 구조와 연원’은 다음과 같이 요악할 수가 있습니다.
반야공(般若空) 사상의 정립자 승조와 그의 돈오의 권위를 통해 초기선종의 돈오사상과 『보장론』 돈수의 사상체계가 세워지고 오대(五代)의 『종경록』의 돈오돈수 실천론이 완성되고 북송(北宋)시대에 선어록(禪語錄)으로서의 『보장론』은 공안보고(公案寶庫)가 됩니다.
이러한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실천수행은 반야공수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간화선의 공안 또한 돈오돈수의 당처인 것입니다. 화두수행 자체는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등에서 말씀하시는 중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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