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오늘 밥 먹으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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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2019 년 5 월 [통권 제7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468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오늘 밥 먹으며
오늘 밥 먹으며
꽃잎 지는 소릴 듣는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밥을 먹는지, 꽃잎이 지는지
숟가락을 놓았다
몇 자 고치다 만 글자들도
잔밥 속에 함께 버린다
밥이 법法이라, 법도 버린다
한 때, 저 흩날리는 불두佛頭를 따라, 왔다 갔다
맨발로 탁발하러 떠난 1,250 송이의 희망이, 고요히 시드는데
부디 양지바른 먼지 위에
묻어다오
하마터면 너무 또렷했을 실망을
가려워도 긁을 수 없는 등처럼 그냥 그대로 눈감아다오
끄덕끄덕 수긍하며, 차량에 차량을 달고 가는 밤 열차의
쓸쓸한 탁발 행렬처럼
자칫 내 실수로 오늘은
꽃이 나를 창가에 포박해두고,
대신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만 다 먹은 죄 때문
산골짜기 밭에다 감나무를 심어 두 번째 수확을 했다
지난 해 열 개, 올 해는 열일곱 개
책장 위 끄트머리에다 쭈-욱 널어놓고
홍시가 될 때마다 먹었다
감은 마음속으로, 마음과 함께 익어 홍시가 되어갔다
하루에 하나씩…, 일주일, 이주일…
먹어도 먹어도 아, 끝이 없는 홍시를
나는 아마 수 백 개는 더 먹었을 거다
마음속으로 쳐다보는 그것은 안 먹어도 늘 먹은 것이다
그 많던 감을 몰래, 혼자 다 먹은 죄 때문에
올해는 혹시나 감이 열리지 않을까
솔직히 쪼매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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