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불서(佛書)를 기증한 김병룡 거사님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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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7 년 4 월 [통권 제4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92회 / 댓글0건본문
성철 큰스님께 『명추회요(冥樞會要)』 번역을 허락받은 지 23년만인 2015년 7월에 책을 내면서 ‘해제’를 쓸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동국대 불교학술원 박인석 교수님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박 교수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백련암 아비라 기도를 몇 번이나 동참하였고, 큰스님께 불명까지 받은 인연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스님! 해제를 쓰기 전에 성철 큰스님의 장경각을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큰스님께서 평소 보셨던 『종경록』을 보면 해제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불교학술원 이종수 교수님께서 아카이브 불전집성사업으로 큰스님 서고의 장서를 정리할 때 동참했던 보살님이 큰스님 서적들을 한 번 더 살펴보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하여, “다 큰스님을 위한 일인데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고 하였습니다.
1970년 백련암 장경각 앞에 선 성철 스님
그 후 두 분이 백련암 장경각에서 하루 종일 책을 살펴보며 기록을 하다가 저녁 늦게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3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난 달 중순 박인석 교수님과 한 보살님이 재단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박인석 교수님이 “스님! 이분이 그때 저와 함께 큰스님 장경각을 살펴본 서수정 박사입니다.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게 되어서 스님께 꼭 박사학위 논문을 드리고 싶다고 해 함께 왔습니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 박사님이 박사논문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장경각 서고의 장서를 늘 아끼시고 저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으시고 무슨 책이 중요한지도 평생 설명이 없으셨기에 지금까지 귀중한 생각으로 보관만 하여 왔기에 두 박사님이 떠나고 난 뒤에 서수정 박사님의 논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불서간행과 유성종(劉聖鐘)의 덕신당서목(德新堂書目) 연구’라고 제목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논문집을 펼치고 목차를 보는데 ‘Ⅳ. 덕신당서목의 편찬과 현존불서(p.167) 아래 3. 덕신당서목 불서의 현존본(p.202) 1. 백련암 퇴옹성철 소장본(p.203)’이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와 여기에 옮겨 봅니다.
백련암 장경각의 책들을 살펴보고 있는 필자
“현재 경남 합천 해인사 산내암자인 백련암에는 퇴옹성철(1912~1993) 스님이 생전에 소장했던 책들이 고심원 아래 법당에 소장되어 있다. 불교 고문헌을 중심으로 분류한 약 2000여 책 중 한국본은 400여 책이며, 나머지 1600책은 중국본이다. 중국본 중 일반고서는 140여 책, <가흥대장경>의 단역 경전이 180여 책이며 나머지 1280여 책이 대부분 근세 금릉각경처(金陵刻經處) 등에서 간행된 총서 형태의 책들이다. 퇴옹성철 스님이 이 장서들을 소장하게 된 배경은 김병룡(金秉龍, 1895~1956) 거사가 1947년 9월에 ‘증여인 김병룡, 영수인 성철’로 하여 증여서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1947년 9월에 성철 스님이 경북 문경군 봉암사 결사에 들어간 해라고 할 수 있다.
김병룡 거사에게서 책을 기증받고 난 후 성철 스님은 거처를 옮길 때마다 이 장서도 함께 옮겼으며, 스님이 백련암에 주석하게 되면서 지금의 법당에까지 소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퇴옹성철 스님이 생전에 소장했던 불교고서는 대부분 1947년 서울에 살던 김병룡 씨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다. 성철 스님은 증여받은 장서를 포함해 자신이 소장한 책에 인장을 모두 찍었는데, 그 장서인이 바로 ‘法界之寶(법계지보)’이다. 백련암 소장 불서 중에서 ‘법계지보’ 이외에 가장 많이 보이는 장서인은 바로 ‘劉聖鐘印(유성종인)’이다. 퇴옹성철 스님의 소장본 중에서 혜월 거사 유성종의 장서인이 찍힌 책은 대략 34종 142책이다. 이 책들은 실제 유성종이 소장했던 불서들로 19세기 후반에 유통되었던 불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백련암 소장 장서에는 유성종의 장서인이 찍혀 있지는 않지만 책의 표지에 적힌 글씨 등으로 볼 때 그의 소장본이나 19세기 유통본으로 보이는 불서들이 상당히 있다.”
이 글을 읽고서 큰스님의 장서들이 이런 중요한 역사를 가진 줄도 모르고 지나온 무식이 엄청 부끄러웠습니다. 이 논문을 찬찬히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큰스님께 책을 기증하신 김병룡 거사님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논문을 통해 김병룡 거사님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아드님 되시는 김일섭 거사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이 논문에 빠져 있는 김병룡 거사님의 생몰연대를 여쭈니 1895~1956년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 논문에서 밝혀진 김병룡 거사님의 불교출판의 자취를 살펴보겠습니다.
『덕신당서목』에는 860여 종의 불서의 서명과 저역자가 필사되어 있습니다. 이 서목은 불교 경전류와 한국과 중국 찬술 불서뿐만 아니라 일본의 찬술 불서까지도 기록되어 있어 19세기 동아시아 삼국의 불교 사상과 신앙의 동향뿐만 아니라 서적의 교류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유성종이 서목을 소장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필사하고 서목에 기록된 불서까지도 가지고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책들이 백련암 장경각 고서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백련암에 봉안된 큰스님 불서에서 동일한 장서인이 확인되는 것 만해도 34종 142책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혜월 거사 유성종의 장서가 어떻게 큰스님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유래를 이재(伊齋) 거사 유경종(劉敬鍾, 1858?~?)과 김병룡 거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근대기 한국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육당 최남선(1890~1957)이 맏형 최창선과 함께 설립한 신문관(新文館)에서 1918년에 『선학입문』과 1919년에 『만선동귀집』이 출판됩니다. 『선학입문』은 중국 수나라 때 천태지의가 쓴 『석선바라밀차제법문』 10권의 내용을 1855년에 월창 거사 김대현(?~1870)이 상하 2권으로 요약한 책입니다. 당시 월창 거사에게 찾아가 이를 요약해 주기를 부탁한 이가 바로 혜월 거사 유성종이었습니다. 이로부터 63년이 지난 1918년에 이 필사본을 보고서 기뻐하여 인쇄해서 유포하고자 한 이가 김병룡 거사였으며, 책의 교정을 본 이가 유성종의 사촌동생인 이재 거사 유경종이었습니다. 당시 박한영(朴漢永, 1870~1948) 스님과 오철호, 최남선이 직접 발문을 쓴 것으로 보아 이들과도 지인 관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듬해(1919년)에 출판된 영명연수 선사의 『만선동귀집』도 김병룡 거사가이 책을 읽고 환희심이 일어 인쇄하게 되었다고 이재 거사가 발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유경종 거사와 김병룡 거사의 불서출판 활동은 1920년 3월에 창립하여 1930년까지 약 10년간 활동했던 조선불교회(朝鮮佛敎會)에서 확인됩니다. 1920년 12월 임원 개정 당시 이사 명단에서 김병룡 거사님의 이름이 확인됩니다. 1923년 6월에 출판된 그 첫 번째 불서가 원효 스님의 『금강삼매경론』이었고, 출판 시주자 중 한 명이 김병룡 거사였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백련암에 봉안되어 있는 불교 고서는 유성종이 1884년에 세상을 떠나자 사촌동생인 유경종과 그와 친분이 있었던 김병룡 거사가 유성종의 장서를 소장하게 되었고, 이후 김병룡 거사가 성철 큰스님께 불서를 증여함으로써 지금까지 흩어지지 않고 소중히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 서수정 박사님의 논문 내용이었습니다.
백련암 소장 <만선동귀집> 2책(큰 스님의 장서인인 '법계지보'와 유성종의 장서인을 확인할 수 있다.)
성철 큰스님과 김병룡 거사의 책에 관련한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큰스님께서 청담 큰스님과 함께 문경 대승사에서 수행할 당시, 그 절에 주지였던 낙순 스님이 김병룡 거사를 소개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김병룡 거사는 원래 충주에 살던 천석꾼으로 불교에 심취했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불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은 불서까지 3000여 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많은 불서를 물려줄 스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김병룡 거사가 문경 대승사 주지인 낙순 스님에게 부탁하였고, 낙순 스님은 청담 큰스님에게 김병룡 거사를 한 번 만나보기를 청해 청담 큰스님은 이 말을 성철 큰스님께 전했다고 합니다. 성철 큰스님은 김병룡 거사를 만나러 서울의 평창동으로 가셨고, 불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분이 의기투합하여 김병룡 거사님이 당신이 알고 있는 불교 교설을 장광설로 끌어가는데 밤이 깊은 줄도 모르셨다고 합니다. 밤은 깊어 가고 성철 큰스님이 듣고 보니 대승경전에서 중관론까지 자세히 말씀하시는데 유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거사님이 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밤이 이슥한 즈음에 성철 큰스님이 “거사님! 그러면 내 불교도 한마디 들어 보시지요.” 하시고는 유식이론을 끝없이 풀이하시니, 마침내 김병룡 거사님이 “내 책의 주인은 스님이시니 어서 가져가시오.” 하면서 기꺼이 허락하셨다 했습니다.
이번에 서 박사님의 논문에 나타난 김병룡 거사님의 모습은 불교이론의 생활 실천과 포교에 전념하셨던 참 진실한 거사님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과 김병룡 거사님의 좋은 인연을 회고하다 보니, 유식사상을 알지 못하고서 몇 말씀 여쭈다 큰스님께 야단맞은 일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선문정로』가 출간되고 돈점논쟁이 한창일 무렵 큰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선종은 반야공(般若空) 사상이 중심이라고 말하는데 『선문정로』에서는 공(空) 사상에 대해서는 어째서 한 말씀도 없으십니까?”
“『선문정로』에서는 견성 즉 부처임을 천명하는데 그것은 유식사상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반야공 사상을 철저히 알려고 하면 『대지도론』을 따로 봐야지!”
그러고 보니 올해는 성철 큰스님의 봉암사 결사 70주년을 맞는 아주 뜻 깊은 해입니다. 무엇보다 큰스님께서 김병룡 거사에게서 불서를 기증받으신 햇수도 70해를 맞아 과거 속에 묻혀 있던 이러한 사실들이 서수정 박사님의 깊은 연구로 밝혀지게 되어 더 없이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혜월 거사 유성종의 자료들이 발굴된 만큼 백련암에 봉안된 고서들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보존이 또한 시급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정승석 교수님을 찾아뵙고 큰스님 장서들의 아카이브 불전집성사업으로 완성해 주십사 청을 드리고 왔습니다. 큰스님의 장서들이 후학들에게 잘 전해져 연구와 수행의 인연이 깊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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