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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미세한 먼지 속의 광활한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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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7 년 10 월 [통권 제5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8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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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작용 그리고 시간

 

화엄의 십현문은 존재의 실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여는 열쇠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열쇠는 열 개의 키워드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들 열쇠에는 존재의 연기적 관계성과 상호작용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따라서 십현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씩 열리는 것이다. 물론 그 문은 나의 인식 밖에 존재하는 물리적 문이 아니라 내면의 인식을 확장하는 마음의 문이다. 십현이라는 열쇠로 존재의 실상을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법계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씩 열리기 때문이다.

 

십현문은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열 개의 키워드로 되어 있지만 크게 세 가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째, 거대한 우주법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는 존재의 상호관계성이다. 전체[理]와 부분[事], 개체[事]와 개체[事]의 관계를 비롯해 모든 존재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관계성을 설명하는 문이다. 이들 문을 하나씩 통과하면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의 실상을 이해하게 된다.

 


 

 

둘째, 하나로 연결된 무수한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문이다. 법계의 존재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간다. 유일한 창조주에 의한 일방적 창조가 아니라 법계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호 창조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화엄의 눈으로 보면 모든 존재들이 창조주가 된다. 따라서 존재의 근원으로서 유일적 창조주라는 환상은 해체된다.

 

셋째, 시간적 관계성을 설명하는 문이다. 모든 작용에는 시간이 개입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因果)도 시간을 매개로 한 개념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순차적으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십현문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1차원적 흐름이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과거와 미래가 찰나의 현재에 응축되기도 한다.

 

동시구족상응문

 

십현문의 첫째 관문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이다. 이 문은 십현문 전체를 포괄하는 총론에 해당한다. 우리는 어떤 개체를 볼 때 단지 개별적 개체로만 바라본다. 그렇게 보면 개체는 전체와의 관계성이 단절되고 고립적 존재라는 이미지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화엄의 눈은 어떤 존재를 보더라도 개별적 존재에 머물지 않고 전체와의 관계로 인식이 확장된다.

 

성철스님도 동시구족상응문에 대해 “하나에 일체가 구비되고 일체가 하나를 구비한 자리”라고 풀이했다. 미세한 먼지 속에 억겁의 시간이 들어 있고, 광활한 우주가 들어 있다. 미세한 먼지가 우주와 같은 넓이를 가졌고, 모든 존재들은 영겁의 시간과 광활한 우주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 속에 응축되어 있는 이와 같은 존재의 특징에 대해 의상스님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라고 설명했다. 미세한 개별적 존재가 전체와 다르지 않고, 광활하고 거대한 전체가 개별적 존재와 같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DNA와 성체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DNA는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하지만 그 속에는 하나의 생명이 거쳐온 아득한 역사가 함축되어 있다. 그 속에는 억겁에 걸친 생멸변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아득한 역사가 들어있다. 나아가 그곳에 들어 있는 정보는 개별 생명체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무수한 존재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하였고, 유지되고 소멸해간다. 따라서 미세한 DNA 속에는 그와 같은 무수한 존재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정보가 종합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아득하게 확장될 미래 역시 함축하고 있다. 비록 미세한 먼지처럼 존재하지만 인연을 만나면 온전한 생명개체나 거대한 성체로 펼쳐진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억겁의 시간과 공간, 무수한 존재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주고받은 업보(業報)의 상호관계 속에서 축적된 정보를 담고 있다. 존재의 이와 같은 특징을 현수스님은 동시구족상응문으로 설명했다.

 

이런 안목으로 존재를 바라보면 생명은 단지 하나의 생명 개체로 보이지 않고, 작은 먼지도 보잘 것 없는 먼지로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무엇을 보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든 그것은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고, 우주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전체로 보게 된다. 여기서 존재와 법계를 바라보는 광대한 문이 하나 열리는 것이다. 그 문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작고 미세한 존재를 통해 전체의 세계로 확장되는 인식의 문이다.

 

광협자재무애문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은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이다. 넓음을 의미하는 ‘광(廣)’과 좁음을 의미하는 ‘협(狹)’이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동시구족상응문은 총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으로 치자면 조감도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설명하는 내용은 십현문의 각론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첫 번째 주제는 전체와 부분이 원활하게 소통함을 설명하고 있다. 집이 광이라면 문이나 담장이나 천정 등의 부분은 협에 해당한다. 집이라는 전체와 각 부분이 조화롭게 소통하는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는 안목이 광협자재무애문이다.

 

넓음을 의미하는 광은 보편적 이법(理法)을 말하고, 좁음을 의미하는 협은 각각의 특수성을 띤 개별적 사상(事相)을 말한다. 성철스님은 광협의 관계에 대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면서, 근본 자체로는 시방세계에 널리 펼쳐져 있습니다.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그런 근본, 즉 이(理)와 체(體)의 측면에서 광(廣)이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산과 물은 개별적 존재지만 그 모든 개별적 존재를 관통하는 보편적 특성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주적 이법[理]이거나 근본[體]이라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을 사상(事相)이라고 한다. 이 사(事)의 개념에 대해 성철스님은 “우주법계인 시방세계의 모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 강물, 나무, 바람 등과 같이 천차만별(千差萬別)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이 곧 ‘사’이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수많은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특수성에 의해 그들 존재는 비로소 자기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존재들을 관통하는 보편적 이법이 있으니 이를 ‘이(理)’라고 한다.

 

이와 사의 관계에 대해 현수스님은 “사(事)가 이(理)와 같이 두루하므로[事如理徧] 넓고[廣], 사상(事相)을 무너뜨리지 않으므로[不壞事相] 좁은 것[狹]”이라고 했다. 여기서 ‘사여이편’과 ‘불괴사상’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사여이편(事如理徧)’이란 무수한 개별적 사상들은 각자 자신만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상들에게도 보편적 이법이 두루 편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보편적 이법이 개별적 존재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존재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개별자들은 각각의 특수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이를 ‘불괴사상(不壞事相)’이라고 했다. 결국 모든 존재는 개별적 사상을 띠고 있어 개체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모든 특수성을 관통하는 보편적 이법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표현을 빌자면 협은 “흰 것은 희고 붉은 것은 붉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로 천차만별의 사상이 고스란히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광이란 협으로 표현된 모든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이법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개인과 국가의 관계로 비유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고,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없이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보편적 정체성을 띠고 있다.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모든 사람들의 개별적 특수성을 관통함으로 ‘사여이편’, 즉 개체의 특성을 뛰어넘는 보편적 특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고, 어떤 사람은 허약한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건장하다. 이처럼 보편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개별적 특성을 갖고 있다.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음으로 ‘불괴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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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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