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임제록 출간을 준비하며 3. 자성을 바로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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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7 년 10 월 [통권 제5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03회 / 댓글0건본문
시간을 아껴 평상심을 가져라
대덕 시광가석 지의방가파파지 학선학도
大德아 時光可惜하라 秖擬傍家波波地에 學禪學道하며
인명인구 구불구조 구선지식의탁
認名認句하며 求佛求祖하며 求善知識意度이로다.
막착
莫錯하라.
도류 이지유일개부모 갱구하물 이자반조간
道流야 爾秖有一箇父母어니 更求何物고 爾自返照看하라.
고인 운 연야달다실각두 구심헐처즉무사
古人 云, 演若達多失却頭라가 求心歇處即無事로다.
대덕 차요평상 막작모양
大德아 且要平常인댄 莫作模樣하라.
대덕들이여! 부디 시간을 소중히 아껴야 한다. 옆길로 들어서서는 수선을 떨며 부랴부랴 선을 배우네 도를 배우네 하며 어구들과 경구들을 배우는 등 언어문자에 집착하여,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하며, 선지식의 생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구나.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도 닦는 수행자들이여! 다만 그대들 안에 진실된 하나의 부모(父母)가 있을 뿐인데, 또 무엇을 더 구하려 하는가? 그대들 스스로 자기 내면을 깊이 반조해 보아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연야달다(演若達多)가 자기 머리를 잃어버렸다고 찾아 헤매었지만, 찾아 구하는 그 마음을 쉬었을 때 곧바로 아무 일이 없었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대덕들이여! 일상에서 중요한 것은 평상심을 가지는 것이니, 조작된 마음으로 남을 모방하거나 본받지 말라.
대덕들이여,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일찰나 사이에 목숨을 잃고 육도를 떠돌다보면 소 뱃속에 들어갈지 돼지 뱃속에 들어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 몸을 받은 금생에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공부해서 약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방가파파지(傍家波波地)라는 말은 바른 길, 즉 자신이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옆길로 들어서서 집집마다 분주하게 소란을 피우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허둥지둥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성(自性)을 살펴 마음을 닦지 않고 공연히 자꾸 밖으로만 부산하게 허둥대면서 끌려 다니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선을 배우고 도를 배우며, 언어문자에 집착하며, 부처와 조사를 구하고, 선지식을 찾아가 그 뜻이 어떠한지 자기의 생각으로 시험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참된 공부요 수행이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선(禪)을 구하면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는 것은 다 허튼 짓입니다. 부처를 구하든지, 조사를 구하든지, 팔만대장경이든지 조사어록이든지 뭐든지 간에 언어문자를 익히는 이것은 전체가 다 방가파파지(傍家波波地), 밖으로 옆길로 빠져서 부산하게 뛰어다니며 헛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지금 부지런히 화두를 참구할 뿐 화두하는 외에는 모두가 밖으로 옆길로 들어서서 분주하게 이리저리 내달려 봤자 헛일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아껴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해 부처도 필요 없고, 조사도 필요 없고, 팔만대장경도 필요 없고, 이전 큰스님들의 조사들 어록도 다 필요 없는 참으로 자유자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대들 자신에게 다만 한 부모가 있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고 임제스님은 따져 묻습니다. 여기서 부모란 자기의 본원이자 본래면목을 뜻합니다. 차별하고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의 근원적인 자기의 본래마음, 진실한 하나의 본원을 ‘부모’라는 상징적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본래면목이 갖추어져 있으니 스스로 반조해 보라, 내면을 깊이 응시하여 비추어 보라, 지혜의 눈으로 참된 자기를 발견하라, 너의 자성을 바로 잘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본래인(本來人)인 자기를 두고서 밖으로만 치달리며 제아무리 존귀한 무엇을 추구한다고 한들 모두 헛일이요 망상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연야달다(演若達多)의 이야기를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연야달다가 자기 머리를 잃어버렸다고 찾아 헤맸지만 그 찾아 구하는 마음을 그치고 나니 그대로 보리(菩提)더라는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연야달다는 인도사람인데 얼굴이 참 잘났어요. 얼굴이 잘났으니 항상 거울을 봅니다. 거울 속의 자기를 보면서, 아, 내 얼굴이 이렇게 잘났구나 생각하고 스스로 즐거워했단 말입니다. 늘 이렇게 거울 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는데 한번은 그만 정신이 돌아버려 거울을 들여다 보니 자기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큰일 났다고 여겨 자기 얼굴을 찾아서 온 동네를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중생의 자성이 어두워서 자기 머리는 그대로 있는데 미쳐가지고 자꾸 자기 머리 없다고 찾는다고 온 시방세계를 쫓아다닌다 말입니다. 이것을 두고 사두멱두(捨頭覓頭), 머리를 버리고 머리를 찾는다고 합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는 기우멱우(騎牛覓牛)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미친 마음이 그치고 머리를 찾으려는 생각도 그치고 보니 자기 머리는 그대로 있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성에 어두운 중생은 자기 머리가 그대로 붙어있는 줄도 모르고 밖으로 자기 머리를 찾아다니는 연야달다와 같습니다.
미친병, 이것이 완전히 다 나으려면 구경각을 성취해야 합니다. 구경각을 성취해 미친병이 다 낫고 보면 자기 머리는 본시 편안하게 그대로 붙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십지등각도 아직까지 연야달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본래 있는 것을 바로 보고 망상을 완전히 그쳤을 때라야 비로소 아무 일없이 자유자재한 경계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임제스님은 이어서 무엇보다 평상심(平常心)이 중요하니 이리저리 본뜨고 흉내 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도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전 조사스님도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평상의 마음이 도’라 했습니다. 밥 먹고 옷 입고, 앉고 서고 하는 일상이 도(道)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를 닦을 필요도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인가? 흔히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상심이란 구경대무심지(究竟大無心地)를 성취한 깨달은 마음 그 자체입니다. 일체를 해탈해 대무심지를 성취하여 무엇을 구하려는 생각도 없고, 부처도 조사도 필요 없는 마음이 평상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을 모방할 필요도 없고 본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임제스님도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옷 입고 싶으면 옷 입고 밥 먹고 싶으면 밥 먹는다. 부처도 조사도 팔만대장경도 아무것도 필요 없는 그런 대해탈경계에서 평상(平常)이라고 한 말이지, 미혹한 중생의 경계 그대로를 평상이라 말한 것은 아닙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평상심이 도라면 성불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실지에 있어서 남(南)쪽을 북(北)쪽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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