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일심을 요달하면 일체를 두루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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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7 년 9 월 [통권 제5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77회 / 댓글0건본문
『명추회요』는 『종경록』100권을 십분의 일 분량으로 압축한 것이므로, 「인증장(引證章)」인 94권부터 100권까지도 마찬가지로 일부 내용만 소개되어 있다. 이전 호에서 언급한 것처럼, 94권부터 96권까지는 부처님의 말씀인 경(經)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인용된 경전들을 보면, 『열반경』, 『원각경』,『금강삼매경』 등과 같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경들도 있지만, 『허공잉보살경(虛空孕菩薩經』, 『수진천자경(須眞天子經)』, 『대방광사자후경(大方廣師子吼經)』, 『보초삼매경(普超三昧經)』, 『대수긴나라왕소문경(大樹緊那羅王所問經)』등과 같이 무척 생소한 경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의 10세기 중후반은 당(唐)이 몰락하고 송(宋)이 건국되기 이전의 오대(五大) 십국(十國) 시기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불전 역시 크게 소실되었는데 연수선사는 이 많은 경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문헌을 보면, 연수선사가 살았던 나라인 오월국(吳越國)의 충의왕(忠懿王)이 대장경 5,048권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충의왕의 이름은 전홍숙(錢弘俶, 929-988)으로, 오월국의 제5대 국왕이자 마지막 왕(재위 948-978)이다. 송이 960년에 건국했으므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강제로 합병되거나 스스로 나라를 바치는 방식으로 송에 흡수되었는데, 오월국은 후자를 택했다.
오월국의 대장경 제작과 불서 수입
충의왕이 대장경을 제작했다는 내용은 그리 잘 알려진 내용이 아니다. 필자가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찾던 중에 발견한 내용으로, 송대에 편찬된 <함순임안지(咸淳臨安志)> 76권에 해당 문구가 나온다.
금과 은으로 쓰인 대장경 : 오월의 충의왕이 대장경 5,048권을 제작하였다. 푸른 종이에 은으로 글씨를 썼고, 부처님 명호가 나오면 금으로 글씨를 썼다.(金銀書大藏經 : 吳越忠懿王, 建大藏經, 五千四十八卷. 碧紙銀書, 每至佛號, 則以金書.)
오월국왕이 제작했다는 대장경에 대해서는 현재 위의 기록 외에는 다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대장경이 경율론 삼장을 집대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명추회요> 94권 이후로 수록된 다양한 불경들이 이 대장경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무척 크다. 충의왕은 30년간이나 재위에 있었고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므로 위와 같은 대규모의 불사를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연수선사 역시 960년에 영은사(靈隱寺)의 제1세 사주가 되었다가, 그 다음해인 961년에는 영명사(永明寺)의 제2세 사주가 되어 입적할 때까지 영명사에 주석하였다. 지금도 항주에 가보면, 항주의 상징인 서호(西湖) 주변으로 엄청난 규모의 사찰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은사는 오늘날에도 불학원(佛學院)을 포함하여 많은 불교기관들이 있고, 정자사(淨慈寺)로 이름이 바뀐 영명사 역시 큰 규모의 도량으로 현존하고 있다.
이처럼 연수선사는 오월국의 중심지였던 항주에서도 가장 요지에 주석했기 때문에 국왕이 일으킨 여러 종류의 불사에 필히 깊은 인연을 맺었을 것이다. 국왕이 대장경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선사 역시 평소에는 잘 대하지 못했던 많은 경들을 접했을 것이고, 그 가운데서 자신이 생각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 소개함으로써, 당시의 불교도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편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남겼던 고려의 제관(諦觀)법사가 다양한 천태 전적을 갖고 찾아간 곳 역시 오월국이다.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오월국의 충의왕은 불서 읽기를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영가현각(永嘉玄覺, 637-713)이 쓴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가운데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이에 연수선사의 스승인 천태덕소(天台德韶, 891-972) 선사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덕소선사는 다시 천태종의 의적(義寂)법사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의적법사는 그 문구가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가 쓴 <법화현의(法華玄義)>에 나오는 문장인데, 전란을 겪으면서 그 책이 다 사라졌고, 오직 고려에만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에 충의왕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천태 전적을 구해오도록 했고, 당시 고려의 광종(光宗, 925-975)은 제관법사에게 천태의 전적을 갖고 가서 중국에 전하도록 명하였다. 제관법사는 961년 중국에 도착하여 천태산에 들어가 의적법사에게 수학하고, 10년간 머물다가 그곳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제관법사가 961년에 오월국에 도착했다면, 아마 항주에서 큰 명성을 떨쳤던 연수선사를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려의 광종 역시 연수선사의 저술을 읽고 무척 감탄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양국의 스님들이 왕래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문물들이 교류되었을 것이고, 그런 속에서 스님들의 교류 역시 분명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많은 전란 속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파하려고 노력했던 간절한 원력과 결실이 연수선사와 제관법사의 저술에서 잘 보이는 것 같다.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의 가르침
<명추회요> 95권-5판(724쪽)에 수록된 <대장엄법문경>은 20세기 초 일본에서 간행된 <대정신수대장경>에는 제17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분류체계상 경집부(經集部)에 속하는 수십 편의 길지 않은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경은 <문수사리신통력경(文殊師利神通力經)> 혹은 <승금색광명덕녀경(勝金色光明德女經)>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이 경의 주인공이 바로 문수보살과 왕사성(王舍城)의 음녀(淫女)인 승금색광명덕녀(勝金色光明德女)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생을 욕심의 세계[欲界]에 얽어매는 다섯 가지 강력한 욕망 가운데 이성에 대한 욕망[色欲]은 그 힘이 아주 강력한데, 이 욕망에 얽혀 있는 ‘승금색광명덕녀’와 ‘장자의 아들[長者子]’이 경의 도입부에 등장한다. 문수보살은 이 남녀가 불법을 감당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음을 보고, 이들 앞에 등장하여 번뇌 속에서 해탈할 수 있는 그야말로 ‘큰 장엄의 법문’을 설하는 것이다.
이 경의 전반부는 문수보살이 온 몸에서 금색 광명이 나는 여인, 곧 ‘승금색광명덕녀’에게 법문을 설하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매우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나온다.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삼독(三毒)에서 벗어난 여인은 다시 장자의 아들과 함께 숲으로 간 뒤 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고, 곧장 신통력을 발휘하여 누운 자리에서 죽은 모습을 나타냈다. 즉 여인은 죽자마자 곧장 몸이 썩어 부풀고 온갖 악취를 풍기는 등 형용할 수 없이 두려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떨던 장자의 아들에게 숲의 나무들이 “모든 법의 본질은 장자의 아들이 본 것과 같네. 삼계는 허망하여 허깨비처럼 모두 실답지 않네.”로 시작되는 게송을 읊어 준다. 이 게송을 들은 장자의 아들은 두려움을 멈추고 부처님께 향한다. <명추회요>에는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행하는 법문이 조금 인용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長者子]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이여, 청정한 반연으로 방편을 행하는 보살에게는 일체중생의 심법(心法) 중에 모두 보리(菩提=깨달음)가 있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그의 마음에 색(色)이 없어 색이라는 분별을 떠나고 체성(體性)이 허깨비와 같아 저것과 이것, 안과 밖이 상속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리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자의 아들이여, 보살은 다른 일을 깨달아서는 안 되고 오직 자기 마음만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일체중생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며, 자기 마음이 청정하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반전이 숨어 있는 이 경의 내용 가운데서 연수선사는 아주 짧은 내용만 인용한 뒤, 그것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일심(一心)을 요달하면 일체를 두루 안다. 일체란 하나 속의 일체이기 때문에 일체지의 지각이라 한다. 만약 각각 모습을 따라 이해하는 것이라면 일체지의 지각이라 하지 못하니, 모든 법의 자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의 경문을 보면 부처님은 “보살은 다른 일을 깨달아서는 안 되고 오직 자기 마음만 깨달아야 한다.”고 설법하신다. 그렇다면 이는 자기 속에만 함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연수선사는 ‘하나’란 ‘일체’와 맞물려 있는 하나이므로, 그 하나를 제대로 찾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하였다. 그 하나란 다름이 아니라 ‘번뇌가 가득한 각자의 마음’인데,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가리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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