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오래된 미래]
『반주삼매경』과 불수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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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 2017 년 11 월 [통권 제5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460회 / 댓글0건본문
초기불교에서 불수념(佛隨念, buddhanusmŗti)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할 때 요구되었던 염불, 염법, 염승의 하나로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고 예경하며 그 덕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찬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잡아함경』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길을 갈 때 미친 코끼리나 미친 사람을 만나 마음이 당황하고 산란하여 … 삼보의 이름을 불러 염하면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고 삼보를 염하는 습관에 의해서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했듯이 위기의 상황에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피와 보호를 구하며 부처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수행되기도 했다.
대승불교에서 불수념은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지속적으로 관상(visualizing)하는 독립적인 수행법으로 발전한다. 그와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다름 아니라 ‘smŗti’의 대상, 즉 기억하고 잊지 않는 대상으로 현존하는 부처님이 아니라 아미타불이라는 타방세계의 부처님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세존의 입멸 이후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과 부처님의 상주불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일어난 변화로서, 교단의 달라진 상황에 상응하는 것이지만, “왜 아미타불인가”에 대한 만족할 만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술사학자들 중 간다라 지역의 아미타불 신앙이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간다라 지역의 아미타불 신앙의 발생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반주삼매경』은 4종의 한역본과 티베트어 번역본 하나, 그리고 산스크리트 판본 일부가 전하고 있는데, 지루가참이 번역한 『반주삼매경』은 아미타불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인정된다. 이 경은 후대 아마타경을 비롯한 정토경전과 달리 현신의 몸으로 서방의 아미타불을 관상할 것을 명시한다. 또한 『아미타경』을 비롯한 정토부 경전들에 나타나는 아미타불과 달리 『반주삼매경』에 등장하는 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불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티베트본에는 초기불교 문헌들에서 사용된 ‘부처님의 10가지 호칭[如來十號]’이 대승불교의 아미타불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595년 사나굴다가 한역한 『반주삼매경』의 이역본인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현호분(賢護分)』에서도 여래십호가 나타나는데, 티베트본 제3장에서 나타나는 아미타불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여, 부처님에 대해 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래를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분은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다. 지혜와 행위를 성취하신 분이고,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다. 세상을 이해한 분이고 위없는 분이며 모든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다.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고, 부처님이며, 세존이시다.’”
이처럼 소연(所緣)의 대상이 갖고 있는 특징에는 변함이 없지만 소연 대상의 변화는 대승불교의 기원 및 수행법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글에서는 대승불교의 기원 문제는 다루지 않고 『반주삼매경』에서 말하는 반주삼매의 수행적 특징만 살펴보겠다.
반주삼매, 즉 ‘현재의 부처님들이 눈앞에 현전하는 삼매(Pratyutpanna buddhasammukhāvasthita-samādhi)’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반주삼매경』 제2장 「행품(行品)」에 나타난다.
“어떻게 현재제불실재전립삼매(現在諸佛悉在前立三昧)를 얻을 수 있는가? 바드라빨라여, 이와 같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는 계를 철저히 지키고 홀로 한곳에 머물면서 마음속으로 서방의 아미타불을 염하라. 마땅히 이와 같이 염해야 한다. ‘이곳에서부터 천억만 불국토를 지나면 수마제라는 나라가 있다. 아미타불은 그곳의 보살들 가운데에서 경을 설하고 계시며, 모든 이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바드라빨라여, 만약 출가 혹은 재가보살이 서방의 아미타정토에 대한 것을 들으면 아미타불을 염하고 계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일심으로 염하기를 하루 낮과 밤, 혹은 칠일 낮과 밤으로 한다면, 깨어있을 때 아미타불을 친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꿈에서라도 친견할 것이다.”
반주삼매를 닦기 위해 먼저 계를 철저히 지키고 조용한 곳에 홀로 머무는 등의 수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후 아미타불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계속 떠올린다. 이렇게 일심으로 수행하면 칠일이 되기 전에 아미타불을 친견하는데, 깨어있을 때 하지 못한다면 꿈속에서라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염불이 후대 정토종에서 애호된 칭명염불이 아니라 마음속에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관상수행이라는 사실이다.
관상의 대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드라빨라여, 어떻게 보살마하살들이 이 삼매를 계발하는가? 바드라빨라여, 지금 내가 네 앞에 앉아서 법을 연설하는 것과 같이 보살들은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정등각자가 부처님의 왕좌에 앉아서 법을 연설한다고 염한다. 또한 보살들은 여래가 훌륭한 형상을 하고 보기 좋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신체적인 완벽함을 지녔다고 염한다. 보살들은 백가지 이익을 만드는 위대한 분의 상호를 지닌 여래, 아라한, 정등각자의 신체를 본다. 또한 보살들은 [그 상호들을] 외적인 상(nimitta)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말하는 염불은 마음으로 부처님과 보살 등을 깊이 생각하여 잊지 않고 명심하여 기억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생각하고 그가 법을 연설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의 신체와 그 신체의 뛰어난 덕을 생각한다. 염불은 여래의 상호와 공덕을 떠올리며 잊지 않는 것으로, 부처님의 상호를 염하거나 명호를 생각할 때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없어야 한다.
“이런 보살마하살들은 천안통을 갖지 않고도 여래를 보고 천이통을 갖지 않고도 진실한 법을 들으며 신족통을 갖지 않고도 불국토에 이른다. 이생에서 목숨이 다한 후, 저 생에서 불국토를 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앉은 상태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연설하신 경을 받아 지녀서 삼매 가운데 모두 구족한다. [삼매에서 나온 후]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연설한다.”
『반주삼매경』에서 말하는 현전지는 천안통이나 천이통 같은 신비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현상의식 또는 꿈속의 의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후의 서방정토 왕생을 목표로 하는 아미타경 수행과 달리 현실적인 경험을 구성한다. 많은 불교학자들은 『반주삼매경』에서 아미타불의 친견을 현실적인 경험으로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대승경전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무엇이 현실을 구성하는가”라는 대승불교의 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는 문제로서 단순히 주장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두 경험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반주삼매를 통한 부처님의 친견과 천안을 통한 부처님의 친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반주삼매는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 모두가 얻지만, 천안은 오직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만이 얻는다. 반주삼매는 내적인 형상화의 끊임없는 명상, 끊임없는 수행의 결과로 도출된 영상이다. 신통지의 수행으로 얻어지는 천안통은 색계의 사대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천안은 사방에서 완전한 광명을 향유한다. 둘은 다르다.”
『반주삼매경』은 반주삼매 속에 현현한 부처님의 친견을 현실적인 체험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반주삼매 속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지 못한다면 꿈에서라도 친견한다고 할 정도로 신통력에 기반하지 않은 현실적인 인식임을 강조한다. 이는 삼매 가운데 나타난 일체의 이미지나 영상을 비판한 불교전통에서 보자면 매우 특이한 태도다.
하지만 『반주삼매경』의 대승적 특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두드러진다. 경전에서는 반주삼매의 경험에 대해 “외적인상(nimitta)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여 이 경험을 실체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제5장 「무착품(無着品)」과 제10장 「청불품(請佛品)」에서는 반주삼매 속에서 친견하는 아미타불과 그 체험의 공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바드라빨라여, 보살이 부처님을 친견할 때 마음으로 염한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있는 바가 없음을 연설했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있는 바가 없음을 연설했고, 그 가운데 본래 무너지고 본래 끊어졌기 때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집착할 바가 없다’고 한다.”
“바드라빨라여, 이 보살은 마땅히 부처님을 염하고 부처님을 친견해야 하며 경을 들어야 하지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본래 없으며 이 법도 인연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본래 공하여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보듯이 반주삼매는 부처님을 눈앞에서 보듯이 보는 마음의 상태를 계발한다. 이 경험은 허구적이거나 특수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험을 구성하지만 『반주삼매경』은 이 모든 현상을 공으로 보라고 이야기한다. “부처님이 본래 없으며 이 법도 인연하는 바가 없다”는 주장은 슈미트하우젠(L. Schmithausen)이 지적했듯이 불교 문헌에서 최초로 등장한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설법이다. 『반주삼매경』은 정토사상과 반야사상이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불수념의 염불수행과 대승선법과의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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