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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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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8 년 1 월 [통권 제5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5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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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여행 후 바로 추석을 지나고 나니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와 새만금방조제를 둘러보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7~8명이 동행할 예정하였으나 저를 포함해 4명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침 8시 유성을 출발하여 9시 좀 지나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도착하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날이 월요일이라 박물관과 문화재지역 관람이 쉬는 날이었습니다. “마음먹고 떠나온 길인데 이렇게 허탕이라니…”,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결국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부여박물관의 백제 용봉대향로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기왕 왔으니 담 밖에서 둘러나 보자 하고 담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담 넘어서 백제5층목탑의 능사를 겨우 볼 수가 있어서 조금은 서운함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있으니 친견하러 가자.” 하며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20여 년도 더 지난 세월만에 보아서인지 들녘에 덩그러니 서 있었던 오층석탑이 이제는 주변이 정리된 정림사지로 잘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방 주변의 정면에는 초등학교가, 옆과 뒤로는 아파트와 민가가 들어서 있고 법당 뒤편에는 교회가, 동쪽으로는 박물관 관리건물이 자리하고 있어서 오층탑의 위세가 옛날만은 못한 듯하였습니다.

 

이어서 서해안으로 방향을 틀어 그렇게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새만금 간척 방조제를 보러가게 되었습니다. TV 등에서 화면으로만 차가 달리는 모습의 방조제를 보았기에 4차선의 고속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막상 새만금 방조제를 달려보니 33.9km의 고속도 길 뿐만 아니라 그 옆으로 그보다 더 넓은 평균 폭이 290m가 되는 둑길이 형성되어 있어서 1991~2011년의 세월이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만금 방조제의 육지 쪽은 매립이 거의 끝나있겠지 생각했는데 아직도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어서 새만금 개발계획이 어찌되나 하는 궁금증이 컸습니다.

 

내려오면서 백제불교도래지를 개발해 놓은 나란타 불교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영암군에서 직접 조성하였다는데 제법 격을 갖추었고 불갑사의 도움도 컸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해안 여행을 하면서 저녁노을이 질 무렵 목포에 도착하고, D.J께서 목포에 오시면 머물렀다는 신안 비치호텔에 여장을 풀자니, 1991년 7월에 해인사 총무국장을 살면서 난생처음 휴가를 받아서 원주를 보던 법우스님과 더불어 홍도로 가기 위해 목포에 들렀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홍도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선장이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섬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가리키며 ‘마리아 봉’이라고 하자 승객들이 흥분되는 듯 웅성거렸습니다. 배에서 내리면서 선장에게 “옛날에는 마리아 봉을 무슨 봉이라고 했느냐?”고 물으니, “관음봉이라고 했시유.” 하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으로 유달산을 둘러보고서 진도의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울돌목을 찾아갔습니다. 옛날 같으면 해남읍을 돌아 들어가는 먼 길이었는데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목포 바다 위 외곽대교를 지나서 섬과 섬을 이은 다리를 건너가는데 30분도 못되어 울돌목에 이르니 이곳에도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썰물 때라 우르쿵쿵하며 휘돌아드는 센 물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지난 3월에 건설을 마쳤다는 기념관이며 유물관과 유적들이 잘 정리가 되어있어서, 옛날의 자취도 없는 썰렁함을 달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사를 바르게 정리하고 후손들에게 잘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마음에 담아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2박3일의 여행을 마치고 백련암으로 돌아왔습니다. 못가 본 외국여행도 필요하지만 2~30년 동안 천지가 개벽한 우리나라의 오늘의 풍광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는 사실을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12월 12일에는 조계종 방송문화대상으로 KBS 1 TV 다큐공감에서 제작한 <3000배, 나의 수행>이 선정되어 그 시상식에 참가하여 제작팀을 격려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쉽게도 제작에 참여한 김동정 피디님과 이정민 작가님이 남극지역 촬영관계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었습니다.12월 13일에는 조계종과 불교출판문화협회에서 김택근 작가와 모과나무출판사가 출간한 『성철 평전』이 올해의 대상으로 선정되어 시상하였습니다. 상금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한해가 저물어가는 결산으로 두 개의 큰 상을 받았으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6년 11월에 경기도 하남시 정심사에서 85명에 이르는 대중이 24시간 이내에 대웅전에서 10000배를 올리는 행사를 처음 진행하여 70여 명의 대중이 10000배를 성취하는 데 성공하여 참가자 모두가 감격해 하였습니다. 작년에 2~3번 백련암에서 10000배를 올리기도 하여 대중들과 의논하여 매년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10000배 행사를 백련암에서 가지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전국 다른 사찰에서 연말연시를 기하여 철야기도를 하는 곳이 많으니, 우리도 10000배를 12월 31일 새벽 3시에 시작하여 1월 1일 새벽 3시에 마치도록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념행사로 하는 것이 부처님 앞에 더욱 뜻이 있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올해도 많은 신도님들이 동참하여 뜻있는 새해맞이 행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해는 성철 큰스님의 봉암사 결사 70년과 해인총림설립 및 초대방장 취임과 백일법문 사자후 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였습니다.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셨던 역대 종정 큰스님과 총무원장을 지내신 큰스님들 진영을 모시고 11월쯤 다례제를 올리는 봉암사결사 70주년 행사를 올리고자 계획하였는데 총무원장 선거 등등으로 치르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운 마음입니다. 지난 2016년 8월 「고경(40호)」에 “임제록 녹취록을 받아들고”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며 큰스님의 육성을 옮겨드리며 임제록의 육성녹음을 세상에 처음 알려드렸습니다. 그 후 임제록 번역을 위해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번역본과 연구서적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① 『임제록 연의』 서옹 번역(1974) ② 『임제록』 야나기다세이잔 저서/일지 번역(1988. 7. 15) ③ 『임제록』 선림고경총서 12(1989. 12. 15) ④ 『임제록 연구』 종호스님(1996.8) ⑤ 『임제록 강의』 이기영(1999. 11. 17) ⑥ 『임제어록』 정성본 스님(2003. 12. 10) ⑦ 『임제100할』 이진오·김태완 공저(2004. 12. 20) ⑧ 『임제록』 무비스님(2005. 3. 17) ⑨ 『임제록』 종광스님(2014. 10. 2) ⑩ 『임제어록』 김태완(2015. 2. 15) 등이 출판되어 있어서 성철 큰스님의 번역과 평설이 없는 부분은 위의 번역서적들을 참고하여 나름의 최선을 다하여 좋은 번역물이 되도록 노력을 하였습니다. 

 

번역은 역시 번역이므로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번역이 진행되어 오면서 지난 7월호 「고경」에 “임제록 출간을 준비하며 1” 8월호 「고경」에 “남의 잘못된 주장에 속지마라 2” 10월호 「고경」에 “자성을 바로 살펴라 3” 등을 여러분들에게 예문삼아 제시해 보여드렸습니다.

 

번역을 마치고 작년 안에 출판하여 “봉암사 결사 70주년과 해인총림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기념물이 되기를 기대하였지만 해를 넘겨 출판하게 되니 아쉬움이 많습니다. 올해 초 『임제록』이 출판되어서 “우리 선가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상식적으로 임제록은 알아야 한다.”고 하신 큰스님의 바라심대로 『임제록』이 세상에 널리 읽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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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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