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임제록을 출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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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8 년 2 월 [통권 제5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523회 / 댓글0건본문
“앞서 3년여 동안 준비하고 1988년부터 1권 『선림보전』을 시작으로 1993년 7월 25일 『벽암록』 하권을 끝으로 선림고경총서 37권의 출간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쉽게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떠난 길이 가면 갈수록 멀고 험하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엄청난 일을 그렇게 쉽게 생각했을까?’ 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을 그동안 수없이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선림고경총서의 완간에 이르러 앞만 보고 달려오며 너무 급히 서두른 탓에 번역에 학문적 연구가 부족하였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종단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경전이나 논서나 선어록 등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역경사 양성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원컨대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한 공덕으로 불법에 눈 밝은 이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지기를 발원해 봅니다.”
이렇게 30여 년 전 선림고경총서 완간 후기에 당시 심정을 적었던 글입니다.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하고 나서 한 달이 못 되어서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때까지 큰스님의 육성 법어는 다 녹취하여 서적으로 출간하였는데 『임제록』 녹음만은 녹취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책으로 내는 것을 주저한 것은 전편을 다 평설하지 못하시고 1/4 정도만 평설하였기에 책 한 권이 못 될 까봐 망설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녹음상태도 좋지 않고 자주 인용하시는 3구 3현 3요 등 옛 조사스님들의 선구가 어려워 녹취가 쉽지 않아 『임제록』 펴낼 마음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동안거를 앞두고 상좌들이 찾아와서 『임제록』 녹취록과 메모리카드를 내밀면서 “지난 2년여 동안 『임제록』을 녹취하고 시베타(CBETA) 대장경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인용문도 대충 정리하였습니다. 노스님의 『임제록』 출간은 스님께서 맡아 판단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실력으로 녹취하고 또 복잡한 한문 선구들을 정리하였단 말이냐?”며 불신부터 표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메모리카드에 담아 있는 것을 출력하여 훑어보니 노스님의 육성을 제대로 담느라고 꽤나 애쓴 흔적이 보이고, 한문 선구 인용도 생각보다는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정리한 두 상좌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성철 큰스님의 녹음을 녹취하고 교정하고 정리하여 책으로 내는 일이 실로 만만치 않은 일인 줄을 너무 잘 아는데다, 더욱이 『임제록』은 어록의 왕이라 일컬어지기에 그 중압감은 쓰나미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1989년 12월 1일 선림고경총서 12권으로 『임제록·법안록』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옹스님의 『임제록 연의』(1974년)가 『임제록』 번역으로는 유일하였습니다. 『임제록』 번역을 위해서 지금까지 『임제록』의 번역본을 찾아보니 다행히 그동안 여러 권의 책들이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① 『임제록 연의』, 서옹 번역(1974) ② 『임제록』, 야나기다세이잔 저서, 일지 번역(1988. 7. 15) ③ 『임제록』, 선림고경총서 12(1989. 12. 15) ④ 『임제록 연구』, 종호스님(1996. 8) ⑤ 『임제록강의』, 이기영(1999. 11. 17) ⑥ 『임제어록』, 정성본스님(2003. 12.10) ⑦ 『임제100할』, 김태완·이진오(2004. 12. 20) ⑧ 『임제록』,무비스님(2005. 3. 17) ⑨ 『임제록』, 종광스님(2014. 10. 2) ⑩ 『임제어록』, 김태완(2015. 2. 15) 등이었습니다.
성철스님께서 생전에 『임제록』에 현토를 달아두신 것을 기본으로 삼아서 평설하신 부분은 그대로 싣고, 평설이 없는 부분은 위의 번역 서적들을 참고하여 될수록 오역을 줄이고 좋은 번역물이 되도록 노력은 하였습니다. 번역은 역시 번역이므로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하며 독자 여러분들의 지도편달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임제록』의 정리와 번역과 주정리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모든 것이 소납의 탓이오니 나무람과 가르침을 바랍니다.
『임제록』 번역을 마치고 좌복위에 앉아 있으니 많은 상념들이 밀려오고 밀려갔습니다. 스님께서 1974년 하안거부터 『임제록』을 법문하시어 1975년 하안거까지만 법문하시고 중단하셨습니다. 『임제록』 전체의 1/4, 내용적으로는 1/3 가량의 분량을 평설하신 셈이 됩니다. 『임제록』 평설을 마치자마자 녹취하여 늦어도 1970년대가 끝나기 전에 『임제록』을 출간하였더라면 불교계에 꽤 이른 출판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1981년 1월에 종정이 되시고 “우리 선가에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임제록』은 알아야 한다.”고 하신 바라심대로 『임제록』이 널리 세상에 읽히고 알려졌으리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문하시고 42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출판을 하게 되니 큰스님께 너무도 죄송하고 읽어주시는 독자들에게도 부끄럽기 그지없는 마음입니다.
되돌아보면 이 『임제록』 뿐만이 아닙니다. 1967년 동안거 중에 시작하셨던 『백일법문』도 25년이 지난 1992년 4월 30일에 상·하 2권으로 출판하고, 그 뒤 22년 만에 2014년 11월 14일에 개정증보판 상·중·하 3권을 출판함으로써, 『백일법문』도 법문하신 지 47년 만에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스님 주변에 ‘곰새끼 상좌’가 아니라 큰곰 상좌들이 있어서 『백일법문』 상·중·하 3권을 1970년 이전에 출판하여 세상에 내놓았더라면 “선·교를 통해서 중도사상으로 일관되게 불교를 설명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하신 큰스님의 말씀이 빈말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학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어 학문 수준을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1년 1월에 종정이 되시고 그해 12월에, 그동안 3년여 정리해 오시던 『선문정로』를 세상에 내놓으시니, 불교학계가 벌집을 쑤신 듯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학술논쟁으로 20여 년 가까운 세월동안 뜨겁게 요동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돈점논쟁’으로 학계가 으르렁거렸지만 그 열기가 식은 오늘의 불교학계는 그때를 회상하며 “성철스님 덕분에 모처럼 뜨거운 학술논쟁의 시대였고 우리들에게도 할 일이 있었다.”고 불교학자들께서는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게 심혈을 기울여 발표하신 법문들을 제때에 제대로 출판을 해드렸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르게 불교 사회와 학계의 격을 높이는 더 큰 역할을 하셨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게 큰스님께서 불교 사회와 학계에 끼칠 수 있었던 공적은 지금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것 이기에 잃어버린 세월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큰스님께 거듭 면목 없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참회를 올릴 뿐입니다.
마침 작년은 성철스님께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1947년 가을에 도반들과 더불어 봉암사 결사를 실행하신 지 70년, 1967년 해인총림이 설립되어 초대 방장으로 추대되시고 백일법문의 사자후를 표효하신 지 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러한 뜻 깊은 해를 맞이하여 ‘선림고경총서’ 30책 37권 중에서 22책 20권으로 정리하여 ‘성철스님이 가려 뽑은 한글 선어록’이라 이름하여 2~3년 안에 순차적으로 발간하기로 원을 세우고 출간 중에 있습니다. 30대 이하의 세대가 한글전용세대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 한문 원문을 삭제하고 쉽게 자세한 주를 붙여 이해를 돕고자 하였습니다. 참선에 대한 기본적인 인문학 서적이 부족한 현실에서 참선을 안내하는 귀중한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책들과 더불어서 성철스님의 『임제록 평설』을 출간하여 봉암사결사 70년과 해인총림 설립 50년을 기념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 깊게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후생들을 위해서 남기신 노력들이 지혜의 큰 샘이 되어서 사바세계의 곳곳에서 대지를 적시고, 한 그루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납자들이 칠엽굴에 오르는 길을 가득 메우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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