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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밥벌이를 위하여 살면 밥벌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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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3 월 [통권 제5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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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웅연

 

 

#4. 청담의 생활법문

 

비가 오면 빗방울이 여기저기 떨어진다. 지붕에도 떨어지고 장독대에도 떨어지고 내 얼굴에도 떨어진다. 이런저런 빗물을 전부 떠안고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살다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살다보면 이런 꼴도 당하고 저런 꼴도 당할 수 있다. 살다보면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렇게 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살다보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의 숲에 나를 던져놓고 아무나 가져가길 바랄 수 있다면. 어느 똥개가 함부로 싸지른 똥도, 깨달음의 낙처(落處)로구나.

 

 

청담순호(靑潭淳浩, 1902~1971)가 어느 날 법상에 올라 아줌마들을 상대로 법문했다.

= ‘보살님들을 극진히 대접할 시간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결혼한 첫날 저녁부터 생과부가 되어 일생을 지내야 할지라도 절대 남편을 미워해선 안 됩니다. 좋든 싫든 무조건 남편을 따라주어야 합니다. 밤에 남편이 내연녀를 찾아간다면 등불을 들고 그 길을 바래다주십시오. 또 그녀에게 몇십만 원이라도 쥐어주면서 우리 남편 비위 좀 잘 맞추어 달라고 사정사정하십시오. ‘우리 주인은 내 힘 가지고는 전혀 위안을 못 받으니, 당신이 그렇게 해주면 내가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다고 정성으로 부탁하십시오. 여자가 모르게 돈을 몰래 두고 오면 더 좋습니다.”

=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거하게 차렸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년에게 도리어 굽실거리라는 거냐며 좌중이 흥분하자 청담이 덧붙여 말했다. “이래야만 다음 생에 그런 남편을 안 만납니다. 빚을 다 갚았기 때문입니다.”

= 상다리가 부러져 엎어진 음식들을 잠자코 주워 담는다.

 

한자 ()’손톱[]’으로 코끼리[]’를 움켜쥔 모습을 본떴다. 인간이 동물을 부린다는 뜻으로, 인위와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글자다. ‘하다,’ ‘되다,’ ‘다스리다,’ ‘삼다,’ ‘생각하다,’ ‘배우다등등 아주 다의적이다. ‘~를 위하여도 매우 빈번하게 쓰이는 . 한여름에 한여름보다 더운 바람을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 앞에 서 있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공간의 크기가 문명의 수준이라는 것을. 동물이 인간을 위하여 살 때, 인간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책임과 고통을 회피한다.

남을 괴롭힌 만큼 내가 즐겁고 남에게서 빼앗은 만큼 내가 배부른 것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조국이고 지구촌이다. 한편으로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다는 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의 핵심이다. 실외기의 곤욕스러운 열풍은 어딘가에서 패배하고 희생됐을 자들의 원한이거나 마지막 날숨의 집합일 것이다. 그리고 꿈속의 원귀로든 더워지는 북극으로든, 죄업은 반드시 살아남아서 기어이 되돌아온다.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다음 생에는 되돌아온다. 아침 식탁에 올라온 북어대가리가 언젠가 내게 주어졌던 참수(斬首)였다고 믿게 되면, 밥을 조금만 먹게 된다.

불교에선 유위법(有爲法)도 몹시 경계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내가 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죄다 유위법이어서 죄업의 씨앗을 남긴다. 으스대거나 보상을 바라거나 가르치려들거나 조건을 달거나 등등. 인간 위주(爲主)’의 삶이든 본인 위주의 삶이든 응당 악행이거나 조작이거나 최소한 유치해진다.

밥벌이를 위하여 살면 밥벌레가 된다. 이에 반해 억지로라도 남을 위해 살면 작위(作爲)의 대가는 온전히 그의 몫이다. 그래서 못된 남편을 위하여 살아야 못된 남편이 불행해진다. 받지 말아야 할 복()을 받으면, 언젠가는 저승사자가 그 복을 몸에서 뜯어간다.

 

최선의 복수는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5. 일타의 달걀

 

삶은 계속되고, 가난해도 삶은 계속되고, 아파도 삶은 계속되고, 꿈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삶이 계속되길 바라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길 바라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고, 구세주가 내려와도 삶은 계속되고, 목숨을 잃어도 또 다른 몸 받아 삶은 계속되고, 당장 죽을 것만 같아도 삶은 계속되고, 지겨워 죽을 것만 같아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는 현실에서도 계속되고, ‘계속된다는 생각에서도 계속되고, 계속되는 속에서도 계속되고, 계속되지 않는 속에서도 계속되는데, 계속되어도 좋고 계속되지 않아도 좋다는 속에서는, 귀신같이 계속되지 않는다.

 

동곡일타(東谷日陀, 1928~1999)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보좌하던 젊은 제자는 휴게소에서 파는 삶은 달걀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다.

=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살고 싶다면 돌멩이라도 씹어야 한다.

 

하지만 대율사(大律師)를 모시고 다니는 입장에서 차마 속내를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꼼수를 떠올려 물었다.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으니, 그 구멍에서 밥도 나오고 애도 나오고 깨달음도 나온다.

 

큰스님, 무정란은 생명이 아니죠?” “, 아니지.” “그럼 무정란은 먹어도 살생이 아니네요.”

= 웅덩이가 빗물을 삼켜도 죄는 아니지.

 

큰스님! (아궁이)을 만들었으면 밥(장작)을 주어야지요.”

= 너무 놀라면, 문다.

 

일타가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얘야, 이 세상에 청정한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왜 하필 똥구멍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

= , 지렁이가 웅덩이를 파먹지.

 

무정란(無精卵)은 암탉이 수탉 없이 혼자 낳은 알이다. 병아리로 부화하지 않는다. 고기가 아니며 죽어도 피 흘리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으니, 육식이 허용되지 않는 스님의 신분이어도 먹을 수 있다.

아쉽게도 무정란과 유정란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만 무정란이 조금 더 크고 껍질의 색깔도 진하다고 전한다. 그래봐야 피장파장이다. 정 무정란을 골라서 먹고 싶다면 어두운 조명에서 손전등을 비추면 되는데, 흐릿하게라도 핏줄이 보이면 유정란이요 안 보이면 무정란이다. 하지만 삶은 달걀이라면 핏줄이 남아날 리 없다. 도통 감을 못 잡겠다면 껍질을 까서 노른자에 배아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살피면 된다. 물론 미세하게나마 흔적을 확인하려면 무조건 한입 베어 물어야 하니, 자칫 유정란일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최후의 방법은 달걀을 파는 점원을 괴롭히는 것이다. 무정란을 삶은 게 맞는지, 맹세할 수 있는지 물어본 뒤에 확답을 받아낸다. 점원이 자기는 모르겠다거나 도대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치받으면, 사장을 부르라고 노발대발한다. 어이없어하는 사장도 모르겠다고 하면, 계란을 가게에 공급한 양계업자의 연락처를 내놓으라고 지랄발광을 한다. 무정란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목표에만 골몰한 상태이므로, 꼴불견이야 행인들의 몫이요 부끄러움이야 지인들의 몫일 뿐이다. 양계업자에게 무정란 확인서를 요구하고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 신선놀음에 썩었을 도끼가 여기서 썩는다.

기어이 모든 행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때부턴 마음 편하게 닭의 똥구멍을 핥으면 된다. 버스와 친구들은 이미 떠났고 휴게소는 머지않아 문을 닫을 테지만, 똥구멍이 참 달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자존감타령.

남보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똥을 싸기 위해.

 


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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