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집 나감’의 자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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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5 월 [통권 제6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31회 / 댓글0건본문
#8. 성수의 ‘훼불’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한복음 1장1절)”지만 그 말씀이 잘 먹히지 않는 게 세상이다. 높이 올라간 자들은 아름답지만, 술 한 번 잘못 마시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조심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 없다…, 면서 가슴을 졸인다. 왜였을까? 때 아닌 까치가 코앞까지 와서 울어주는 데도 여느 때의 출근길이 미심쩍다. ‘나’를 포기하고 빼앗긴 만큼이 돈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지만, 반쯤 으깨어진 입으로 무엇인들 제대로 삼킬까. ‘조심’이 操心을 넘어 彫心으로 타들어가는 시간. 너희들은 제 갈 길을 잘만 가는데, 나는 갓길에게조차 밀린다. 부처님의 마음을 붙잡아 내 안에 가두고 싶다.
어느 해 부처님오신날에 서울 조계사 주지였던 활산성수(活山性壽, 1923~2012)가 법상에 올랐다.
“네 가지 중한 죄를 저지른 자의 생일날이 무슨 축하할 일이라고 만 명씩이나 모였는가. 왕자로서 나라를 내팽개친 역적, 부모의 뜻을 어기고 집을 나간 불효자, 백년해로를 약속해놓고 야반도주를 해버린 무책임한 남편, 아들을 애비 없는 자식으로 만든 비정한 아버지가 바로 석가모니다.”
= 그 작은 고추 하나 때문에….
생경하고 불경스런 법문에 좌중이 웅성거리자 성수가 한마디 붙였다.
= 지구의 평화가 깨지고 여자들은 운다.
“제가 차린 밥을 먹고도 남에게서 욕을 먹는 자들이 부지기수인데, 중죄를 저질러놓고 무려 3000년 동안 세상의 존경을 받는 재주를 그대들은 알겠는가.”
= 32상(相) 80종호(種好)에서 보듯, 부처님에겐 그게 없었다.
집 한 칸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모델하우스를 구경한다. 누군가는 여자의 손을 잡고 있고, 누군가는 그 여자가 부과(附過)한 아기의 손을 잡고 있다. 그 누군가를 세상으로 밀어낸 여자도 어머니란 이름으로 무리 안에 끼어 있다. 어린이는 빨리 집에 가자며 울고 늙은이는 빨리 새집에 가자며 운다.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는 집은 그러나 정작 아무도 들어가 살 수는 없는 집이다. 관음(觀淫)의 인파로 붐비는 모델하우스는 난파선 같다. 다들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식구들 한둘쯤은 단단히 붙잡고 있다.
집은 가장(家長)에게 재산이기도 하고 쉼터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들을 벌어먹이려면,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자꾸 빼앗아 와야 한다. 행복의 시작이 가족이라지만, 그들만의 행복이다. 오늘도 돈 때문에 부당하게 대하고 말했다. 구두 발밑에 묻은 진흙처럼 업장(業障)이 불쾌하다. 그래도 더럽고 치사한 일을 많이 저질렀을수록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편하다. 뭔가 ‘한껀’ 한 것 같고, 미안하지만 밥값을 한 것 같다. ‘봉양’과 ‘외조’와 ‘양육’은 자본의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미희(美姬)들 같다.
아무리 가장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다. 집요하게 비비고 속이면서 뜯어내다보면, 죄책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부처님 같은 사람이 존경받는 것이다. 부처님처럼 집 없는 자는 맨몸으로 집이 되어야 한다. 집과 집안과 집집마다 만들어내는 온갖 허물로부터 물러난 대가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고독은 비참하지만 한편으로 정결하다. 적어도 자기만 벌어 먹이면 되는 까닭이다. 혼자서 먹는 밥은 그리많은 폭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생식기가 몸의 바깥으로 달린 덕분에 땀을 흘리고 눈을 흘기고 죄도 짓는다. 어쩌면 남자 구실을 못 하게 될 때가,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일 수 있겠다. 욕정이나 독선과 붙어먹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는가. 그에게는 사랑과 관련한 세금이 날아오지 않는다. 고자(鼓子)여. 거의 완성된 성자(聖者)여.
●
봄이 와서 나를 한 대 치고 갔다.
아프다고 끙끙대는데, 여름이었다.
#9. 춘성의 사리
고기도 자주 먹어본 자가 그 맛을 알듯, 아픔도 많이 당해본 자가 그 맛을 안다. 쓴맛이 사는 맛임을 알면, 단맛이 오래갈 맛이 아님을 안다. 느리게 걸으면 넘어질 확률이 낮아진다. 또한 고기를 먹으면 먹을수록 힘이 쌓이듯이, 아픔도 당하면 당할수록 힘이 쌓인다. 복수의 덧없음이 보이고 남의 아픔이 남들보다 빨리 보인다.
한편으론 매끼마다 먹으면 물리는 것이 고기다. 아픔도 매순간 오는 것은 아니다. ‘주5일제’ 사회이고, 부엉이도 언젠가는 잠든다. 가끔씩 고기 먹는 셈 치고, 아픔을 수용할 일이다. 그리고 이왕 아플 것이라면, 죽을힘을 다해 아파하는 것이 좋겠다. 아픔이 남아서 후일을 도모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옮겨가지 않도록.
불교신문 편집국장이었던 어느 승려가 입적을 앞둔 춘성창림(春城昌林, 1891~1977)과 병상 인터뷰를 했다.
= 죽어가는 사람에게 용돈을 뜯는 꼴이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사리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 잘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필요 없다. 필요 없어.”
=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저승 가서 구슬치기할 일 있겠느냐.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 분들이 실망하실 텐데, 걱정되지 않으셔요?”
= 남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주소서.
“야 이 ○○놈아! 신도 위해 사냐?”
= 남은 이들의 안주가 되게 할 셈이냐.
다비(茶毘)는 불교의 고유한 장례의식이다. 시신을 장작더미에 속에 넣고 불태운다. 입적한 스님들의 몸을 다비하면 종종사리(舍利)가 나온다. 작은 구슬 모양인데 그 빛깔이 영롱하고 다채로워서, 깊은 금욕과 인고의 상징으로 받들어진다.
사리가 생성되는 원인은 명확치 않다. 다만 뼈와 나무가 고열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발생하는 결정(結晶)이라는 추측이 많다. 한편 일반인들의 주검을 화장해도 사리가 나온다. 불자가수 김광석의 사리가 가장 유명했다. 반면 살아서 수행으로 덕망이 높은 스님이었는데도 죽어서 사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쨌거나 사리가 나오면, ‘큰스님’이 된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길 때,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잘 살았다’고 남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하다가 죽는다. ‘잘 살지 못했던 모습’은 달콤하지만 위험하다. 그래서 행여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워 숨기고 거짓말하고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사실 세상의 선망 속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그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름이 생물도 아닌데, 우리는 이름이 더러워지거나 썩지 않을까 너무 걱정한다.
사리를 팔면 돈깨나 생기겠지만, 죽을 때 못 가져간다. 내 눈으로 구경도 못할 것들을 위해 삶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 ‘사리는 시체의 일부일 뿐’이라 여기며 경(經)을 한 줄 더 읽겠다.
사리이든 냉면사리이든, 일종의 덤인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덤이듯이.
●
설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누군가 말했다.
“줘야 받지!”
또 누군가 말했다.
“지어야 주지!”
인생은
빚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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