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욕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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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갑 / 2018 년 7 월 [통권 제6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3,906회 / 댓글0건본문
마음을 찾아1
프시케Psyche,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 Psychoanalyse(독) Psychoanalysis(영)]이란 말은 189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Psyche’와 ‘Analyse’의 복합어로, 프로이트가 분석Analyse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프시케Psyche’임을 나타낸다. 프시케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으로, ‘영혼’이란 뜻을 갖고 있다. 영혼이라고 하면 오늘날 다분히 종교적인 느낌을 주는데, 프시케는 그보다는 인간내면의 깊은 세계를 은유metaphor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단어가 영어로는 ‘마인드mind’로 번역되었는데, 한국어로는 왜 ‘정신’으로 번역되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국어의 ‘정신’에 해당하는 독일어 ‘가이스트Geist’는 프로이트가 분석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어 ‘Geist’에서 영혼의 의미를 찾자고 하면 굳이 못 찾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헤겔Hegel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으로 대표되는 ‘Geist’, 즉 ‘정신’은 다분히 이성적인 것, 혹은 지성적인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이거나 육체적 · 물질적인 것과는 안전히 반대쪽에 있는, 초월적이며, 말 그대로 정신적인 것이다.
각설하고, 프로이트는 이런 헤겔적인 정신 개념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분히 의식의 영역인 헤겔의 정신 개념으로는 그가 말하고 싶었던 무의식의 세계를 결코 드러낼 수 없다고 보았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하고 싶은 인간의 내면세계는 육신에 내재하며, 자연을 초월하지 않는다. 자연과 육체 속에 공존하며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차라리 영어의 ‘mind’를 살려 심리분석학心理分析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번역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의 직업의식이겠으나, 확실히 프로이트의 ‘Psyche’에는 ‘Geist’로는 포괄할 수 없는, 그래서 ‘정신’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깊은 세계가 있다.
프시케는 그리스 어느 나라의 막내딸로 태어난 공주이다. 사람들의 칭송과 경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서,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질투와 미움을 사게 된다. 하지만 프시케는 아프로디테가 내린 가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에로스Eros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이상이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는 저본에 따라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따랐다.—의 간단한 줄거리인데, 프로이트가 이 신화에 주목한 이유를 음미해본다.
프시케의 미모는 인간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비유한다. 선천적이며 원초적인 아름다움, 불교로 말하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과도 같은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 타고난 그대로의 자연, 그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들은 동경하고 경배한다.
자성청정심이 모든 중생의 불성이듯, 프시케의 미모 또한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순수하며 아름다운 여래장如來藏이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추해지고 못생긴 몰골을 하고서는 오로지 아름다운 그것을 동경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다가 그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 가려지고 더렵혀졌나? 신화에서는 의심과 호기심, 의지박약 등이 은유되고 있지만, 심층심리학에서는 그것들 또한 어디에서 오는지를 묻는다.
리비도, 모든 존재의 근원
일반적으로 에로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회화에서 에로스는 대개 아름다운 청년이나 귀여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특히 아프로디테와 함께 장난꾸러기 악동의 이미지로 그려지게 되면,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품기 어렵다. 그런데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온다.
맨 처음 생긴 것은 카오스(Chaos, 혼돈)고,
그 다음이 눈 덮인 올륌포스의 봉우리들에 사시는 모든 불사신들의
영원토록 안전한 거처인 넓은 가슴의 가이아Gaia와
[길이 넓은 가이아의 멀고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라(지하)와]
불사신들 가운데 가장 잘 생긴 에로스였으니,
사지를 나른하게 하는 그는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가슴 속에서 이성과 의도를 제압한다.(주: 헤시오도스, 천병희 옮김, 『신통기』)
프랑수아 제라르(F. P. S. Gerard)의 「에로스와 프시케」.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는 영혼과 원초적 욕망의 관계를 은유한다.
에로스는 세계가 처음 생성될 때 카오스(혼돈), 가이야(대지), 타르타라—지하세계로 일반적으로 타르타로스로 불린다—와 함께 태어난 신이다. 제우스나 아프로디테보다도 앞서 나왔다. 가장 잘 생겼고 사지를 나른하게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라도 그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매혹적인 신이다. 헤시오도스의 노래대로, 에로스는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이성과 의지를 무장해제한다. 에로스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 그 태초의 매혹이 형상화된 신이다. 어쩔 수 없이 끌리는 힘이 작 해야만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야도 결합할 수 있고, 그 결합의 결과로 만물이 태어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우주만물은 물, 공기, 불, 흙이라는 4대 원소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생겼다 사라진다고 하였다. 사랑, 즉 서로에게 끌려들어가는 힘이 작동하여야만 만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 힘이 바로 에로스이다. 이때의 사랑은 아프로디테로 상징되는 달콤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에의 에너지, 존재를 향한 본능이다. ‘러브love’가 아닌 ‘디자이어desire’, 즉 욕망이다.
따라서 ‘태초에 욕망이 있었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존재를 향한 욕망이 선행하여야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욕망이야말로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프로이트가 주목하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의 리비도libido가 나온다.
그리고 억압도 있었다
리비도는 원초적인 생명에너지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리비도는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 기타 모든 행위를 가능케 하는 원초적인 에너지이다.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다만 성적 욕망에 특정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야기했지만, 성욕이 리비도의 주요 특징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리비도가 성욕으로 한정되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억압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프로이트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 원초적 에너지의 억압이다.
프시케는 아프로디테가 내린 과제, 즉 여러 잡곡이 가득 섞여 있는 방에서 한밤중에 콩을 골라내는 일, 사람을 잡아먹는 사나운 양의 털을 깎아 오는 일, 그리고 지하세계로 내려가 스틱스 강물 한 양동이를 길러 오는 과제를 해낸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프시케가 아폴론 신의 도움으로 과제를 완수하였다고 하여, 마지막으로 인간은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제를 준다. 저승세계로 내려가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을 바구니 가득 담아 오는 일이다.
이 과제는 인간으로써는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산 인간은 결코 저승에 내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죽어서 갔다가 다시 살아서 돌아와야 가능한 일. 하지만 에로스를 향한 뜨거운 열망은 인간 프시케로 하여금 그 불가능한 과제를 완수하게 만든다. 프시케는 지하세계로 내려가 한 바구니에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금지는 깨지기 위해 있음을 증명하듯, 절대로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바구니 뚜껑을 열고, 영원히 깨지 못하는 잠에 빠진다.
프시케가 고난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인간으로 서기 위한 통과의례를 비유한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며 획득한 것들은 곧 인간의 조건을 함축한다. 한밤중에 잡곡에서 콩을 골라내는 일은 사물과 선악의 분별력을, 난폭한 양의 잠은 거친 욕망에 대한 통제력을 나타낸다. 그리고 지하세계를 다녀오는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초월을 담고 있다. 결국 프시케가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도덕성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종교성을 갖추고 원초적인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 영혼의 담지자로 설 수 있음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억압이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반도덕론자는 아니었지만, 도덕이나 종교와 같은 사회적 규범에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특히 종교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무신론자로서, 신은 인간의 억압된 욕망이 투사된 것으로 보았다. 일체의 사회적 규범은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억압의 기제를 내면화함으로써 영혼은 비로소 완성된다. 고난으로 은유되는 억압의 과정을 잘 통과한 영혼(프시케)이라야 비로소 욕망(에로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태초에 욕망이 있었다. 그리고 억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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