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빈곤한 상상력―남루한 세상
페이지 정보
윤제학 / 2018 년 11 월 [통권 제6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23회 / 댓글0건본문
상상력! 철학적 정의는 논외로 하기로 하고, 국어사전의 정의를 보겠습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표준국어대사전) 인류를 지금 여기까지 이끌고 온 힘도 그것이었습니다. 상상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가능성’은 뿌리가 매우 얕았을 것입니다.
‘과학적 상상력’ 혹은 ‘예술적 상상력’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상상력에 관한 우리의 통념은 과학이나 예술 분야에 국한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배고플 때 맛있는 걸 떠올리는 것도 상상인데 말입니다.
“인류 전체의 고통도 한 사람이 겪는 고통보다 클 수 없다”
상상력은 예술가, 과학자, 미래학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의 영역에서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공감’이나 ‘배려’ 같은 것도 그렇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라는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 품성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문을 열고 닫을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것. 저는 이것도 ‘매너’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타인을 위해 잠깐 문을 잡아 주는 행위. 그것을 저는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상상력’이라 부르겠습니다. 인간을 특별한 생명체이게 하는 데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만큼이나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감숙성 난추 부근에 위치한 병령사 계곡 전경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고통도, 심지어 인류 전체의 고통도 인류의 한 성원이 겪는 고통보다 결코 더 클 수 없다.”[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최호영 옮김, 『도덕적 불감증』(책읽는 수요일, 2015) p.75] 대단한 통찰, 경이로운 문장입니다. <세계인권선언문>을 통째로 갖다 대도 이 문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한 인간은 갑남을녀로 이루어진 추상적 집단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장 거리에 나가면 만날 수 있는 ‘갑돌이’ 혹은 ‘갑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구체적 인간입니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언니, 동생이기도 합니다. 백악관 만찬장에서 와인을 마시는 거물 인사든 전쟁과 가난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한 인간이든, 인류 구성원 모두는 이 문장 속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 인간 이해를 위해 70억이 넘는 모든 인간을 만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인간의 실존적 삶에 대한 통찰입니다. 저는 그것을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상상력이라고 말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철학적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말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하는 ‘인권’에 대해 말했고, 정곡을 찔렀습니다. 그는 이 문장에서 인류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시로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류와 한 인간을 맞대 놓음으로서, ‘인권’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묘리가 상상력에서 나왔다고 믿습니다. 비유컨대 ‘우주를 현미경으로 바라본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상상력의 빈곤이 한 사회(국가)를 얼마나 남루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말하기도 죄스럽지만) ‘세월호’의 비극이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세월호 침몰은 그 자체로 비극이지만, 상상력의 빈곤이 더해져서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참극이 되었습니다. 우선 청해진해운은 배를 개조할 때 그 배에 탈 사람들이 뱃삯과 등가인 비인격적 ‘승객’이 아니라 ‘갑돌이’, ‘갑순이’라는 구체적 인격체라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영어의 몸이 된 한 사람은, ‘한 아이’가 수첩에다 꼭꼭 눌러 엄마, 아빠, 동생을 기쁘게 해 줄 선물 목록을 적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손끝에 가시가 박힌 정도의 아픔조차도 내 손이 아니라면 그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타인의 아픔입니다. 추상적 관념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근사치에 가는 정도가 자식의 아픔에 대한 부모의 반응이겠지요. 그것조차도 상상이 필요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얼마나 괴로울지, 간절히 기도하듯이 상상해야 합니다. 그래도 미칠까 말까 할 것입니다.
꽤 오래 전에 한 영화 잡지에서, 상상력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깊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지를 일깨워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떠오를 만큼 감명 깊은 글이었습니다. 괴테의 어머니가 꼬마 괴테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 상상력을 자극한 이야기입니다. 글 가운데서 괴테 어머니의 회고 부분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바람과 불과 물과 땅-나는 이들을 아름다운 공주로 바꾸어 내 어린 아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자연의 모든 것들이 훨씬 깊은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밤이면 우리는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았고 위대한 정신을 만나곤 했다.” (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씨네21, 2001.05)
불자 가운데 『법화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경 중의 왕’이라 일컬어져 왔고, ‘대승경전의 꽃’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 경을 ‘상상력의 보고’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그리고 불교에 관하여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 경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사실 이 경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성, 현실성, 역사성 같은 건 없습니다. 교리를 설하는 바도 없습니다.(이미 다른 경전을 통해 설해진 가르침을 전제로 한 경전이라는 점을 알면 이해가 됩니다.) 온갖 보살과 신뿐만 아니라 악마도 무수히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 부정하신 신통도 예사로 행해집니다. 한마디로 ‘황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경전을 읽을 때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불보살의 이름만 불러도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지고 모든 악이 소멸된다는 식의 속악한 이해로 미끄러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전의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보살 – 사람 사이에 자비의 길을 놓는 사람
그때, 무진의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께 합장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께선 무슨 까닭으로 관세음이라 불리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이르셨다.
“선남자야, 무량 백천만억 중생이 온갖 고뇌를 받는다 해도, 관세음보살이 있음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알아듣고 모두들 고통에서 풀려나게 할 것이니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설사 큰 불속에 들어간다 해도 불태워지지 않을 것이니, 이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고, 큰물에 표류한대 해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닿게 될 것이니라.
백천만억 중생이 금·은·유리·자거·마노·산호·호박·진주 따위 보배를 구하러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태풍이 불어 닥쳐 나찰귀의 나라에 떠밀려간다 해도,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른다면 모두들 고난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관세음이라 일컫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있어 해 입으려 할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른다면, 해치려는 자가 들어 올린 무기가 순식간에 부서져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고, 삼천대천세계에 우글거리는 야차와 나찰이 한꺼번에 몰려와 괴롭히려 하려다가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게 되면 악한 눈초리조차 보내지 못 할 것인즉, 하물며 다시 해치려 들 것인가.
설령 또 어떤 사람이 수갑·차꼬·칼·쇠줄 따위로 몸이 옥죄였을 때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면, 죄가 있든 없든 구속하던 모든 것들이 끊기고 부서져서 곧 고통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니라.”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앞부분)
『법화경』(구마라습 한역) 전 28품 가운데 제25품인 ‘관세음보살 보문품’의 일부분입니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졌다는 관세음보살이, 죄가 있든 없든 모든 중생을 고통과 공포로부터 해탈시킨다는 내용입니다. 부처님도 이런 관세음보살을 ‘시무외자施無畏者’라 칭합니다. 중생에 대한 관세음보살의 베풂이,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왜 관세음보살이 불자들에게 슈퍼스타인지, 왜 불자가 아니어도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이 한숨처럼 ‘관세음보살’을 불렀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통을 틔우며 고단한 한 세월을 견디어 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위에 인용한 경전의 내용을 뒤집어 보면, 인간의 죄와 그 원인인 욕심의 ‘백서’로 읽힐 것입니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인용하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내용은 관세음보살이 사바에서 중생을 해탈케 하는 방편을 들어 보이는 것인데,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부처님, 벽지불, 제석, 바라문,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소년, 소녀, 천, 용, 야차, 아수라…로 나투어 법을 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웃들을, 심지어 악인이라 할지라도 불보살의 화신이요 선지식으로 여기라는 가르침인 것이지요. 이어서 사바세계에서 행하는 관세음보살의 온갖 위신력을 열거한 다음, 보문품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중생들이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는 것으로 설법을 마칩니다. 중생에 대한 무한 긍정입니다. 중생 모두 서로에게 보살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대승불교의 정신은 곧 보살정신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살이 되지 않으면 대승불교는 화려한 말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세월호의 비극을 진정으로 자신의 업으로 여긴다면 그가 바로 보살일 것입니다.
보살은 세상의 아픔을 짊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로 자비의 길을 놓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더 간절히 타인의 아픔을 상상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