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간다라 미술로 보는 부처님의 학습기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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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8 년 12 월 [통권 제6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42회 / 댓글0건본문
고향 가는 길에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대학 시절 밤기차를 타고 여수에 갔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밤기차를 타고 고향을 가던 때의 청춘은 참으로 방황이 많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원하지 않던 대학의 선택도 모든 것이 뒤범벅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에게 펼쳐진 새로운 길은 불교와의 인연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친구는 송광사 여름 수련대회에 나를 데리고 갔는데, 1986년 송광사로 나를 이끌었던 그 친구는 내 인생의 선지식이었다.
소년 싯다르타, 다양한 기예 연마
문득 KTX를 타고 여수에 가는 기차 안에서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스승을 찾아가는 싯다르타 태자가 떠오르면서 나를 데리고 송광사에 갔던 친구가 생각났다. 옛날을 추억하다보면 가끔 성도 이전 부처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만난 싯다르타의 청년시절은 전륜성왕의 길을 가는 태자로서의 모습에 충실했다. 싯다르타 태자가 성장했던 카필라성은 현재 폐허로 남아있지만(사진 1) 스승을 찾아 학문을 연마하고, 활쏘기와 씨름을 통해 태자의 역량을 내보이며, 죽은 코끼리를 성 밖으로 던져 강력한 힘을 내보이던 수학하던 때를 표현한 불전미술은 간다라에 여러 점 남아 있다.
사진1. 카필라바스투, 네팔.
페샤와르박물관에는 싯다르타 태자의 청년시절 무예를 겨루는 모습을 표현한 불전미술이 있는데(사진 2), 삼단으로 구성된 불전도의 하단에는 세 장면을 기둥과 기둥 사이에 배치하였다. 맨 왼쪽에는 씨름 장면을, 중앙에는 활쏘기를 하는 태자를, 오른쪽에는 한 손으로 코끼리를 던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한 손으로 코끼리를 성 밖으로 던지는 태자의 모습이다.
사진2 . 무예를 겨루는 싯다르타 태자, 간다라(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경전에 의하면 싯다르타 태자는 7세가 되자 정반왕이 ‘태자가 벌써 컸으니 학문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라 안에서 글과 재주가 좋은 총명한 바라문을 두루 찾았다(『과거현재인과경』). 싯다르타 태자는 여러 동자들과 함께 학당學堂에 있을 때에 한량없는 백 천 법문의 소리를 연출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게 하였다.
싯다르타 태자의 스승으로는 명망과 학덕을 갖춘 바라문으로 웨다와 우빠니샤드에 정통한 위슈와미뜨라Viśvāmitra, 병법과 무예를 가르칠 스승 끄산띠데와Ksntideva, 수학을 가르칠 스승 아르주나Arjuna, 언어학자이자 문법학자인 삽바밋따Sabbamitta가 초청되었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 스승들로 부터 정통 바라문의 학문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사상도 배우고 64종의 문자도 익혔으며, 궁술弓術을 비롯한 29종의 군사학도 연마하며 전륜성왕의 수업을 받았던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청년기에 관한 불전미술은 인도나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북인도인 간다라에서는 꽤 많이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 학문 연마와 관련된 <전륜성왕의 수업을 받는 태자(사진 3)> 이야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싯다르타 태자가 양을 타고 공부하러 가는 장면과 스승한테 학문을 배우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 정반왕은 태자가 성장함에 따라 그에게 코끼리와 말, 양의 수레를 마련하여 주었다(『과거현재인과경』). 어린 시절 싯다르타 태자는 주로 양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싯다르타 태자는 양 위에 앉아 있는데 머리 주위에는 두광頭光이 표현되었고, 머리 위에는 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일산日傘이 배치되었다. 태자 뒤를 따르는 한 명의 여인은 태자를 수호하는 카필라성의 여신이다. 태자 앞에 있는 나신裸身의 두 인물은 학당에 같이 가는 친구들로 손에는 필기도구를 들고 있다. 왼쪽 끝에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인물은 싯다르타 태자의 스승 위슈와미뜨라로, 무릎 위에 판을 얹고 무언가를 쓰면서 가르치고 있다. 그 앞에 합장하고 있는 인물은 전륜성왕의 수업을 받고 있는 싯다르타 태자이며, 태자 뒤에는 동행했던 두 명의 인물이 합장 한 채 서있다.
『과거현재인과경』에 따르면 싯다르타 태자는 7살 때 글을 익히기 시작했고 10살 때 무예를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태자의 무예 실력은 ‘활쏘기’에 관한 이야기에 잘 담겨 있다. 10살이 되자 정반왕은 태자에게 활쏘기를 가르치기 위해 나라 안에서 활 잘 쏘는 이를 초청해 궁전의 뒤뜰에서 쇠로 된 북을 쏘게 하였다. 스승이 작은 활을 태자에게 주자 태자는 웃음을 머금고 “이것을 제게 주어서 무엇을 시키려 합니까?” 하고 묻자, 스승은 “쇠북을 쏘십시오.”라고 말했다. 태자는 스승이 가져다 준 일곱 개의 화살 가운데 한 개의 화살을 쏘아 일곱 개의 쇠북을 모두 꿰뚫고 말았다. 이에 스승은 정반왕에게 “태자는 저절로 활 쏘는 재주를 알고 있습니다. 화살 한 개의 힘으로 일곱 개의 북을 쏘아 꿰뚫었으니 활쏘기로는 이 세상에서 겨룰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어찌 제가 스승이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4세기 말 인도를 방문한 중국의 법현 스님은 부처님의 탄생지를 방문하고 “난다難陀와 더불어 코끼리를 타고 활을 쏘던 곳도 있다. 이 때 화살은 동남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의 땅에 꽂혀 샘물이 솟아나게 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이곳을 손질해 우물을 만들어 길 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물을 마실 수 있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4 . 활쏘기를 하는 싯다르타 태자, 간다라(2~3세기), 카라치박물관, 파키스탄.
활쏘기를 하는 싯다르타 태자를 표현한 불전미술은 간다라에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싯다르타가 쏜 화살은 일곱 그루의 철 다라수, 일곱 개의 철북, 그 사이마다 철돼지를 넣어서 표적으로 삼았다 하는데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사진 4)에 표현된 네 그루의 나무는 일곱 그루 다라수 가운데 네 다라수를 상징한다. 오른쪽 끝부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태자에게 활 쏘는 기술을 가르치는 스승이 서 있고, 활시위를 당기는 당당한 모습의 싯다르타 태자가 표적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그 앞에는 화살 통을 든 동자와 긴 깃대 위에 철로 된 북을 상징하는 둥근 표적을 든 동자가 서 있다.
한 손으로 코끼리 던지는 싯다르타
싯다르타 태자가 샤까족 청년들과 무예를 겨루기 위해 활쏘기와 씨름 등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태자가 활쏘기 시합에 참가하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코끼리를 한 손으로 던졌다는 일화이다.
어느 날 정반왕은 ‘나의 아들이 총명해 글과 산수를 잘한다는 것은 사방에서 모두 알겠지만, 활쏘기 재주만은 백성들이 아직 잘 모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는, 7일 후에 무예 시합을 개최한다고 온 나라에 알렸다. 7일째 되던 날 데바닷타는 많은 무리와 함께 맨 먼저 성을 나오는데, 큰 코끼리가 성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러자 그는 혼자 코끼리에게 다가가 손으로 코끼리의 머리를 쳐 땅에 쓰러뜨리고는, 일행이 지나가게 했다. 그 뒤 난다가 무리들과 함께 성에서 나가려 하는데, 데바닷타가 쓰러뜨린 코끼리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발가락으로 코끼리를 잡아 길가로 던져 놓았다.
그 때 성문을 나서던 싯다르타 태자는 데바닷타와 난다가 한 행위를 구경하던 사람들을 보고 ‘지금이 바로 힘을 보여줄 때로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한 손으로 코끼리를 집어서 성 밖으로 던져놓았다. 돌아와서 손을 보니 다친 데도 없었고, 코끼리는 다시 살아나 괴로워하는 바도 없었다. 이를 보고 모두가 태자를 찬탄했으며, 정반왕도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진5. 코끼리를 던지는 싯다르타 태자, 간다라(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의 <코끼리를 던지는 싯다르타 태자>(사진 5)에는 코끼리의 머리를 치는 데바닷타, 쓰러진 코끼리를 옮기는 난다, 한 손으로 코끼리를 던지는 싯다르타 태자가 시계방향으로 순서대로 표현되어 있다.
성문에서 나오는 코끼리를 치려고 오른손을 번쩍 위로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데바닷타이다. 난다는 땅에 쓰러진 코끼리의 꼬리를 잡아끌고는 어딘가로 옮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과거현재인과경』에서는 ‘발가락으로 코끼리를 잡아 길가로 던져 놓았다’고 했으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에서는 ‘코끼리의 꼬리를 잡아 스물 한 걸음을 끌고 가서 큰 길에서 떼어놓고 가버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페샤와르박물관의 불전도는 후자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죽은 코끼리를 오른쪽 어깨 부근까지 들어 올려 던지고 있다. 그의 머리 주변의 두광頭光과 왼손을 허리에 댄 자세는, 데바닷타와 난다를 표현한 것과는 달리 그가 왕자임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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