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유식사상의 완성자 세친 보살
페이지 정보
허암 / 2018 년 12 월 [통권 제6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776회 / 댓글0건본문
유식사상[유식불교]은 기원후 4-5세기에 걸쳐 미륵 보살(350~430), 무착 보살(395~470), 세친 보살(世親·Vasubandhu, 400~480)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미륵 보살은 유식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무착 보살은 유식을 크게 대성시킨 분으로 세친 보살의 친형이기도 합니다. 이 세분 중에서 유식의 완성자인 세친 보살에 대해 알아봅시다. 왜냐하면 유식사상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친 보살의 저작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앞으로 기술할 유식에 관한 모든 내용은 세친 보살의 저작에서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유식사상을 처음 접한 것도 세친 보살의 저작인 『유식삼십송』이었습니다. 그리고 동경대학에서 유학할 때 지도교수였던 에지마 선생님과 처음으로 읽었던 텍스트도 산스크리트본 『유식삼십송』과 안혜의 주석서인 『유식삼십송석』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유식의 공부는 『유식삼십송』에서 시작하여 『유식삼십송』으로 끝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유식삼십송』과 『유식삼십송』 주석서를 늘 곁에 두고 읽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딸 이름도 ‘세친’으로 지었습니다. 먼저 세친 보살의 전기를 살펴보고 그의 저작과 ‘세친 2인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세친 보살의 생애에 대해서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인도에서 중국에 오신 진제眞諦 스님의 『바수반두법사전婆藪槃豆法師傳』의 내용을 간단하게 축약해 기술하겠습니다. 『바수반두법사전』에 따르면 세친 보살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900년이 지나서 서북 인도 간다라 지방의 푸르샤푸라[페샤와르]에서 바라문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수반두 Vasubandhu였습니다. 바수vasu는 부富·보석·바수천(天의 이름), 반두 bandhu는 친족·붕우朋友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를 살려 진제 스님은 세친 보살을 ‘천친天親 보살’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부파불교의 일파인 설일체유부에 출가하여 경량부(經量部, Sautrāntika)의 입장에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리한 『구사론』을 지어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 후 친형인 무착보살의 권유로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수많은 유식의 논서를 저술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승경전에 대한 많은 주석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80세에 아요디아에서 입적했습니다.
세친 보살의 삶과 한국 불자들의 책무
한편 티베트 출신의 출가자인 부톤(Bu ton)의 『불교사』에는 세친보살에 관한 흥미로운 기술이 남아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여성신자가 불교의 쇠퇴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는 불교를 흥기시킬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남자 아이를 낳아 그들에게 불교의 흥기를 의탁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먼저 크샤트리아 출신의 남자와 관계를 가져 남자아이를 낳아 무착이라고 하였다. 다음에는 바라문 출신 남자와 관계를 가져 두 번째 자식을 낳아 세친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둘을 홀로 키웠다. 그런데 당시 인도에서는 자식은 부친의 직업을 세습하였기에 그녀의 두 아들은 ‘어머니! 저의 부친의 직업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너희들을 낳은 것은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불교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게 위해 너희들을 낳았다. 너희 형제는 출가하여 불교를 배우고,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출가하였다.”
독자 여러분은 부톤의 기록을 읽고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꾸며낸 이야기 같나요? 제가 세친 보살의 일화를 소개한 것은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가리려고 소개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화를 통해 후대 불교도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쇠퇴해가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간절한 그녀의 불심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들께서는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지금 한국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불교도라면 현재now·여기서 here·나 I는 한국불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세친 보살의 어머니처럼 각자 고민해 보시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친 보살은 수많은 저작과 주석서를 남겼습니다. 독자들께서는 저작들을 나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저작을 살펴보면 그가 불교에 공헌한 업적을 알 수 있기에 저작들을 열거해보겠습니다. 세친 보살의 저작은 분량도 많고 내용도 실로 방대하기 때문에 전부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식관련 논서와 주석서만을 살펴보겠습니다.(주1)
먼저 유식 논서로는 유식사상을 30개의 게송으로 총 정리한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triṃśikāvijñaptikārikā)』, 업 사상을 유식의 입장에서 기술한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karmasiddhi)』, 20개의 게송으로 외계실재론자와 대론하면서 유식무경을 논증한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viṃśatikāvijñaptimātratāsi ddhiḥ)』, 오온으로 유식사상을 설명한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pañcaskandh aka)』, 삼성설(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삼성론(三性論, trisvabhāva)』(주2)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식 논서에 대한 주석서로는 친형 무착 보살의 저작으로 대승을 포괄하는 논서라는 의미의 『섭대승론』을 주석한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mahāyānasaṃgraha-bhāṣya)』, 미륵보살의 저작으로 대승경전의 장엄을 목적으로 기술한 『대승장엄경론』(주3)을 주석한 『대승장엄경론석(大乘莊嚴經論釋, mahāyāna-sūtrālaṃkāra-bhāṣya)』, 미륵의 저작으로 중도와 유무의 양극단을 밝힌 『변중변론석』의 주석서인 『변중변론석(辨中邊論釋, madhyāntavibhāga -bhāṣya)』 등이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불교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모든 불교의 기초문헌 중의 하나인 『구사론』, 경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석궤론(釋軌論, Vyākhyāyukti)』(주4) 등도 있습니다.
이런 많은 세친 보살의 저작 중에서 유식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은 『유식삼십송』, 『유식이십론』, 『대승오온론』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3권은 유식사상의 핵심사상을 담고 있는 세친 보살의 대표적인 저작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식삼십송』(600자), 『유식이십론』(220자, 自註 제외), 『대승오온론』(3,099자)은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3권에 관한 국내 해설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김명우, 『유식삼십송과 유식불교』, 예문서원, 2009.
✽ 효도 가즈오 지음·김명우 옮김, 『유식불교, 유식이십론을 읽다』, 예문서원, 2011.
✽ 모로 시게키 지음·허암 옮김, 『오온과 유식 - 대승오온론 역주』, 민족사, 2018.
이런 다수의 저작을 남긴 세친 보살에 대해 두 사람이라는 학설이 등장합니다. 유식불교에 대해 공부하신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프라우발너(E. Frauwallner) 교수의 ‘세친 2인설’입니다.(주5) 이 주장은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세친 보살의 생존연대에 관한 다수의 전승이 있는데, 앞에서 소개한 『바수반두법사전』 이외에도 현장 스님(602~664)이나 그의 제자 자은대사 규기(632~682)가 전하는 전승, 현장 스님과 더불어 유명한 한역자인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 주변의 전승, 티베트 전승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에 기록된 세친 보살의 연대는 제각각이라 일치하지 않지만, 크게 나누면 불멸 900년 후, 1000년, 1100년의 셋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기로 말하면 대략 4세기·5세기에 해당됩니다. 그 결과 세친 보살의 연대는 연구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게 된 것입니다. 프라우발너 교수는 이것에 주목하여 세친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실제로 2명이었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전승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세친 2인설과 인도인의 역사관
세친 2인설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가 있습니다. 『구사론』에 대한 주석서(『abhidharmakośa-vyākhyā』)를 쓴 인도의 학승 야쇼미트라Yaśomitra나 현장 스님의 제자인 보광普光이 쓴 『구사론기俱舍論記』라는 주석서에서 『구사론』의 저자인 세친[바수반두]과는 다른 별도의 바수반두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야쇼미트라 논사는 이 ‘별도의 바수반두’를 ‘고사古師 바수반두vŗddhācārya-Vasubandhu’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구사론기』에서는 이 사람을 ‘고세친古世親’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프라우발너 교수는 야쇼미트라 논사의 기록을 근거로 고古 바수반두와 신新 바수반두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프라우발너 교수는 고사古師 바수반두를 전승에 있는 불멸 후 900년경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마라집의 자료에 근거하여 4세기 전반의 사람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한편 『구사론』의 작자인 신사新師 바수반두에 대해서는 불멸 후 1000년 또는 1100년에 해당하는 5세기 경 사람이라고 추론하였습니다. 『구사론』 이외에도 『승의칠십론』 등의 작자도 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프라우발너 교수의 제자이자 세계적인 유식연구자인 슈미트하우젠L.Schmithausen 교수는 이 주장을 계승하여 『구사론』, 『유식삼십송』, 『유식이십론』이 동일하게 경량부라는 부파불교의 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고사 바수반두와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대부분의 일본 학자들은 ‘세친 1인설’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저작을 남겼을까? 인도에서는 많은 저작을 유명한 학자 한 사람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베단타학파의 대성자인 샹카라는 300여 권의 저서가 남아 있고, 중관학파의 창시자인 용수도 20여 권의 저술서가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인도의 풍토를 따라 많은 저서들이 세친 보살 저작으로 둔갑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도인들은 역사적인 기록에 대해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어느 역사학자는 ‘인도는 역사가 없는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인도가 정말로 역사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연대를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도인에게 10년, 20년의 차이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붓다조차도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것에 대해 몇 개의 학설이 전승하지만,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과의 사이에는 100여 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참조해보면 세친 보살의 생존연대와 저작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세친 2인설’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주1) 자세한 것은 『오온과 유식』(2018), pp.29~32. 참조 바란다.
(주2) 38게송[티베트 역은 40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스크리트본과 티베트 역은 현존하지만, 한역은 현존하지 않는다.
(주3) 『대승장엄경론』에 대해서는 김명우(2008), 『유식의 삼성설 연구』, 한국학술정보. 참조 바란다.
(주4) 티베트 번역본만이 현존하고 있지만, 원제목은 산스크리트 문헌에서 확인 가능하다. 아직 본격적인 연구는 되지 않았지만, 궁금하신 분은 『석궤론』에 관한 연구는 이종철 교수의 『世親思想の硏究―釋軌論を中心として』(山喜房, 2001)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주5) E. Frauwaller(1951), On the date of the Buddhist Master of the Law Vasubandhu, Roma.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