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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화엄의 십종교판과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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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9 년 2 월 [통권 제7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5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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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구마라집 이후 방대한 경전들이 한역漢譯되면서 중국불교계에는 교학적 혼란이 발생했다. 자연히 이들 경전이 등장한 시기와 내용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당대까지 번역된 모든 경전을 분석하여 경전이 등장한 시기와 내용을 분류하는 교학체계가 등장하게 된다.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 또는 줄여서 ‘교판敎判’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분하여 해석한다.’는 뜻이다. 수당시대에 수십 종에 달하는 교판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천태지의의 천태교판과 현수법장의 화엄교판이 교판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 두 교판의 특징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청량징관의 교판敎判

 

첫째, 시기적 분류인가 내용적 분류인가이다. 천태교판은 오시팔교五時八敎로 분류된다. 경전의 설법시기를 다섯 시기로 구분하고, 교설의 내용에 따라 화법사교化法四敎와 화의사교化儀四敎라는 여덟 가지 주제로 세분했다. 이에 반해 화엄교판은 오교십종五敎十宗으로 분류했다. 먼저 현수 법장은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오교십종으로 정리했다. 소승교(小乘敎: 『아함경』), 대승시교(大乘始敎: 『해심밀경』), 대승돈교(大乘頓敎: 『능가경』, 『승만경』), 대승종교(大乘終敎: 『유마경』), 대승원교(大乘圓敎: 『화엄경』)가 그것이다. 천태의 오시가 경전의 설법시기를 중심으로 한 구분이라면 법장의 오교는 경전의 내용적 깊이를 중심으로 한 분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독자적 내용분류인가 부파적 분류인가이다. 천태의 오시교판은 팔교로 세분되고, 화엄의 오교교판은 다시 열 가지 종파적 구분인 십종으로 세분된다. 천태의 팔교는 독자적인 내용분류에 따라 분류한 반면 화엄의 십종판은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부파의 교설로 구분한 것이 특징이다.
셋째, 십종교판은 중도를 기준으로 교설의 깊이를 구분한 점이다. 물론 두 교판이 모두 중도를 최고의 교설인 원교圓敎라고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화엄의 십종교판은 분류 기준 자체를 중도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화엄종에서는 최고 단계의 교설을 ‘화엄원교華嚴圓敎’라고 불리는 화엄경을 들고 있다. 여기서 원교의 내용이란 다름 아닌 중도사상을 의미한다. 화엄종을 집대성한 대가들의 사상을 살펴보면 화엄원교는 쌍차쌍조雙遮雙照라는 중도를 핵심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존재의 우주적 관계성을 규명하는 법계연기法界緣起도 중도가 핵심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십종교판에서는 중도의 원리에 입각해서 교설의 심천深淺을 구분하고, 중도에서 벗어난 사상은 부처님의 근본에서 벗어난 것으로 분류한다. 반대로 중도에 가깝고 충실할수록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에 충실한 것으로 분류했다. 법장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불교의 다양한 교설을 열 가지로 분류하여 십종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백일법문』에서는 원융중도를 해명하는 데는 청량징관의 설이 더 적합하다는 이유로 청량의 십종교판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청량은 법장의 교판을 계승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청량의 『대방광불화엄경소』에 따르면 십종교판은 부처님께서 일생에 걸쳐 설한 말씀을 열 가지 내용으로 구분 짓고 그 사상적 특징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십종교판은 중도에 대한 내용을 기준으로 교설의 수준을 평가하고, 이를 다시 각 부파와 연결 짓고 있다. 청량이 정리한 십종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도와 거리 있는 소승부파

 

첫째,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이다. 자아[아我]와 현상[법法]이 모두 실체가 있다는 교설로 독자부犢子部의 교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관[아我]과 객관[법法]이 모두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것이 아법구유종의 특징이다. 이는 완전한 유견有見에 해당함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가장 거리가 먼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이다. 객관인 현상과 사물[법法]은 실체가 있지만 주관인 자아[아我]는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살바다부薩婆多部의 교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객체로서 보편적 현상과 존재는 실체가 있지만 ‘나’라는 개체는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존재의 실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셋째,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이다. 법法은 과거나 미래에도 없다는 것으로 대중부大衆部의 교설이 여기에 속한다. 법은 과거, 현재, 미래할 것 없이 체體와 용用이 없다는 것이므로 완전한 무견無見에 해당한다. 모든 것이 공하다고만 보는 것은 허무적멸에 집착하는 또 다른 변견이므로 실체가 있다는 유견과 마찬가지로 중도와 거리가 멀다.

 

넷째, 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이다. 모든 법은 현재에만 일시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으로 설가부說假部의 입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온五蘊에 속하는 법은 실재하지만 그 대상이 되는 계界는 실체가 없는 거짓[가假]이라는 관점이다.

 

다섯째,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이다. 세속의 현상[법法]은 허망하고 출세간의 진리만이 진실하다는 입장으로 설출세부說出世部의 사상이 여기에 속한다. 세속적 가치와 현상을 철저히 부정하고 오로지 출세간만을 진실이라고 보기 때문에 세간을 혐오하고 출세간만을 지향하는 편향적 성향을 뛰게 된다.

 

여섯째,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이다. 일체 만법은 단지 이름만 있을 뿐 불변의 실체란 없다는 주장이다. 서양철학의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과 대비되는 사상으로 역시 허무론에 가깝다. 법장은 여기까지를 소승부파의 견해로 분류했다.

 

일곱째, 삼성공유종三性空有宗이다. 삼성三性이 공空하면서 동시에 있다[유有]는 것으로 유식학파의 교설이 여기에 해당한다. 즉, ‘변계소집성은 공하지만[변시계공遍計是空],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있다[의원유고依圓有故]’는 것이다. 호법護法에 따르면 변계遍計란 제6식과 제7식이 여러 경계를 반연하여 일어나는 망상妄想과 망념妄念과 망정妄情을 뜻한다. 이렇게 생겨난 것은 모두 망집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는 것이다.

 

반면 의타기依他起란 일체 현상은 모두 인연 따라 발생하는데, 마치 환영과 같이[여환如幻] 실체가 없지만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환영이지만 환영의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은 분명히 있다. 이를 ‘여환가如幻假’ 즉, 환영과 같이 가유假有로써 있기 때문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원성실성圓成實性이란 이공二空, 즉 자아[아我]와 현상[법法]이 완전히 텅 비어서 드러나는 진여실성眞如實性이다.

 

유식종에서는 삼성공유의 이치를 중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장은 이를 비판하며 원융무애한 중도로 평가하지 않는다. 삼성공유라는 개념에 중도적 특성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완전한 중도, 부처님의 제일의제로서 근본사상을 전하는 종파로는 취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식종을 대승사상이 시작되는 교설이라는 뜻으로 대승시교大乘始敎로 분류했다.

 

여덟째, 진공절상종眞空絶相宗이다. 모든 것이 텅 비어서 모든 상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대승돈교大乘頓敎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공절상이란 마음과 경계, 즉 자아[아我]와 현상[법法]이 전부 텅 비었다는 뜻이다[심경양망心境兩亡]. 이는 마음과 경계 양쪽이 모두 없어지는 진공眞空으로서 쌍차雙遮를 표현한 것이다.

 

중도에 충실한 대승교설

 

아홉째, 공유무애종空有無碍宗이다. 공空과 유有가 서로 걸림이 없다는 것으로 대승종교大乘終敎에 해당한다. 공과 유가 서로 걸림 없이 융통하여 ‘공’이라 할 수도 없고 ‘유’라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공과 유가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다. 서로 원융하여 쌍으로 단절되었나[호융쌍절互融雙絶] 서로가 존재하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불애양존不碍兩存]. 이렇게 공과 유가 ‘서로 양쪽이 존재하는 것을 장애하지 않는다’는 것은 둘 다 긍정하는 쌍조雙照를 뜻한다. 진공절상은 쌍차만 주장하여 일체가 공이라는 견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화엄종에서는 돈교頓敎로 보았다. 반면 공유무애는 모든 것이 다 공하여 양쪽이 다 끊어졌지만 동시에 양쪽이 다 존재하는 것을 장애하지 않음으로 쌍조雙照가 되어 양쪽을 다 긍정한다.

 

열째, 원융구덕종圓融俱德宗이다. 원융하게 덕을 구비했다는 것으로 화엄원교가 여기에 해당한다. 덕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은 쌍차하고 쌍조하는 것이 원융무애하다는 것을 뜻한다. 쌍차쌍조해서 원융무애하기 때문에 중도의 궁극을 표현하고 있음으로 이를 ‘화엄의 최고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화엄종취華嚴宗趣라고 했다. 주主와 반伴이 구족하여 끝없는 연기가 자유자재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화엄원교華嚴圓敎라고 불렀다.

 

진공절상종에서는 쌍차만 주장했음으로 부정만 했고, 공유무애종에서는 쌍조만 주장했으니 긍정만 했다. 반면 원융구덕종은 쌍차와 쌍조를 동시에 구족하여 원융무애하기 때문에 참다운 중도로서 완전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청량은 이상의 열 가지 분류 중에 네 번째까지를 소승으로 분류하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소승과 대승에 모두 해당하는 교설로 분류했다. 그리고 일곱 번째부터는 대승사상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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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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