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이야기]
자증분, 기억과 역사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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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해 / 2019 년 2 월 [통권 제7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78회 / 댓글0건본문
정은해 |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은 사람들에게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근심도 있고 희망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근심도 기억에서 비롯되고 희망도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근심이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런데 어째서 희망도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말인가? 희망이란 삶의 변화에 대한 바람이고, 이것은 개인의 삶이나 사회의 과정에서 새로운 역사가 이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람이나 희망은 일종의 기대인데, 기대는 기억이 미래에 투사됨에 의해 성립한다. 이 점을 후설E.Husserl은 “기대직관Erwartungsanschaung은 거꾸로 된 기억직관umgestülpte Erinnerungsanschaung이다”(주1)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리 보면, 기억이 근심과 희망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기억이 번뇌와 열반을, 더 나아가 불국토의 수립을 가능하게 한다.
기억과 역사의 관계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다. 집단의 기억이 집단의 역사라는 말도 많이 회자되었다. 니체F.Nietzsche는 『삶에 대한 역사의 장점과 단점』이라는 글에서 역사 서술의 방식으로 호고적인 역사 서술, 기념비적인 역사 서술, 비판적인 역사 서술이라는 세 방식이 있다고 설명한다. 호고적인 역사 서술은 보수 우파들이 좋아할만한 방식이고, 기념비적인 역사 서술은 영웅주의자들이 좋아할만한 방식이고, 비판적인 역사 서술은 진보 좌파들이 좋아할만한 방식이 다. 니체는 저 세 가지 방식의 역사 서술이 삶에 대해 갖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런 설명 중에서 필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던 내용은 한 동물과 사람 사이의 유머러스한 문답이었다. 필자는 그 동물을 개라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는데, 니체라는 비장한 철학자에게 유머를 구사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다. 해당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 앞에서 풀을 뜯어 먹는 한 떼의 동물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동물은 어제와 오늘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주위를 뛰어다니며, 먹고, 쉬고, 소화하고, 다시 뛰어다닌다. 그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또 매일 마다 그렇게 지내고, 단지 잠시 동안만 그들의 유쾌함과 불쾌함에 관심을 두고, 순간에 사로잡히기에, 그런 까닭에 우울해하지도 지루해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을 사람이 알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인간이고 동물이 아니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하고 동물의 행복을 시샘하기 때문이다. [시샘하는 이유는] 사람은 동물 같이 지루하지도 않고 아픔도 없이 사는 것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을 헛되게 원하는데, 왜냐하면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을 동물 같이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동물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 너는 나에게 너의 행복에 관해 말하지 않고, 단지 나를 쳐다보기만 하니? 그 동물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말하려고 원했던 것을 항상 즉시 잊어버리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 때에 그 동물은 이 대답을 잊어버렸고 말없이 머물렀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단지 궁금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주2)
한 마디로 말해 동물은 매 순간을 망각하는 자이기에 늘 행복하고, 인간은 이런 행복을 부러워하지만 동물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은 기억이 불행의 근원일지라도 기억하는 자로 남기를, 곧 동물이 아니기를 원한다. 이 점에 대해 니체는 이어지는 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자신이 잊는 일을 배울 수 없고, 오히려 항상 과거에 집착한 채로 머문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멀리 또 빠르게 사람이 달릴지라도 [과거라는] 사슬이 사람과 함께 달린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순간은 순식간에 여기에 있고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전의 것도 아니고 이후의 것도 아닌데도, 그럼에도 유령처럼 되돌아오고, 다음 순간의 고요를 방해한다. 반복하고 반복해서 시간의 두루마리 속에서 한 페이지가 느슨해지고, 떨어지고 펄럭이며 떠나간다. 그리고 갑자기 사람의 무릎 속으로 펄럭이며 돌아온다. 그러면 사람은 ‘나는 기억한다’[I remember]고 말하고, 동물을 시샘하는데, 이 동물은 매순간을 즉시로 잊고, 또 매 순간이 정말로 죽어서 깊은 밤 속으로 가라앉고 영원히 소멸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동물은 ‘비역사적으로unhistorically’ 살아간다.”(주3)
지나간 순간이 기억되면서 다음 순간의 고요를 방해할 때,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는 자임을 알아차리고 망각하는 자인 동물을 시샘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나는 기억한다’는 문장과 ‘동물은 비역사적으로 살아간다’는 문장을 통해 기억하는 인간이 역사적인 자이고 망각하는 동물이 비역사적인 자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기억이 역사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기억이 역사의 근원이라면, 그렇다면 기억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으로서의 자증분自證分이다. 현장은 『성유식론』에서 인식에서 분리된 소연(대상)이 있다고 보는 소승 불교의 입장에 대비시켜 대승불교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자증분이 기억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힌다:
“인식에서 분리된 소연으로서의 대상이 없다고 통달한 자는 곧 상분을 소연이라고 말하고, 견분을 행상이라고 부른다. 상분과 견분이 거기에 의지하는 있는 자체自體를 사체[사事](주4)라고 부르는데, 곧 자증분이다. 이것이 만약 없다면, 사람은 자신의[이전의] 심법과 심소법를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일찍이 경험하지 않은 대상은 반드시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같다.”(주5)
자증분은 상분과 견분이 의지하는 몸체이고, 이 몸체가 기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증분이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자증분이 이전의 심법과 심소법의 상분과 견분을 저장해두기 때문이다. 기억과 자증분의 관계에 대한 현장의 설명은 기억이 자증분의 존재에 대한 인식근거이고 자증분이 기억의 발생에 대한 존재근거라는 논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자증분은 마음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의 제3분이다. 현장은 제3자증분이 제2견분과 제4증자증분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제3자증분은 제2견분과 제4증자증분을 연한다. [제4의] 증자증분은 오직 제3자증분을 연하고, 제2견분을 연하지는 않는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주6)
제4증자증분이 제2견분을 인식하는(연하는) 것이 쓸모가 없는 이유는 제3자증분이 제2견분을 이미 인식하고 있기에, 제3자증분을 인식하는 것이 이미 제2견분을 인식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제3자증분은 제2견분과 제4증자증분을 함께 인식한다고 말해진 것일까? 그 말은 소량(所量, 인식대상), 능량(能量, 인식작용), 양과(量果, 인식결과)라는 개념들을 매개로 이해될 수 있다. 1) 상분이 소량인 경우에는, 견분이 능량이고 자증분이 양과(의 저장장소)이다. 2) 견분이 소량인 경우에는, 자증분이 능량이고 증자증분이 양과이다. 3 자증분이 소량인 경우에는, 증자증분이 능량이고 자증분이 양과이다. 4) 증자증분이 소량인 경우에는 자증분이 능량이고 증자증분이 양과이다. 여기서 2번과 4번의 능량에 주목해보면, 자증분이 견분과 증자증분을 모두 인식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3번과 4번을 합쳐서 보면, 자증분과 증자증분은 서로를 인식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자증분과 증자증분의 상호 인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4분을 6개 부분으로 확대해 아래 도표와 같이 표현해 볼 필요가 있다.
심4분을 6개 부분으로 확대해 나열할 가능성은 제3자증분과 제4증자증분이 서로를 대상(소연)으로 삼아 인식한다는 점에 있다. 위의 도표의 첫째 줄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제1상분을 제2견분이 인식한 결과는 제3자증분에 저장되고, 제2견분을 제3자증분이 인식한 결과는 제4증자증분에 저장된다. 마찬가지로 제3자증분을 제4증자증분이 인식한 결과는 자증분2인 제3자증분에 저장되고, 제4증자증분(증자증분1)을 제3자증분(자증분2)이 인식한 결과는 증자증분2인 제4자증분에 저장된다. 위의 도표에서 첫째 줄의 셋째 칸부터 다섯째 칸까지를 살펴보면 자증분과 증자증분이 서로를 인식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서양철학의 용어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도 있다: 대상의식은 자기의식1에게 알려지며, 자기의식1의 내용은 반성의식1에게 알려진다. 마찬가지로 반성의식1의 내용은 자기의식2에게 알려지며, 자기의식2의 내용은 반성의식2에 알려진다. 이 점은 위의 도표의 둘째 줄에서 표시되었다.
현장은 앞에서 보았듯이 견분을 파악한 자증분의 내용이 기억에게 알려짐을 지적함에 의해, 기억이 자증분의 존재에 대한 인식근거이고 자증분이 기억의 발생에 대한 존재근거라고 논증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논증에 동의하고 또한 기억(기억적 반성)과 차이나는 반조(관조적 반성, 증자증분)가 있다고 인정한다고 하면, 다음의 설명이 가능하다. 자증분이 증자증분의 발생을 가능하게 하므로, 자증분은 증자증분의 발생에 대한 존재근거가 된다. 자증분이 증자증분의 발생에 대한 존재근거가 되기에, 거꾸로 증자증분은 자증분의 존재에 대한 인식근거가 된다. 이것은 증자증분과 자증분이 어떻게든 상호 의존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이로써 자증분과 증자증분을 함께 수립한 심4분설이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다른 한편으로 기억(기억적 반성)과 반조(관조적 반성, 증자증분)에 차이가 없다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심3분설만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희망을 갖고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지난해를 돌아보는 일을 수반하고, 이러한 맞이함과 돌아봄은 모두 자증분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주)
(주1) 에드문트 후설, 『시간의식』, 이종훈 역, 한길사, 1998, 130쪽.
(주2) Friedrich Nietzsche, On the Advantage and Disadvantage of History for Life , translated by Peter Preuss, Hackett Publishing Company, Indianapolis, 1980, p.8.
(주3) 위의 책, pp.8-9.
(주4) Fransis H. Cook, Three Texts on Consciousness Only , Berkeley: Numata Center for Buddhist Translation, 1999, p. 62: “the substance”.
(주5) 成唯識論』, T1585_.31.0010b05-b09: 達無離識所縁境者. 則説相分是所縁. 見分名行相. 相見所依自體名事. 即自證分. 此若無者應不自憶心心所法. 如不曾更境必不能憶故. 『성유식론 외』, 김묘주 역주, 173쪽 참고.
(주6) 『成唯識論』, T1585_.31.0010b24-b26: 第三能縁第二第四. 證自證分唯縁第三. 非第二者以無用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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