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부디 이 땅의 업장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주소서
페이지 정보
고은 / 1996 년 9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11,184회 / 댓글0건본문
큰스님을 생각하며 / 부디 이 땅의 업장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주소서
고은 / 시인
성철 큰스님의 열반으로 새삼 출가 승니(僧尼)의 본분을 생각한다.
세상이 당장 통쾌한 말을 듣고자 했을 적에 그 분은 『벽암록(碧巖錄)』 속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읊어 옛 소리를 살려냈다. 이에 혹은 어리둥절했고 혹은 과시평상심저(果是平常心底)로구나 했으리라. 이 말의 파장이 있었던 바는 저 처참한 80년대 초가 아니었던가. 나야 그것을 들을 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긴 안목이건대, 한 시절에 값하는 수작일 뿐이라면 그것은 출격장부(出格丈夫)의 소임이 아닐 터이다.

그 분은 비구승단 조계종의 종권 확보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같은 연배의 지난날 결사도반(結社道伴)들이 배를 가르고 손가락을 자르는 위법망구(爲法忘驅)에 여념 없을 때도 다못 팔공산 성전 토굴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일 하나로 보아도 스승 하동산(河東山) 스님까지 능히 저버리는 정진의 이판(理判)이었다. 하기야 그 옛날 금강산 선방에서 공부할 적에 거기까지 찾아온 어머니한테 돌팔매를 던진 데서 그 단호한 임제가풍(臨濟家風)의 의지는 비롯되고 있다. 말 그대로 한 번 산에 들면 그 산을 나가는 길을 없애 버린 것이다.
불법이 중생을 위한 온갖 방편을 다 발원하여 우리로 하여금 멀리는 원효(元曉)의 길이 있고 가까이는 경허(鏡虛)와 만해(萬海)의 길이 있건만 그 분은 그런 선사(先師)들도 한 방망이로 타파한 납자 그 자체였다. 이로써 생각건대, 한 번 집을 나간 중은 첫째 정진(精進)이 으뜸이라는 그것이다.
결연히 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나서서 세상만사에 동참하는 일이 쉬운 노릇이 아니건만 일단 축발(祝髮) 이후의 산중살림이라면 그 바탕에 공부가 먼저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진면목이다.
성철 큰스님은 바로 이 점에서 작금의 불교계에 뇌성벽력을 내리친 권보살(權菩薩)이며, 다른 모든 종교계에도 말의 거짓, 말의 집착에 대한 경책을 보낸 이보살(理菩薩)이었다. 초조(初祖) 달마 9년 변멱(面壁) 정진과 어깨를 겨루어 오늘의 선지식 중에 8년 동안 눕는 일 걷어치운 그 치열한 용맹이 어찌 일대사인연 아니랴.
말을 하기로 하면 그 분만큼 현학적일 정도의 해박한 식견도 없거니와 그 분이 설한 성철오계(性徹五戒)의 으뜸이 ‘말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이어서 ‘책의 문자에 다가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말의 생명을 살려내자는 것밖에는 다른 바 아니라면 그 분의 원력으로 완간한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와 법어집은 그 분의 열반을 앞둔 선지(禪旨)의 결집(結集)이매 새삼 눈물겨운 일이다.
성철 큰스님은 자애롭다, 천진이다 하고 누가 말하지만 그 분의 특장(特長)은 엄혹 거기에 있다. 사람 하나 다루는 데도 금강산 1만 2천 봉을 다 써버리며 시자나 상좌 하나 길러내는 데도 향수해(香水海) 바닷물을 다 써서 그 파도에 실려 보내는 것이다. 실로 자비문중(慈悲門中)의 무자비(無慈悲)였다. 그런 뼈 으스러지는 공부를 통한 뒤에라야 겨우 가야산 겨울 홍시 두어 개를 따먹으리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산중에 이런 스님이 또 나타나야 한다. 문이 없이 그냥 벌판의 무애(無碍)도 썩 좋으나 문 닫혀 꽉 막힌 그 오도 가도 못할 궁처(窮處)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백척간두진일보가 있음이라면.
성철 큰스님은 소금 없는 식단으로 한 평생을 다하였다. 그 분 자신이 소금이었기 때문인가. 이 세상 썩어 가는데 그 소금의 법(法)이 있어 아직 이 세상은 그 분의 열반에 옷깃을 여미는 것이다.
이제 연화대에 하화(下火)하면 그 연화대가 화중연화(火中蓮華) 아니랴. 부디 이 땅의 수고 많은 업장(業障) 가운데 다시 오셔서 잠자지 말라 외쳐 주소서. 부디부디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로다 하고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어긋나 새로운 법계에 주장자를 치소서.
* 이 글은 성철 큰스님이 열반하신 93년 11월 4일 이후, 각계의 인사들이 스님이 열반을 애도하는 글을 발표한 가운데 경향신문 11일 자에 실린 고은 시인의 추도사입니다. 3주기를 즈음하여, 큰스님께서 우리 곁에 오고 가신 뜻을 깊이 생가하며, 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자 합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카일라스산 VS 카일라사 나트
『고경』을 읽고 계시는 독자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필자는 히말라야의 분수령에 서 있다. 성산聖山 카일라스산을 향해 이미 순례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앞다리는 티베트의 땅을 …
김규현 /
-
기후미식의 원형 사찰음식
사찰음식은 불교의 자비와 절제, 공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합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생명을 해치지 않고도 풍요를 느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음식 문화입니다. 인공조미료나 육류를…
박성희 /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강설⑧ 회기迴機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12 회기라! 기틀을 돌린다고 해도 괜찮고, 돌려준다고 해도 괜찮고, 경계에서 한 바퀴 빙 도는 셈이야. 열반성리상유위涅槃城裏尙猶危&…
성철스님 /
-
소신공양과 죽음이 삶을 이기는 방법
만해 선생이 내 백씨를 보고,“범부, 중국 고승전高僧傳에서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니 분신공양焚身供養이니 하는 기록이 가끔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아…” 했다.내 백씨는 천천히 입을 …
김춘식 /
-
법안문익의 오도송과 게송
중국선 이야기 57_ 법안종 ❹ 중국선에서는 선사들의 게송偈頌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다. 본래 불교는 십이분교十二分敎(주1)로 나누고 있으며, 그 가운데 운문韻文에 해…
김진무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