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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친구 · 후배와 함께 한 2박3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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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5 월 [통권 제73호]  /     /  작성일20-06-20 16:36  /   조회6,3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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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불교 전문 작가 

 

“이 꽃피고 아름다운 봄,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친구, 후배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다가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난 내장사로 가자.’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그러다가 여행지가 쌍계사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와 봄을 즐기다

 

“요즘 섬진강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을 텐데 거기가 더 낫지 않을까? 내장사는 다음에 가도 되고.” 내 의견에 그것도 좋겠다는 데 뜻을 모으고 엊그제 화개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울도 벚꽃이 한창인 듯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고, 우리 셋은 따스한 봄볕에 꽃이 다투어 피어나듯 지난날을 추억하느라 수다스러워졌다. 실로 수십 년 만에 함께 여행을 가자니 할 말도 많았던 거다. 동국대 이기영 교수님이 원장으로 계시던 한국불교연구원 구도회 대학생부 회원이었던 우리는 40년 전 내장사 수련회에서 처음 만났다. 나와 후배는 그해 가을, 이기영, 서경수 교수님이 강의한 불교기초교리강좌를 듣고 불교에 푹 빠져 대학생부 회원이 되어서 첫 수련회에 참석한 것이었고, 친구는 1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대학생부에 소속이 되어 수련회에 온 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와 후배는 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였고, 그 둘은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누구보다 가까이 지냈다.

 

난생 처음 절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맞은 첫 수련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거기서 처음 새벽예불을 했고, 겨울 산사의 창호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었고, 고요한 절 마당을 걸었다. 그리고 처음 1080배를 했다. 저 모든 것은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행운으로 여기는 것들이다. 수련회가 끝나고 내장사에서 백양사로 넘어가는 산길을 말없이 걸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사박사박 마른 낙엽을 밟으며 걸었던 그 산길을 다시 한 번 걸어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하고 있다. 꼭 한 번 걸어봐야지.

 

“그 때 왜 우리 좌담회 할 때 누군가 지도교수한테 말대답했다고 혼났던 거 기억하니?”

“그랬어? 나는 그건 기억이 안 나, 절을 한 뒤 깨죽 먹은 거 생각 나.”

“우리 왜 수련회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목욕탕에도 같이 갔잖아요.”

“그래 기억나. 그런데 왜 목욕탕에 갔을까?”

 

남녀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20여 명의 우리들은 그 후 중등 과정 야학을 하면서 동지애를 다졌고, 함께 이기영 박사님의 불교 강의를 지속해 들으며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언젠가 책을 정리하다가 보니 금강경 책에 적어놓은 깨알 같은 글씨들로 가득했다. 책장 사이사이로 불교의 핵심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보였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서야 ‘불교가 이런 것이었구나’ 했는데도, 정리는 제대로 해놓은 것을 보면, 그때는 제대로 이해를 못한 채 적어놓지만,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공부가 익어갔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여름, 친구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업가로 변신, 음식점을 경영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기독교가 주류를 이룬 교포사회에서도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정진하며 그곳 절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지금도 신심이 깊은 친구다.

 

“거기서 견뎌 내다니 대단하다. 우리랑 함께 활동했던 아무개는 유학 갔다가 교회에 나갔잖아. 지도교수가 한국 사람이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논문을 쓸 수가 없었대. 한국에 와서 잠깐 만난 적이 있는데, 고심 끝에 교회에 나갔고 그 후로 대다수의 기독교 친구들과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종교를 바꿨다고 하더라. 또 아무개는 부인이 기독교로 전향하는 바람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종교를 바꿨다고 하더라고. 부인이 불교 책을 보는 것도 싫어해 직장에서나 불교 책을 본다네.”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불심이 깊은 이모를 따라 절에 다녔다고 한다. 조계사 어린이회 출신이라고 하니 적극적인 기독교인들이 대다수인 미국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보라는 뜻에서 여름방학 때 어린이 성경학교를 보냈다고 한다. 그랬는데, 며칠 후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엄마, 나 다시는 안갈 거야’ 하더란다.

 

“우리애가 목사님한테 하나님은 누구나 다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왜 닭이나 다른 가축들은 사람에게 잡혀먹도록 창조되었느냐고 물었다나봐. 그랬는데 그 목사님이 우리 애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못했나보지? 그 후로 자연스럽게 제 아빠랑 나랑 절에 갈 때 따라다니더라고.”

 

이렇듯 애들은 자연히 부모를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범어사에서 뵌 선방 스님 한 분이 ‘애들이 젊을 때부터 수행을 했으면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가 수행하면서 잘 살면 자연히 따라서 합니다.”라고 하셨다.

 

친구는 한국에 올 때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여행할 때 꼭 절에 들른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화엄사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음엔 가족들 모두 함께 다시 오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두 아들은 중국과 호주에서 유학중이다. 어렸을 때 두 아들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순진하고 반듯하던지 예전의 친구를 보는 것 같았다.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이제 부모님이 계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친구에게 내가 그랬다.

“얘, 돌아와. 한국에 와서 살면서 선방에 다니면서 수행하면 되잖아. 우리가 이제 수행으로 마무리 할 나이잖아.”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니 홀가분하다는 후배

 

사실 이번에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3년 전 유방암 선고를 받고 아직도 암과 투쟁중인 후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는 친구가 더 늦기 전 여행을 하자고 제안해서 이뤄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사회 시간에 대표로 불교에 대해 발표하면서 불교와 인연이 되었다는 후배와는 그동안 비교적 자주 만나면서 지내왔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자셨고 남동생은 법 없어도 살만큼 선하고 반듯한 목사님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남을 배려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선한 후배가 언젠가부터 친정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늘어가기에 얘 108배 한번 해봐. 건강에도 좋고 마음도 다스려지고 좋아’ 했더니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3년 전 봄 이맘 때 암 선고를 받았다. 너무나 착하게 살아온 사랑하는 후배였기에 마음이 아팠었다. 더구나 몇 군데 장기로 암이 전이된 상태였기에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인생을 쿨하게 정리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육십 가까이 살았는데 이만하면 됐지요. 누구나 죽는 건데 조금 일찍 마무리한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해요. 더구나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게 마음을 내려놔서인지 그녀는 두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의사도 기적이라고 말할 만큼 한 1년 정도 괜찮더니 작년에 다시 암세포 활동이 활발해져서 다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걱정은 되었지만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지었기에 ‘괜찮구나’ 했는데 이번 여행길에 들어보니, 어찌나 힘이 들던지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까 고심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이번에 나온 내 책 『인생을 바꾼 108배』를 보고는 절을 하고 있다. 좋아지리라 믿는다. 이번에 이사를 하기 위해 살림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불필요한 물건을 얼마나 많이 지니고 살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버리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힘을 필요로 하던지 다시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보면 매번 똑같은 옷이다. 편한 옷 한두 벌이면 충분하더라고 하기에 ‘수행자가 따로 없네’ 했더니, 불필요한 물건들을 전부 정리했더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단다. 그럴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집착을 버리면 버릴수록 가벼워질 텐데 그걸 못하고 붙들고 살고 있지 않은가. 봄이 가기 전 나도 집안정리를 좀 해야겠다. 쓰지 않는 물건은 다 버려야겠다. 매사 시비 분별하는 것에 익숙해서 편치 않은 이 마음도 함께.

 

떠난 그곳이 더 좋다

 

우리 셋은 첫날, 쌍계사에서 가까운 리조트에서 머물렀다. 막,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는 산이 멀리 보이는 리조트가 맘에 들어서 하루 더 묵으려고 했더니 만실이라 불가능하단다. 할 수 없이 구례로 나가기로 하고 화엄사 근처 리조트에 예약을 하고 섬진강가 벚꽃 터널을 지나 화엄사로 갔더니, 이게 웬일인가,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던 그곳보다 훨씬 주변이 아름다웠다. 그렇다. 지금 있는 이곳이 좋아서 떠나지 못하는 것도 집착인 거다. 지금 있는 이곳을 떠나면 더 아름다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에도 갇히면 발전이 없다 싶다.

 

친구와 후배는 처음 와본 화엄사의 웅장하면서 기품 있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새벽에 리조트에서 나와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 새들의 합창을 들으면서 화엄사까지 걸어가 셋이 각황전 부처님 앞에 삼배를 올리고 있노라니 극락이 따로 없다 싶었다. 말은 안했지만 후배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앞으로 또 올 봄날에 더 많이 여행하자고, 이렇게 전국의 아름다운 절들을 다니면서 함께 극락을 거닐자고 말하고 싶었다.

 

쌍계사 근처 연암에 사시는 도현 스님께 잠깐 들렀더니 스님께서 우리에게 ‘백지수표’ 법문을 하셨다. 스님께선 세 평 작은 토굴에 별반 신도도 없이 살고 있지만 부처님께서 불법이라는 백지 수표 한 장을 주셨기에 아무 걱정 없이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쓰되 너무 낭비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잘 써야 한다고. 이번 친구, 후배와 함께 한 여행에서 나는 우리 모두에게 부처님께서 백지 수표 한 장 주신 걸 다시 환기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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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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