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오랜만에 찾은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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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9 년 9 월 [통권 제7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413회 / 댓글0건본문
원택 스님 | 발행인
지난 2월28일(음 1월14일) 조계총림 방장 범일당 보성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참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가슴을 짓눌러왔습니다. 3일째 일봉 스님과 같이 문상하러갔습니다. 『선문정로』·『본지풍광』을 정리해주셨던 법정 큰스님과 저에게 성철 큰스님 법문을 정리·출판할 영감을 주셨던 현호 큰스님 등을 떠올리며 송광사로 갔습니다.
송광사에 도착하니 큰스님이 열반에 들었음을 알려주는 플래카드도 잘 보이지 않고, 사중寺中에는 조화도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객의 안내로 빈소에 들러 절을 올리니 중앙에 방장 큰스님 영정만 덩그러니 모셔져있고, 앞단에는 촛대의 형상이랄까 뭐랄까 한 5개의 간단한 꽃 장식뿐으로, 과일이라든지 떡이라든지 과자라든지 대추·밤이라든지 하는 일체의 것들이 차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은근히 실망감이 가슴에 밀려 왔습니다. 부조 접수대에 가니 “부조는 일체 안 받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스님 죄송합니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문상을 마치고 주지 진화 스님과 송광사 어른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분들이 한결같이 “이번 보성 큰스님 열반을 계기로-법정 스님 때도 그랬지만-더 철저히 절집 상가풍습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하는 전통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송광사의 발원입니다.”라고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말씀들을 들으니 제 머릿속에 확 깨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죄송하지만 일체 대중 스님들에게 차비도 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뒤인 3월3일(음 1월27일) 사형인 해우당 원융 스님이 열반에 드시어 5일장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보름 전에 송광사에서 치러진 보성 대종사의 근엄하고 간소하며, 마음이 집중된 영결식을 보시고 온 해인사 큰스님들께서도 하나같이 송광사 영결식을 칭찬하며 “해인사도 이제 근엄하고 간결한 상을 치르자.”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문도들도 산중 분위기에 따라 영결식단도 간단하게 하고 조화도 좌·우 한 단씩만 배치한 뒤 문상을 받았습니다.
영결식단을 간소하게 차려 법구法軀를 모시니 마음은 허전했지만 산중이 다 찬성하니 다행이었습니다. 산중 대중스님들은 때맞춰 모두 모여 장중하게 염불로 극락왕생을 염원해주시니 예식은 빠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마웠던 일은 원융 스님 출상하던 날 송광사 주지 진화 스님, 수좌 현묵 스님, 도감 영진 스님, 전 주지 영조·현봉 스님 등이 대거 참석해 주신 일입니다.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원융 스님 맏 상좌인 일선 스님에게 “송광사에서 대함대가 원융 스님 출상 날에 참석해 주시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다음 하안거 때 송광사 대중공양을 가도록 하자.”고 당부해 두었습니다.
7월23일 일엄 스님하고 출발해 남원에서 일선 스님을 만나 점심시간에 송광사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주지 진화 스님을 만나 옛날 학인 시절부터의 해인사 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수좌 현묵 스님도 총림의 수좌로, 대중들을 잘 외호하는 등 변함없는 모습이어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일선 스님은 주지 스님, 수좌 현묵 스님, 선덕 범종 스님 등을 찾아뵙고 “지난 은사 스님 출상 때 먼 길을 오셔서 애도를 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올리고, 수선사에 올라 선방 열중 스님과 대중스님들에게도 인사를 올렸습니다. 보성 큰스님 때는 문상을 끝내고 사중을 돌아볼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정진 철이라 수선사 선방 공양을 끝내고 포교국장 각안 스님의 안내로 송광사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송광사 입구에 있는 ‘승보종찰 송광사 불일문’의 현판이 붙은 채 웅장하게 서있는 ‘조계산문’은 전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불일폭포에 이르니 전에 없었던 성보박물관, 템플스테이 건물 등등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송광사로 들어가며 일선 스님이 “사숙님 저희 스님 부도 형태를 정하려 여기저기 살펴보고 책들을 참고했는데, 송광사 광원암에 모셔져있는 진각국사 원조탑을 기본으로 삼을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광원암으로 올라갔는데 마침 감원인 현봉 스님은 외출 중이었습니다. 산중턱에 있는 진각국사 원조탑을 둘러보고 예를 드렸습니다. 큰 부도는 아니고 가슴께 높이의 소규모인데도, 기단의 팔각연화대좌와 상륜부 등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안내를 한 포교국장 각안 스님께 고맙다며 “그래도 멀리서 왔는데 현봉스님이 안계시니 서운합니다. 스님께 전화 한번 해주십시오.”라고 말하니, 각안스님이 바로 전화를 걸어 저에게 바꿔주었습니다. “원택 스님, 이렇게 처음 멀리서 찾아왔는데 미안합니다.”하여, “원융 스님 출상 당시 오셨을 때 ‘앞으로 송광사 큰스님들을 사형으로 잘 모시겠다’고 하니 현봉스님이 웃으며 ‘두고 봅시다’라고 하셨는데, 오늘 사형 대접하려 왔는데 안 계시는군요.” “참, 그때 그 말 듣고 실행하나 안 하나 두고 보자 했습니다. 오늘 마침 내가 책을 출판했는데 광원암에 막 도착했다고 상좌한테 전화를 받았습니다. 원택 스님께 책을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미안하고 다음에 한번 봅시다.”
총무 스님이 책을 두 박스나 주어 고마웠습니다. 백련암에 도착한 뒤 며칠 지나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흩어진[일逸] 흔적[흔痕]인 글들을 모았기에 『일흔집逸痕集』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글도 일흔 편이고 올해 나이도 일흔이다.”고 출간의 의미를 밝혀놓은 서문에 눈길이 갔습니다. 「만물이 나와 한 몸」이라는 처음 글을 읽자마자 중중무진 이어지는 내용에 끌려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목우정을 복원하고」·「인월정사 옛터에서」·「토성칠교」·「상량문」 등을 읽으며 현봉 스님의 내공과 문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송광사 행行이 더욱 의미 있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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