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 해설]
법상종과 신라 출신 학승들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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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9 년 9 월 [통권 제7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41회 / 댓글0건본문
서재영 | 성균관대 초빙교수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축을 이루는 것은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이다. 이 가운데 유식사상은 미륵彌勒, 무착無着, 세친世親을 중심으로 확립된 유가유식파로부터 기원한다. 이렇게 확립된 유식학의 중국 전래는 세 차례에 걸친 관련 논소의 번역과 궤적을 같이 한다. 먼저 중국 유식학의 서막을 연 주역은 북위시대 때 중국으로 건너온 늑나마제와 보리류지 삼장이다. 이분들에 의해 6세기 초 『십지경론』이 번역되고 이를 사상적 근간으로 하는 지론종地論宗이 성립되면서 중국불교도 유식에 눈을 뜨게 된다.
뒤이어 548년 양 무제의 초청을 받은 진제 삼장(499-569)이 많은 불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온다. 진제 삼장은 자신을 초청한 양무제가 사망하면서 고난을 겪게 되지만 무착과 세친의 유식학을 소개하는 성과를 냈다. 진제 삼장이 번역한 315권에 달하는 경전 가운데에는 『섭대승론』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소의 논소로 섭론종攝論宗이 성립하게 된다.
유식학에 대한 중국불교의 연구는 현장(玄奘, 602-664) 스님 대에 와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현장 스님은 인도에서 호법護法의 제자 계현戒贅으로부터 유식설을 받아와 659년 『성유식론』을 번역하면서 법상종法相宗 성립의 토대를 제공한다. 섭론종을 탄생시킨 진제삼장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한다면 현장 스님이 번역한 유식문헌은 ‘신역新譯’으로 불린다. 중국 유식학에서 이 두 분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상종에서 ‘법상法相’이란 ‘법의 특징’이라는 의미로 모든 존재[제법諸法]의 본성과 특성을 의미하는 ‘성상性相’을 분별하고 밝히는 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법상종은 오위백법五位百法이라는 기준을 세워 일체 존재를 세세하게 분석하여 구분한다. 하지만 오위백법이라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모든 존재의 근본은 아뢰야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법상종은 달리 유식종唯識宗으로 불리기도 하고, 유가유식파에서 기원함으로 유가종瑜伽宗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중국 법상종의 시조는 현장 스님의 제자 자은규기(窺基, 632-682) 스님이기 때문에 자은종慈恩宗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장스님과 법상종의 성립
법상종의 탄생 배경에는 현장 스님이라는 뛰어난 천재도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역경과 교학 연구를 도왔던 3천 명에 달하는 문도들의 역할도 컸다. 그렇게 많은 인재들 중에서도 특별히 신망 받는 네 명의 상족上足이 있었으니 신방神昉, 가상嘉尙, 보광普光, 규기窺基가 그들이다. 그 네 명 중에서도 현장스님의 전승자는 자은대사 규기스님이다.
규기스님은 자은사慈恩寺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까닭에 보통 자은대사로 불린다. 흥미로운 것은 규기 스님은 한족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출신의 선조를 두고 있었다.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통해 유입되었기 때문에 중국불교사에서 중앙아시아 출신의 고승들이 많다. 그런데 현장 문하의 네 명의 상족 가운데 신방의 출신지는 바로 신라였다. 이렇게 보면 현장문하의 3천의 문도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서 동쪽으로는 신라로 확장된다. 현장의 번역불사와 법상종 사상은 아시아대륙의 무수한 인재들의 참여로 이룩된 성과임을 알 수 있다.
현장 스님의 애초 계획은 상족으로 분류된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3천문도의 지원을 받아 『유식삼십론唯識三十論』을 주석한 10대 논사들의 주석서를 모두 번역하는 것이었다. 현장 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목숨을 건 전법여행에서 가져온 귀한 문헌들을 다 번역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규기스님은 사람들의 근기가 높지 않기 때문에 모든 주석서를 한꺼번에 번역하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러 논사들의 주석을 취사선택해서 종합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유식학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 되지 않았는데 10종에 달하는 논서를 한꺼번에 번역하면 그렇잖아도 어려운 유식학인데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판단은 매우 현실적인 진단이었다. 현장 스님은 제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호법護法 논사의 주석을 중심으로 삼고, 여타 아홉 종의 주석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번역을 진행한다. 이렇게 성립된 문헌이 법상종의 소의 논서가 되는 『성유식론』이다.
규기 스님은 『성유식론』의 내용에 다시 자신의 주석을 달아 『성유식론술기』 등 유식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소를 지어 법상종 교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확립된 법상종은 규기 스님의 뒤를 이어 혜소(慧沼, 650-714) 스님과 지주(智周, 668-723) 스님 순으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법상교학 자체의 한계와 화엄종의 원융무애한 사상이 등장하면서 지주 스님 사후에 교세가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신라출신의 학승 원측스님
상술한 바와 같이 현장 스님의 3천문도 중에는 4명의 상족이 있고, 그중에 한 명이 신라 출신의 신방이다. 이는 신라 출신의 학승이 법상종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 유식학에는 또 한 명의 신라출신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원측(圓測, 613-696) 스님이다. 원측 스님은 법상종의 정통 계보에는 속하지 않지만 현장 문하의 뛰어난 유식학승으로 손꼽히는 학승이다. 신방 스님이 법상종 중심에서 활동했다면 원측 스님은 비주류의 핵심으로 활동한 것이므로 법상종의 내부와 외부에 신라 출신의 학승들이 활동한 셈이다.
원측 스님은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불과 3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고, 15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섭론종攝論宗 계파인 법상法常과 승변僧辨으로부터 유식학을 배우면서 유식과 인연을 맺는다. 원측 스님은 언어에 대한 재능이 탁월해 중국어는 물론 범어까지도 능통하게 구사했다. 이에 당 태종은 친히 도첩度牒을 내리고 원법사元法寺에 머물며 연구하게 했다.
이후 원측 스님은 탁월한 어학능력과 불교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역경사업에 참여했다. 『대승밀엄경』 등의 번역에 참여하였고, 측천무후의 후원을 받아 『대승현식경』을 번역할 때는 고증을 맡아 번역을 주도했다. 나아가 보리유지 삼장이 가져온 『보우경』을 번역하고, 실차난타가 『화엄경』을 번역할 때도 참여하는 등 수많은 역경불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원측 스님은 현장 스님이 귀국하여 경전을 번역하고 유식학을 강의하자 그의 문하로 들어가 규기 스님과 동문수학하며 현장 스님을 사사師事하게 된다. 이로써 원측 스님은 중국의 3대 유식학파 중에 두 개 학파의 교리를 섭렵한다. 이와 같은 폭넓은 학식을 토대로 『성유식론소』, 『해심밀경소』 등 유식과 관련한 여러 편의 탁월한 논소를 남겼다.
하지만 자은사에 머물며 법상종의 중심으로 활동했던 규기 스님과 달리 원측 스님은 서명사西明寺에 머물렀고, 유식학에 대한 견해 역시 법상종의 주류 학설과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원측 스님은 구유식으로 불리는 섭론종의 사상과 신유식으로 불리는 현장 스님의 사상을 모두 섭렵한 이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규기 스님보다 폭넓은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원측 스님은 신·구 유식의 장단점을 융합하려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섭론종 계열의 학설을 수용했지만 진제의 9식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신유식의 8식설을 받아들였다. 반면 자은종에서 강조하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며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원측의 이런 견해는 모두 옳은 판단이었다는 것이 후대의 평가다.
학설에 대한 차이와 반론은 교학발전에 원동력이 되지만 원측 스님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 호법의 입장을 중시하는 규기 스님을 비롯한 자은학파 문인들은 원측 스님을 이단이라고 비방하며 공격했다. 게다가 신라출신이었기 때문에 비록 중국 제자들을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측 스님의 법은 오래 전승되지 못하고 단명하고 만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측 스님은 측천무후로부터 살아있는 부처로 존경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여러 경론을 번역하는데 참여한 것은 물론 방대한 저술을 통해 중국불교계에 큰 명성을 떨쳤다. 무엇보다 유식학 분야에 남긴 업적이 높이 평가받는다. 스님의 『해심밀경소』 는 티베트어로도 번역되어 티베트 불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스님의 학설이 그만큼 높게 평가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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