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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사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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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2019 년 9 월 [통권 제77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88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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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시인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창가의 봄은 자꾸 흔들렸다
암스테르담에서 체코의 프라하로 가는 5월
열차엔 붓다도 함께 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물 한 모금도 안 드시고,
반쯤 뜬 눈으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무상無常 앞에, 햇살이 찾아들고,
드디어 종착역 표시판이 나타났다

 

“어디 가세요? 바쁘실 텐데…”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나는 혼자 머쓱하여 포켓용 사전 뒷면에다 펜을 대고
가만히 흔들림 속에 생멸하는 내 마음을 따라 나섰다
선線은 꾸불꾸불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고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눈다
오로지 내가 여기 있음을
나더러 말 하라 한다.

 

“나처럼…눈 떼지 마라, 무상 앞에서…. 너도 곧 종점이다”

 

붓다는 눈 뜬 채 열반에 드셨다
나는 차 속에 붓다를 남겨둔 채  

홀로 짐을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렸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최재목
영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영남대 철학과 졸업,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 취득. 전공은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문화비교. 동경대, 하버드대,북경대, 라이덴대(네덜란드) 객원연구원 및 방문학자. 한국양명학회장 · 한국일본사상 사학회장 역임했다. 저서로 『노자』,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일본판, 대만판, 중국판, 한국판),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상상의 불교학』 등 30여 권이 있고, 논문으로 「원효와 왕양명」, 「릴케와 붓다」 등 200여 편이 있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6권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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