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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론학 강설]
섭산의 삼론학 시조 승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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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16  /   조회6,85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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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 불교학자 · 번역저술가

 

4. 사카이노 박사의 주장에 대한 김잉석 교수의 반론

 

사카이노박사가 1929년 저서를 간행하여 승랑僧朗의 수학受學과 사제설師弟說 등을 의심하는 주장을 제기하자, 전 동국대 김잉석金芿石 교수는 1959년 논문을 발표하여 그 주장을 반박하였다. 의미 있는 반론 일부를 당시의 표현 그대로 인용해 본다.

 

 ① 경야씨境野氏는 길장이 말한 승랑僧朗이 북토에서 수학修學하였던 것과 주옹周顒이 승랑에게 수학受學하였다는 이개사실二個事實은 섭령상승攝嶺相承의 교어이체敎於二諦의 신이제론新二諦論을 의의意義있게 하고, 권위 있게 하려는 구설構說로서, 지림智琳이 주옹의 삼종설三宗說에 공명共鳴하였다는 사실을 그의 방증傍證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논평하고 있다. 그러나 경야씨의 논평이야말로 사심邪心을 내포한 구설構說이라 아니할 수 없다.(주1)

 

 ② 경야씨境野氏는 승랑의 남래南來를 제말양시齊末梁始로 하고 주옹이 수학한 것을 부인否認하고 있다. 그러나 경야씨는 주옹의 수학을 섭산지사攝山之事로 오인誤認하고 부인하는 것이나, 주옹의 수학은 섭산이 아니라 분명히 종산鍾山 초당사草堂寺이니 문제될 것이 없고, 섭령입산攝嶺入山을 제말양시齊末梁始로 하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이다.(주2)

 

 ③ 승랑은 남방에 가기전 북토에서 이미 삼론三論에 난숙爛熟하였고 그후 송말宋末에 남방에 갔으며, 제말양시齊末梁始에 섭산에 들어 법도法度의 뒤를 이은 것이다. 승랑과 동시대인 혜교慧皎의 『고승전高僧傳』을 신용하여 승랑이 법도의 제자弟子임은 인정하나, 그러나 계산繼山의 제자요 사법嗣法의 제자 아님도 부언해 둔다.

 

④ 또 경야씨는 승랑 남래를 송말宋末로 하면, 주옹은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낸 학자요, 연장자年長者인데, 법도法度에게 수학하지 않고 연소자인 승랑에게 수학할 수가 있느냐 하여, 주옹수학周顒受學을 부인하고 길장구설吉藏構說로 돌리나,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길장을 모독冒瀆한 망설妄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김잉석 교수의 반론이, 도대체 사카이노 박사가 제기한 의심 사항들을 어느 정도 해명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뒤를 이어 계속 의심한 이들의 견해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그 반론 이후 히라이 슌에이平井俊榮교수와 한국어韓國語 자료를 많이 섭렵한 가마다 시게오鍾田茂雄교수의 저서들이 출간되었지만, 거기에 시카이노의 주장을 반박한 김잉석에 대한 논평은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5. 승랑의 수학과 업적을 의심한 후기의 학자들

 

1) 히라이 슌에이 교수의 의심과 가설

 

 앞에서 소개한 사카이노境野박사의 부정적 견해에 공명하여, 한층 더 자세히 부연한 이는 히라이平井俊榮교수다. 1976년에 발행한 자신의 저서에서 사카이노 박사의 주장을 수용하여 비판하면서 논의하다가, 마침내 길장이 전하는 말에도 반하는 역설적逆說的인 주장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논의 도중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으니, 김잉석의 반론과 흡사한 내용이 두 가지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승랑의 남래하여 입산入山한 시기에 대한 견해이다. 김잉석교수가 ②사항에서 “경야씨境野氏는 주옹의 수학을 섭산지사攝山之事로 오인하고 부인하였으나 주옹의 수학은 섭산攝山이 아니라 종산鍾山 초당사라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히라이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선인(先人, 境野黃洋를 말함)이 무시한 점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길장은 승랑이 직접 섭산에 왔다고 말하지 않고, 최초로 남지에 와서 종산 초당사에 머물렀다고 말한 점이다…승랑이 남유南遊하여 수년 후에 초당사에 입산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종산에서 주옹과 해후하였다고 말한 역사적 사실은 결코 있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주3)라고 하였다.

 

 또 하나는, 나이 많고 학식 높은 주옹이 연하의 승랑에게 수학한 점에 대한 것이다. 김잉석 교수가 반론한 ④사항의 내용에 대하여, 히라이 교수는 “주옹은 제영명齊永明 7년…『약성실론略成實論』을 편찬할 때 칙명에 의하여 그 서문序文을 썼다. 따라서 이미 일방一方의 대가大家인 주옹이 승랑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부정설否定說의 유력한 근거이다…법도法度를 제외하고 연소年少의 승랑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境野가) 말한 것도 경솔한 생각이다…승랑이 약년若年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주옹과의 교류를 부정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주4)라고 하였다.

 

 이 두 사항은 내용적으로 일치하거나 연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두 사항의 유사함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김잉석의 영향 때문인지, 나중에 논의한 히라이 교수의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견해가 먼저 김잉석 교수에게서 파생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사항을 하나 더 지적해 둔다. 히라이 교수는 승랑과․주옹의 사제설은, 섭령상승攝嶺相承이 관내關內 구의구종旧義旧宗의 정통소전正統所傳이라는 소이所以를 훤전喧傳하려고 한 길장의 허구라고 단정한 사카이노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이 하꾸주宇井伯壽박사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주5) 그러나 제시된 해당 저서를 필자가 찾아 보았더니, “가상대사嘉祥大師는, 대랑법사大朗法師가 관내에서 이 뜻〔三宗義〕를 얻어 주옹에게 전傳하였던 것이라고…말하였다. 대랑법사는 승랑僧朗으로…”(주6)라고 되어 있을 뿐, 길장의 허구라는 설명은 있지 않다.

 

이제 히라이 교수의 최종적인 견해를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筆者는 오히려 선인先人의 추론과는 역逆으로, 길장이 증언하는 (三)승랑의 삼론의 의義가 관내關內의 구설旧說에 유래한다고 말하는 사실이, (二)양무제梁武帝의 기록으로부터 고려하여 진실도가 강하다고 보여진다면, 그것으로부터 미루어, 가령 『삼종론三宗論』의 성립이 전면적으로 직접 승랑의 교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여도, 그것이… 삼론정통의 학설이었다고 말하는 이유에서, (一) 승랑과 주옹 간에 어떠한 관계가 있을 수 있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였다는 것도, 또 그것을 둘러싼 상황의 증거도 뽑아낸 것은, 이미 논술한 그대로이다. 만약 학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상과 같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는 삼점三点의 길장의 증언이 정말로 무책임한 언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길장이 사실이 아닌데도 구축한 허구가 아니고, 오히려 승랑과 주옹의 만남이라고 하는 한 조각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여, 그 위에서 완전히 반대의 결론을 도출해 낸 결과였다고 볼 수 없겠는가. 곧 승랑의 시사에 의한 주옹이 『조론』의 본지本旨를 계승하여 삼종三宗의 이제二諦를 대성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로, 혜기慧基와 현창玄暢, 혹은 직접적 면식은 없었어도 지림智琳 등 적지 않은 송 · 제대宋齊代의 삼론학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의 학설을 계승한 일대一代의 석학碩學 주옹에 의하여 승랑이 영향을 받아, 그것이 차대次代의 양조梁朝에서 「관하구설關河旧說」로서 무제武帝의 귀에 이르렀다, 라고 말하는 것도 성립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은 사상사의 입장으로부터 본다면 그 쪽이 훨씬 더 진실을 파고드는 견해이며, 만약 그러하다면 승랑 수학受學의 문제도 단숨에 해결될 것이고, 삼론三論의 연구사硏究史는 개정하여 법계사法系史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새롭게 고쳐 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주7)

 

 사카이노의 주장 이후부터 의심되어 부정되던 승랑을 에워싼 길장의 증언 세 가지는, 북지에서 수업한 승랑이 주옹을 가르쳤다는 것을 주축으로 구성된 것인데, 이제 그것을 역으로 승랑이 주옹에게 영향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제안하며, 그렇게 된다면 승랑의 수학 문제도 단숨에 해결되고 삼론사三論史도 다시 고쳐 써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2) 히라이 교수의 견해에 대한 종래 국내외의 반응


① 고익진 교수의 견해  

 히라이 교수의 주장이 알려진 이후, 1989년 간행된 저서에서 전 동국대 고익진高翊晋 교수가 거론한 사항들은, 대부분 이전 김잉석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는 추세였다. 승랑의 사제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서술하였다. “승랑과 주옹의 만남은 역사적인 사실이었다고 생각된다 … 주옹의 삼종론 저술이 승랑의 교시敎示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만남만은 길장 저작의 수처隋處에 서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진실에 가까웠던 것으로 볼 수가 있다.”(주8)


 ② 가마다 시게오교수의 승랑 수학에 대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설명

 전편(『고경』 제77호)에서 거론한 가마다 시게오 교수의 세 가지 서술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술의 근거를 모색해 본다. 1987년에 간행된 『조선불교사』에서 서술한 “승랑은 요동 사람으로 북지에서 삼론을 배우고 이어 강남으로 가서 종산 초당사에 머물면서 은사 주옹에게 사사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라이 교수의 역설적 가설을 수용하여 단언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1999년에 출판된 『중국불교사』 제6권에서는 “승랑이 북토에서 남토로 들어와 종산 초당사에 머물렀는데…주옹이 과연 승랑에게 사사師事했는가 아닌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주옹과 승랑 간에 교류가 있었던 것은 확실할 것이다.”(주9)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익진 교수의 설명을 참조한 때문인지, 그 설명이 내용적으로 유사하다. 

 

6. 승랑에 대한 <사론현의>의 증언

 

1) <삼론조사전집三論祖師傳集>에 수록된 <사론현의>의 증언과 최초의 논문

 여기 대단히 중요한 문헌의 내용이 1990년에 간행된 연구저서에 수록된 단편논문(주10)을 통하여 세상에 노출되었다. <삼론조사전집>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사론현의>에 승랑의 북지 수학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발표된 논문에 인용된 <사론현의>의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제齊나라 때에 고려국의 승려 석도랑釋道朗(僧朗) 법사가 있었는데, 황룡黃龍 지역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팔숙八宿의 제자에게 수학하여 무의무득無依無得의 대승법문을 습득하고, 도강度江하여 양주陽(揚)洲에 이르렀다.”(주11)

 

 승랑이 중국 북지의 연燕나라 등이 있었던 황룡 지역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구마라집의 대표적 제자들인 팔숙의 제자에게 수학하여 무소득無所得의 대승법문인 삼론학을 습득하였고, 이후 강 건너 남쪽의 양주(陽洲, 揚洲)로 왔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 논문에서 승랑에 관하여 이 정도로 지적하고, 더 깊이 추적하지 않았다.

 

<사론현의>는 길장과 동문 수학한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삼론학자 혜균慧均의 저서인 <대승사론현의大乘四論玄義>를 말하는데, 현존하는 <사론현의>에는 여러 군데가 누락되어 있다. 승랑과 관련된 <사론현의>의 기록이 <삼론조사전집>에 수록되어 전해져 왔는데, 일본학자가 <사론현의>의 흘어져 누락된 일문逸文을 수집하여 논문으로 발표하였고,(주12) 수집된 기록을 참조하여 앞의 논문이 발표된 것이다.

 

2) 국내에 소개한 <사론현의>에 기록된 승랑의 수학과 업적


그 <삼론조사전집>에 수록된 <사론현의>의 기록에 의하면, 승랑의 북지 수업은 물론, 주옹을 가르쳐 『삼종론』(문헌에는 『사종론』)을 저술하게 한 사실도 적혀 있고, 승랑의 소식을 듣고 대승의 가르침에 뜻을 둔 양나라의 황제 무제가 열 명의 학승을 승랑에게 파견하여 수학하게 한 내용도 있다. 결국 길장이 전한 내용이 혜균의 저서에서 모두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국내에서 승랑의 수학 문제를 처음 거론한 필자는 후속으로 발표한 제2편의 논문(주13)에서 이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필자의 반론은 원래 추가로 발굴된 <사론현의>의 자료에 국한될 것은 아니었다. 승랑의 수학을 의심하고 부정한 일본의 학자들이 삼론학 교의에 근거하여 논의하였기 때문에, 그 반론도 삼론학의 교의에 의하여 제기하려 했었다. 그런데 자료 수집 과정에서 『삼론조사전집』과 <사론현의>의 일문을 손에 넣게 되었고, 이 자료의 기록이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어 이를 중점 소개한 것이다. 게다가 소수의 일본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시도한 의심과 부정을, 후대의 다른 일본학자들이 발표한 내용을 통하여 알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3) 풀리지 않는 하나의 수수께끼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승랑의 기록이 남아 있는 『삼론조사전집』은 1204년 이후에 일본에서 편찬되었고, 한국의 도서관 같은 서고에도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이 저서에 수록된 기록을 국내외에서 논문으로 발표할 때까지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승랑의 수학과 업적을 처음으로 의심한 사카이노  박사는 물론 히라이 교수도 역시 지적하지 않았다. 또한 이를 반박한 국내의 학자들도 그 기록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29년 이후 촉발된 승랑의 수학 문제를 두고, 한중일의 여러 학자들이 해답 없는 의심과 반론을 이어 왔다. 그 사연을 묻고 싶르나 열성적으로 논의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세상을 떠나 문자만 남아 있으니….

 

7. 승랑의 생애에 대한 새로운 논의 

 

그 오랜 세월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이제 종래에 발표된 논문과 저서 중에 승랑의 수학 등에 관한 내용은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앞으로 집필할 승랑의 수학과 업적을 다루는 저서와 논문들은 새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승랑이 삼론학을 강의했던 서안 초당사

 

 

주)

(주1) 金芿石, 「高句麗 僧朗의 三論學」, 『白性郁頌壽 佛敎學論文集』, 동국대학교, 1959, p.65.

(주2) ②는 앞의 논문, pp.49-50.  다음의 ③은 앞의 논문, p.51.  ④는 앞의 논문, p.65.

(주3) 平井俊榮, 『中國般若思想史硏究』, 東京:春秋社, 1976, pp.256-257.

(주4) 앞의 책, pp.259-260.

(주5) 앞의 책, pp.255-256의 註(11)의 내용.

(주6) 宇井伯壽, 『支那佛敎史』, 岩波書店, 1941, p.39.

(주7) 平井俊榮, 『中國般若思想史硏究』, 東京:春秋社, 1976, p.265.

(주8) 高翊晋, 『韓國古代佛敎思想史』,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pp.95-97.

(주9) 鍾田茂雄, 『中國佛敎史』 제6권, 『隋唐の佛敎』 (下), 東京大學出版會, p.536.

(주10) 石井公成, 「朝鮮佛敎における三論敎學」, (『?三論敎學の硏究』, 春秋社 平成2年, p.460)

(주11) 慧均, 『大乘四論玄義????. “齊時有高麗國僧釋道朗(僧朗)法師 遊於黃龍諸國 八宿之子學(爲)弟子所聽學 得無依無依得大乘法門 度江來至陽(揚)洲.” 

(주12) 伊藤隆壽, 「大乘四論玄義 逸文の整理」, (『駒澤大學佛敎學部論集』第5號, 1974), pp.82-83.

(주13) 「승랑의 三論學과 師弟說에 대한 오해와 진실(Ⅱ)」. 초록발표문-(서울, 한국불교학결집대회, 2004.06). 본 논문-(『한국불교학』 제50집, 한국불교학회, 2008.12). 그 외에 경주 동국대 김성철金星喆 교수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승랑의 생애에 대한 재검토」로 여러 차례 논문을 발표하였고, 근래 승랑에 관한 저서도 출간하였다. 논문의 논의 과정이나 내용이 필자와 다른 바가 있으나, 역시 일본학자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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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동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용수龍樹의 화엄사상華嚴思想 연구」로 박사 학위 취득. 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역임. 동국대에서 『한국불교전서』 제13권과 제14권(『유가사지론기』) 공동 교정 편찬. 고려대장경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돈황불교문헌 공동 연구. 번역서로 『삼론현의三論玄義』와 고려대장경의 한글 번역본 몇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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