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세계]
미륵불의 수인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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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19 년 12 월 [통권 제8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579회 / 댓글0건본문
유근자 동국대 초빙교수· 미술사
미륵彌勒은 산스크리트 마이트레야Maitreya를 소리나는 대로 옮긴 것이고 ‘정이 깊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형용사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자애로운 어머니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자慈’라는 글자로 번역해 ‘마이트레야 붓다Maitreya Buddha’를 ‘자씨미륵존불慈氏彌勒尊佛’로 해석했다. 이와 같은 어원으로 인해 우리는 미륵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미륵전彌勒殿 또는 자씨전慈氏殿이라고 하며, 미륵보살을 자씨보살이라고도 한다.
도솔천의 미륵보살
미륵신앙은 두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미륵보살신앙과 미륵불신앙이 그것이다. 미륵보살은 현재 도솔천에서 하늘나라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는데, 미륵이 도솔천에 상생한 이유는 석가여래로부터 미래에 붓다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륵은 석가여래 당시에 인도의 바라나시국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부처님 문하에서 수도한 인물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사후에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 정토에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 미륵상생신앙彌勒上生信仰의 근원이며 이에 바탕을 두고 조성된 것이 미륵보살상이다.
상생신앙과 관련된 미륵보살은 도솔천에 상생하기 이전에는 수행자였기 때문에 인도와 간다라의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수행자 풍으로 표현되었다. 바라문 수행자의 이미지와 결부된 간다라의 미륵보살상은 풍성한 머리칼을 위로 올려 묶어 그 출신이 바라문이었음을 상징하고 있고, 왼손으로는 수행자의 표시인 물병을 들고 있다(사진 1).
미륵상생신앙과 관련된 미륵보살상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반가사유 자세로 등장했다. 반가사유 자세의 상에 대해서는 싯다르타 태자의 사유상이라는 설과 미륵보살상이라는 설이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미륵보살상으로 조성되었다. 삼국통일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신라의 화랑은 이상세계 건설을 목표로 미륵의 화현化現인 국선國仙을 따르는 청년집단으로 결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도솔천의 미륵보살이 중생구제를 위해 하생할 날을 언제로 할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과, 통일을 염원한 신라의 화랑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해 미륵과 화랑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보여준다(사진 2). 또한 김유신이 이끌던 화랑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한 것을 통해 그들이 미륵사상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상으로 이해하는 단서가 되었다.
사진 1. 미륵보살상,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사진 2.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신라(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는 실크로드와 중국 내륙에는 거대한 대불大佛이 존재한다. 가장 서쪽의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석굴의 서대불(높이 53미터)을 비롯해 돈황막고굴의 96굴 북대굴(높이 33미터)과 130굴 남대불(26미터), 무위의 천제산 13석굴(26미터), 난주의 병령사 제17굴(27미터), 사천 낙산의 능운사대불(71미터) 등이 대표적이다. 미륵불은 왕처럼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며 크기는 대불로 조성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미륵불의 모습
미륵부처님은 왜 이처럼 크게 조성할까. 석가여래께서 오시는 세상은 인간의 수명이 100세라면 미륵부처님이 출현할 때는 수명은 8만세라고 한다. 미륵불이 오시는 세상에서는 여성은 500세가 되어야 혼인을 할 수 있고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태평성세라고 한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서는 미륵불의 크기를 16장[약 48m]이라고 했으며, 구마라집 스님이 번역한 『미륵하생성불경彌勒下生成佛經』에서는 인간의 수명은 8만4천세이고 신장은 16장인데 미륵불은 32장[약 97미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미륵불은 장신長身의 대불大佛로 표현하며 미륵불의 세상은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태평성세이기 때문에 미륵불은 왕좌에 앉은 왕처럼 나타내었다.
사진 3. 중국 난주 병령사 제17굴 미륵불상, 당(803년).
돈황막고굴의 제96굴과 제130굴은 거대한 바위면에 미륵대불을 조성한 후 앞면에 전실前室을 마련해 법당처럼 조성했다. 지난 10월에 방문한 돈황 막고굴 제130굴에서 미륵대불을 친견했을 때 석굴을 안내하는 분이 매년 부처님 오신 날에 돈황지역에 거주하는 불교도들이 이 석굴 안에서 법회를 연다고 알려주었다. 석굴이 유지되는 것은 당국의 문화재로서의 관리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불교도들의 신앙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크로드 상에 있는 미륵대불 가운데 수리를 끝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는 미륵대불은 난주 병령사 제17굴의 미륵불상이다(사진3). 당나라 때인 803년에 조성된 이 불상은 크기가 무려 17미터에 달하며 병령사 석굴의 중심 구역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을 깎아 들어가면서 전체 형상을 만든 후 진흙으로 마무리한 불상이다.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실크로드 상에 위치한 대부분의 마애불은 이 같은 방법으로 조성되었다. 필자는 2014년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의 연수 프로그램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안내자로 동행했는데 이 불상 앞에서 스님들과 예불을 했던 경험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충담 스님이 차 공양을 올렸다는 삼화령 미륵세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미륵삼존상은 ‘삼화령 미륵세존’으로 알려진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불상이다(사진 4). 이 삼불상은 1925년 4월에 여래상만 원위치로 추정되는 산 위의 석실에서 먼저 옮겨졌고 두 보살상은 얼마 후 경주시 탑동 민가에서 발견되어 압수되었다.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이 삼존상을 삼화령 미륵세존으로 명명하게 된 데에는 작고한 황수영 선생님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사진 4.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상, 신라(644년), 국립경주박물관
“필자는 이 석상에 대한 해명을 기하여 오면서 1964년 11월15일 이래 4차에 걸쳐 원장소를 찾았으며 인근의 고로古老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 까닭은 이 석상 3구가 모두 신라조각사의 첫머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이와같은 우미품優美品에 대한 기초적인 작업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황수영, 「新羅南山三花嶺彌勒世尊」,『한국의 불상』, 문예출판사, 1989, p.311).
황수영 선생님은 각고의 노력 끝에 문헌을 통해 신라 충담사忠談師가 삼월 삼짓날과 구월 구일에 헌다공양獻茶供養하였다는 ‘삼화령三花嶺의 생의사生義寺 석미륵’으로 추정하였고, 조성 연대는 옛 기록에 보이는 선덕여왕 12년 갑진(644)으로 판단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현재의 역사로 이끌어낸 학문적 성과이다.
충주 수안보 온천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가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이다. 하늘재[寒喧嶺]·계립재[鷄立嶺]·새재[鳥嶺]로 둘러싸인 요지에 위치한 절터로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보아 고려 초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의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태자는 북향의 석굴을 지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한다.
사진 5. 충주 미륵대원지 미륵불상, 고려(10세기 초), 보물 96호.
마의태자가 남쪽의 덕주사 마애불을 바라보며 조성했다는 북향의 석굴 속 불상이 바로 미륵대원지 미륵불상이다(사진 5). 원통에 가까운 불상은 5개의 돌을 다듬어 쌓아올렸다. 머리 위에는 돌을 평평하게 다듬어 갓처럼 올려두었다. 왼손에는 피지 않은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미륵불을 상징하는 상상의 꽃인 용화수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륵불이 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을 용화수인龍華樹印이라고 한다.
얼굴만 씻은 미륵대원지彌勒大院址 부처님
미래세에 미륵불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상징하는 것으로 미륵보살은 보관에 석가여래를 화불化佛로 표현하다가 시대가 내려오면 탑으로 나타내었다. 따라서 미륵대원지 미륵불상의 머리 위에 얹힌 평평한 판은 석가여래를 상징하는 탑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조물 때문에 미륵대원지 불상의 얼굴은 신체에 비해 깨끗한 편이다.
같은 모습을 보고 어른과 어른아이의 시각은 달랐다. 현지의 해설사는 미륵대원지 불상의 상호처럼 불상이 깨끗해지면 통일이 된다고 했다. 불상의 몸에 이끼가 낀 모습을 본 동생이 형한테 물었다. “형아, 부처님이 몸도 좀 씻지 왜 세수만 하고 있지?” 그러자 형이 대답했다. “우리도 밖에서 놀다 보면 간단히 세수만 하지. 부처님도 밖에 있다보니 세수만 한거야. 곧 다시 먼지로 더러워지니까.” 불교미술에 관한 해석을 하다가도 미륵대원지에서 만났던 어린아이들의 대화가 떠오르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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