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불교]
서북 인도, 고대 최대의 교역·번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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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806회 / 댓글0건본문
한지연 | 철학박사
실크로드SilkRoad는 19세기 말, 독일학자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명명한 용어이다. 고대 동서교류가 이루어지는 바로 이 장소에서, 중국의 실크가 대표 교류물품으로 급부상하면서 교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가 이루어진 품목은 비단만이 아니라 금, 은, 노예 등을 비롯해 사상과 문화 역시 교류의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는 그야말로 동서교류에 있어서 ‘고대 네트워킹의 센터’였다고 할 수 있다. 실크로드를 붓다로드라고도 칭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붓다로드의 측면에서 본다면 인도 전역에 신앙되고 있던 불교가 서북인도라는 특정 지역을 만나면서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데 추진력을 얻은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북인도는 정치‧외교‧민족‧경제 등의 카테고리들이 상당히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곳인데,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양상을 보기 이전에 서북인도가 갖고 있던 수많은 배경의 단편이나마 살펴보는 것이 향후 실크로드, 불교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롤로그의 형식으로 우선 서북인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간다라 지역은 경제 네트워크의 중심
실크로드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대 문명 발전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바로 그 욕구를 메꾸어주면서 동시에 그 욕구를 본능적으로 채워나갔던 서북인도의 중계무역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계무역과 관련해 주로 언급되는 국가는 쿠샨제국이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서북인도를 통해 인도가 동서교역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아소카Asoka 시대부터로 추정해볼 수 있다. 아소카왕이 세운 마애법칙磨崖法勅 가운데 제2장, 제5장, 제13장에는 당시 영토, 변방인 등을 서로 비교해 놓고 있다. 이에 의거해보면 당시 영토는 서북인도의 요나Yona, 깜보자Kamboja, 간다라Gandhara가 포함되어 있다.(주1)
이 지역은 알렉산드로스 원정 이전엔 페르시아 지배하에 있었고, 알렉산드로스 원정과 함께 그리스인(당시 ‘요나’라 칭함)들이 이주해 정착한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서 발견되는 마애법칙은 카로슈티, 아람어 등 이곳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루어졌다. 다양한 언어를 활용했다는 점은 서북 인도 지배가 당시 정치‧경제‧외교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거점지역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세라의 마애법칙(사진1)과 탁실라의 그리스식 고대도시 유적인 시르캅Sirkap 탑 유적(사진2)에서 발견된 마애법칙 제4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1. 만세라의 아소카왕 마애법칙, 파키스탄.
사진2. 사르캅의 쌍두독수리 탑, 파키스탄.
쿠샨제국이 서북인도를 중심으로 인도를 통일하기 이전부터 이미 이 지역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지역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정치활동이 있었고, 불교 역시 다양한 종교와의 대화가 가능한 시대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그 결과는 불교사적인 관점과 현존하는 유적 및 유물의 양상으로 보았을 때, 쿠샨제국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불교가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중계무역’의 장場으로써 서북인도의 역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아쇼카왕 시대부터 이미 다민족 사회가 정립되었던 서북인도는 쿠샨제국에 이르러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을까?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돈’이다. 중계무역이니만큼 실물로 거래하는 것을 지양하고 바로 화폐를 이용한 거래를 활발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화폐를 통해 어느 지역까지 쿠샨제국의 영향력이 발휘되고 있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쿠샨제국에서 사용하던 화폐는 황제의 등극과 함께 자주 바뀌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등극한 황제의 모습을 화폐에 새기는 일이 왕왕 있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중계무역을 업業으로 한 국가이다 보니 화폐의 질량은 주변국과 동일하게 맞추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금이나 은으로 주조한 화폐의 질량이 주변국과 다르면 동일한 값어치를 매길 수가 없기 때문에 동일 질량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이른바 쿠샨제국의 상권商圈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박트리아 그리스 출신 왕이 사용하던 것부터 카니슈카를 필두로 한 쿠샨제국에서 사용하던 고대 화폐 1,800여개가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북쪽에 위치한 차리카르 근방에 위치한 베그람Begram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베그람 출토 화폐는 현재의 파키스탄 일대와 더불어 실크로드의 호탄(Khotan, 于闐), 누란 등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 근방에서 발견되는 화폐 가운데 눈여겨 볼만한 것은 호탄에서 발견되는 시노-카로슈티Sino-Kharosthi라 명명한 화폐이다.(주2)
이는 쿠샨제국의 비마-카드피세스Vima-Kadphises가 로마의 화폐인 아우레우스Aureus 금화의 8g 짜리 중량표준과 동일한 중량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리스부터 쿠샨제국,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이긴 하지만 쿠샨제국과 더불어 중계무역의 장이었던 실크로드에서 이러한 화폐가 통용되었다는 점은, 그리 특이하게 볼 일은 아니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시노-카로슈티 화폐의 한쪽 면에는 말[馬]의 도안과 카로슈티 문자로 새겨진 쿠샨황제의 이름이, 다른 한쪽 면에는 한자로 ‘이십사수卄四銖’ 혹은 ‘육수六銖’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시노-카로슈티는 실크로드 상에서 쿠샨제국과 중국의 무역에 있어 편리함을 추구했다는 것을 상징함과 동시에 쿠샨제국-실크로드-중국에 이르는 거대한 무역권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쿠샨제국, 즉 서북인도의 중계무역권은 고대 전 세계 상권 가운데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실크와 금의 무게를 동일하게 값을 매겨’ 무역을 했다는 이야기도 위에서 이야기한 시노-카로슈티 등의 화폐를 기준으로 상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일화폐를 기준으로 한 상권조성을 단순히 중계무역의 중심 역할로써 서북인도를 평가할 수 있을까?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여기에는 큰 의미가 숨어있다.
불교는 당시 최신 정보·사상
동서교류에 있어 상권의 주요 품목이었던 실크는 중국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반대로 중국을 향하는 무역상품 가운데에는 일반적인 물품뿐만 아니라 중국에는 ‘없는’, 혹은 중국인에게 ‘귀한’ 그 어떤 것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국에 없으며 귀한 것이 바로 불교인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용되는 SNS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것이 바로 최신 정보에 해당하는 것이다. 정보를 향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당시 불교는 인도 내에서도, 동아시아의 세계에서도 ‘최신 정보’에 해당하는 사상이자 종교인 그야말로 인문학 덩어리 또는 인문학 엑기스였던 것이다.
지금이야 종이와 펜이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글자가 새겨진 그 무언가는 지식인 계층에게 도전장을 내밀만한 신세계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정보화 시대에서 열광할 만한 콘텐츠가 당시에는 불교였고, 이러한 콘텐츠를 열심히 제공한 이들이 쿠샨제국의 불교교단과 상인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원전후에 탄생한 대승불교는 이러한 공급과 수요의 경제논리, 다민족 사회에 존재했던 여러 문화적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동東으로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화폐의 앞뒷면으로 쿠샨제국 카니슈카왕과 부처가 함께 공존하면서 말이다.
[사진1] 만세라의 아소카왕 마애법칙, 파키스탄
[사진2] 시르캅 쌍두독수리 탑, 파키스탄.
(주1) 츠카모토 게이쇼 지음, 호진‧정수 옮김, ????아쇼까왕 비문???? 서울;불교시대사, 2008, pp.21-38.
(주2) 이주형 지음,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서울;사회평론, 2004), p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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