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동안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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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20 년 2 월 [통권 제8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10회 / 댓글0건본문
김선미 | 도예작가
해마다 하안거보다 동안거 때가 되면 늘 나도 그 속에 잠기고 싶었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고 여름을 지나오면서 풀어졌던 마음을 동안거 결제라는 비장함으로 겨울을 단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번번이 해제 때까지 마음이 가질 못하여 흐지부지 잊고 살다가 해제 날 겨우 절에 가서 기웃거릴 뿐이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작업을 쉬기도 했고 마침 작업을 시작할 때가 동안거 결제 무렵이었다. 이번 철은 동안거 동안 나만의 즐거운 수행을 해야지 속으로 생각 하고 있었다. 마음의 부산함이 가라앉고 이즈음 평정을 찾으면서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아마 가장 일등공신은 요가인 것 같다. 요가가 없었으면 어떻게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요즘은 작업하는 시간과 요가 가는 시간이 하루의 전부일 정도로 생활이 단순해졌다. 애써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고 되도록 번거로운 곳은 피하고 의미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한다.
요가를 하면서 호흡이 어쩌면 나를 이루는 전부가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아직 코끼리의 발등을 만진 수준이지만, 숨을 통해서 많은 생각들이 없어지고 몸의 구석구석이 정화되는 느낌은 가장 큰 기쁨이었다.
사진1. 개심사 시래기
사진2. 흙 푸는 모습
요즘 물레 작업을 할 때는 호흡과 함께 논다. 흙덩이에서 그릇을 올릴 때도 단숨에 올리는 경우가 있고 중간에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고 몇 번에 나누기도 한다. 그 숨결이 그릇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멈추고 단숨에 올리고 자연스럽게 내쉬고 … .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금세 모양이 흐트러진다. 도자기를 처음 배울 때 물레를 돌리면서 흙덩이의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초심이 반이듯이 제대로 중심을 잡는 것은 절반을 이룬 셈이기도 하다.
이 명확한 원리를 그동안은 세심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욕심만 앞서서 무리해서 급하게 했던 일들도 한숨을 돌리면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요즘은 두 개를 하려고 생각하면 하나만 하는 편이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는다.
늘여진 엿 가닥 마냥 느슨한 겨울의 시간이 좋다. 어둠이 긴 것이 무엇보다 좋다. 아마 장작 가마를 하면서 밤이 짧은 여름 무렵 불을 땔 때 연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했던 트라우마 때문이겠지.
사실 가마에 불을 때서 작품이 제일 잘 나오는 시기는 봄이다. 언뜻 보면 굴속 같은 가마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은데 계절의 기운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한다. 여름은 습도가 높고 기온이 높아 불을 때는 작업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온도도 잘 올라가지 않는다. 특히 연기가 아래로 깔려 주변 민가에 피해를 줘서 되도록 여름에는 불때기를 자제한다. 겨울도 불때기에 썩 좋진 않지만 밤이 길어 마음은 편하다. 겨울에 가마 불을 땔 때는 얼굴은 탈 듯이 뜨겁고, 등은 엄청 시리다. 사람의 앞과 뒤의 간극이 이리 큰가 싶을 정도이다.
사진3. 흙 수비하는 모습
올겨울엔 작업장 안에서 작업하는 게 무척 즐겁다. 깜깜한 아침에 작업장에 나가서 난로에 불을 붙이고 나무장작을 몇 개 넣으면 금세 따뜻해진다. 난로위에 올린 따뜻한 물로 물레를 돌리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찬물로 물레를 돌리면 손에 쥐가 나고 그릇이 부드럽게 나오지 않는다. 나만의 따뜻함을 누리는 호사이기도 하다.
몇 년째 쓰고 있는 장작난로도 마음에 든다. 모양새도 심플하고 연기가 나오지 않아서 애정이 간다. 난로위에 따뜻한 물도 올리고 고구마도 올리고 커피 잔도 올리고 … .
사진4. 다관 만드는 모습
어찌 보면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딴 짓하며 노는 시간이 더 많다. 이렇게 차 마시고 음악도 듣다가 책도 읽다보면 이렇게 팔자 좋은 날도 있나싶어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여진 시간 속에서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미뤄뒀던 일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올 여름 가게 될 몽골에 안내를 해주기로 한 몽골인 부흐씨가 주문하고 간 고량주잔 맥주잔 찻잔도 만들어본다. 초원을 생각해보며 호수를 생각해보며 그에 어울리는 잔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고비사막의 모래를 조금 가져와서 흙에 섞어 그릇을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그 사막의 느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올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아서 흙도 푸러 다니고 유약으로 쓸 콩깍지나 오래된 소나무도 태워 재를 만들어 걸러 놓는다.
검은 흙을 구하러 예전에 봐놨던 개심사 뒷산 상왕산에 오른다. 개심사 툇마루에 무시래기가 잘 말라간다. 예전에 툇마루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졸았는데 이번엔 너희들이 차지했구나. 배낭에 흙을 담아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휘청거린다. 물에 풀어 고운 흙물을 거른다. 어떤 색이 나올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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