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나옹혜근 선사- 본체는 항상 청정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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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20 년 2 월 [통권 제8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071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 문학평론가
나옹혜근 선사(1320-1376)는 백운경한, 태고보우와 더불어 고려 말의 삼대화상 중 한 분으로, 20세에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보고 삶의 무상을 느껴 공덕산(현 문경의 사불산) 묘적암 요연 선사에게 출가하였다. 그 후 양주 회암사에서 4년간 치열한 용맹정진의 수행을 통해 크게 깨달았다. 어느 날 일본 스님 석옹 화상이 선상을 치면서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라고 크게 소리를 쳤으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옹 선사가 홀연히 일어나 “선불장 안에 앉아 /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요 /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選佛場中坐 /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라고 대답하였다. 선사의 이러한 대기 대용의 선은 화두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화두를 통하여 성성해져 개오됨을 보여 준다.
나옹화상(문경 대승사 묘적암 소장)
허공을 에워싸면서도 그림자도 형체도 없어 包塞虛空絶影形
온갖 형상 머금어도 본체는 항상 청정하네. 能含萬像體常淸.
눈 앞 진경을 누가 능히 헤아린다 할 것인가 目前眞景誰能量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 달은 밝아라. 雲卷靑天秋月明.
온갖 형상 머금었어도 본체[본성]은 항상 깨끗하다는 「대원(大圓」이라는 시이다. 허공을 감싸 안으면서도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청정한 마음이다. 이 청정한 마음에서 빚어진 삼라만상이 곧 법계이다. 선사는 그러한 참 경계를 깨닫고 나니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 달[본성]이 밝게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나옹 선사는 원나라에 건너가 연경(현재 북경)의 법원사에 주석하던 인도 스님 지공 화상을 만나 문답을 하였다. 나옹이 “산과 강,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 삼라만상 또한 이와 같으니 / 자성이 원래 청정함을 비로소 알면 / 티끌처럼 많은 세상 모두가 법왕신이네”(山河大地眼前花 / 萬象森羅亦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라는 게송을 지어 올리자, 지공 화상은 “서천에 스무 명의 깨달은 이가 있고, 동토에 72명의 도인이 있다고 했는데, 나옹이야말로 일등이로다.” 하면서 나옹의 법기를 극찬하며 인가하였다. 나옹은 지공 화상과 문답을 계속하였는데, 지공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내린다.
선은 집 안에 없고 법은 마음 밖에 없나니 禪無堂內法無外
뜰앞 잣나무 화두는 아는 사람이 좋아하네. 庭前栢樹認人愛
맑은 누대 위에 맑은 햇살 비추는 날에 淸凉臺上淸凉日
동자가 세는 모래 동자만이 아느니라. 童子數沙童子知
선은 선방 안에 없고, 법은 마음 바깥에 없다는 것은 내안에 있는 불성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는 격식을 벗어난 말로, 선가에서 잘 알려진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를 말한다. 청량한 누대위에서 밝은 태양이 빛나고, 천진무구한 동자가 세는 모래는 동자만이 안다는 것은 청정한 불성을 의미한다. 지공이 법어로 내린 이 게송에 대하여 나옹은 ‘평상심이 곧 도’임을 명쾌하게 화답한다.
집 없는 안에 들었다 밖이 없는 곳에 나오니 入無堂內出無外
세계마다 티끌마다 부처 뽑는 곳이었네. 刹刹塵塵禪佛場
뜰 앞의 잣나무 새삼 분명한 모습이니 庭前栢樹便分明
오늘이 초여름 4월 5일이로다. 今日夏初四月五
나옹의 걸림 없고 탕탕한 선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한한 시공간이 부처를 이루는 도량이 아님이 없는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한 소식 했으니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화두로 붙들었던 ‘뜰 앞의 잣나무’는 산하대지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일상적인 하루인 사월 초닷새일 뿐이다. 이처럼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과 더불어 사는 곳에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편, 불교에서는 강조되는 지혜는 번뇌 망상의 근원인 어둠을 일소하고 밝음을 가져 온다. 때문에 청정심에서 나오는 지혜의 칼날은 무명을 자를 때는 날카로운 칼이지만, 번뇌를 자르고 나서는 밝은 빛을 수반하는 보배로운 칼이 된다. 이러한 지혜의 칼의 이미지를 나옹이 한때 고려에 와서 양평 용문산에 머문 적이 있는 원나라 강남지방의 고담 선사에게 보낸 시 「행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임제의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 臨濟一宗當落地
난데없이 고담선사가 돌출하였네. 空中突出古潭翁
삼 척의 취모검을 높이 뽑아 들고 把將三尺吹毛劍
정령들 모두 베었으나 흔적이 없네. 斬盡精靈永沒蹤
임제종지가 쇠퇴할 무렵, 걸출한 고담 선사가 출현하여 종풍을 살렸음을 읊고 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취모검’이다. ‘취모검’이란 칼날이 매우 예리하여 머리털 같은 것을 갖다 대고 입으로 ‘훅’ 불기만 해도 잘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예리한 칼날은 번뇌 망상을 베어버리는 칼이란 뜻에서 선적 지혜를 상징한다. 마지막 구절 ‘취모검’에 잘려 버린 ‘정령’은 음계를 맴도는 죽은 자의 영혼을 말하는 것으로, 끈질기게 달라붙는 번뇌를 상징한다. 번뇌의 구름을 제거하고 나면 본래 청정한 자성의 지혜는 스스로 빛을 발한다. 그야말로 순일 무잡한 원음의 세계가 된다. 지혜의 칼을 고담선사의 몫으로 돌렸으나, 사실은 나옹 자신이 쓰고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나옹삼가’로 불리는 「완주가」 · 「백납가」 · 「고루가」는 보배스러운 구슬, 누더기 옷, 해골 같은 이미지를 통해 삶에 집착하지 말고 불성을 찾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완주(玩珠)는 구슬을 가지고 논다거나 구슬을 감상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완주가」에서는 상주불변하는 ‘불성’이 ‘구슬’의 이미지로 잘 표현되고 있다.
신령한 이 구슬 너무나도 영롱하여 這靈珠極玲瓏
그 자체는 항하사를 감싸 안팎이 비었고 體徧河沙內外空
사람마다 포대 속에 당당히 들어 있어 人人帒裏堂堂有
오고 가며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弄去弄來弄莫窮
영롱한 ‘구슬’(마니주 혹은 영주)로 불리는 ‘불성’이 각자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건만, 무지한 중생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맨다. 마니주는 있는 곳에 따라 각각 다른 색깔을 비쳐 준다. 때문에 마니주 본래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니주 자체의 색깔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근기에 따라 자재하게 응하는 그 청정한 속성으로, 이름과 모습 비록 많아도 본체는 다르지 않는 저마다 지닌 ‘불성’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각자에게 내재된 그 신묘한 힘, 즉 ‘불성’을 찾으면 더 없이 밝은 달이 가을 강에 충만하리라는 것이 나옹의 생각이다.
누덕누덕 헝겊조각을 누벼서 만든 누더기 옷이 ‘백납’(百納)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더기 옷이지만, 걸림 없이 살아가는 선승들이 철저한 무소유 정신으로 두타행을 몸소 실천하며 만족을 얻었던 삶의 표상이다. 이러한 소욕지족의 청빈한 수행자의 삶이 「백납가」에 잘 나타나 있다.
때론 자리로 쓰다가 옷으로 삼으니 或爲席或爲衣
철 따라 때에 따라 적절하게 쓰이네. 隨節隨時用不違
이로부터 두타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從此上行知己足
가섭 존자 끼친 자취 지금에도 살아있네. 飮光遺跡在今時
‘백납’은 수행자의 일상생활에 있어 다양한 용도로 두루 쓰인다. 자리로도 쓰이고, 옷으로도 삼으며, 철따라 때에 따라 알맞게 쓰인다. 나옹 선사는 한 때 원나라 황제로부터 금란가사와 상아불자(象牙拂子)를 선물로 받고, 황제를 위하여 개당법회를 열었다. 이때 선사는 사자(使者)에게 자기 가사를 들어 보이며, “산하대지와 초목 총림이 모두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것을 어디에 입혀야 하느냐?”고 물었다. 사자가 모른다고 하자 자기 왼쪽 어깨를 가리키며 ”여기에 입혀야 한다.” 하고 외쳐 고려인의 기개를 한층 드높였다 한다. ‘물욕이 온갖 고통의 근원’임을 깨달은 수행자에게는 한 잔의 차[一椀茶]와 일곱 근의 장삼[七斤衫]이면 족한 삶이기에, 편리한 누더기 옷이 현란한 금란가사 보다 소중함을 나옹은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시구 ‘음광유적’은 가섭존자에게서 시작된 선맥이 나옹 선사 자신에게 그대로 이어져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요컨대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지향한 나옹 선사의 시 세계는 시공을 초월하여 사물을 직관하고 삶을 관조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그 바탕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본성을 찾으려는 철저한 수행자의 올곧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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