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세계]
산신탱화 속의 신령스러운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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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0 년 6 월 [통권 제86호] / / 작성일20-06-22 15:30 / 조회9,907회 / 댓글0건본문
이은희: 불화가, 철학박사
산신은 가람의 외호신外護神인 까닭에 사찰의 뒷쪽 외각에 산신각(山神閣·山靈閣)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와 덕성스러운 노인의 모습으로 조각한 산신상山神像이나 산신탱화를 봉안하기도 하며, 삼성각三聖閣 안에 칠성·독성과 함께 모셔지기도 한다. 산신탱화는 독성탱화와 도상圖像 면에서 일견 유사한 면도 있으나 엄격한 이미지의 독성과는 달리 산신은 인자한 미소에 복스러운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산신탱화는 독성탱화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던 화승畵僧들이 자유로운 기량을 드러내기에 좋은 화목畵目의 탱화이기도 하다. 즉 상단탱화인 영산회상도나 아미타후불도, 또는 중단의 신중탱화 등은 그 의궤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격식과 엄격한 법도에 따라 그려야 했다. 이는 그렇게 해야 불보살님의 지혜와 자비에 의한 제도중생의 본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성탱화나 산신도 등은 주제가 되는 인물 존상을 표현하고 나면 배경 등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산수·인물·화조 등 여러 화목이 한 화면에 자유로이 표현되어진다는 점에서 상·중단이나 의궤성이 강한 탱화보다 자유스러우며 현실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산신각은 사찰의 사료를 통해 볼 때 대부분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고 있고, 현존하는 산신탱화도 조선 후기 이전의 것은 거의 발견할 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산신탱화를 사찰에 봉안하게 된 것은 조선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불교에 있어서 산신에 대한 개념의 근거는 <화엄경>에 있다. 화엄경의 「세주묘엄품」에 화엄법회에 동참했던 39위의 화엄신중 가운데 제33위에 엄연히 나타나 있다. 이와 함께『불모대공작명왕경佛母大孔雀明王經』에는 46위의 대산왕大山王이 설해져 있는데,“이 대산왕들이 대지大地에 있고 각각의 중생들과 모든 권속들을 옹호하여 수명이 백년토록 장수하고 나쁜 일을 없애고 항상 길상만을 보고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한다.”고 하며 이를 다시 게송으로, “저로 하여금 밤새도록 편안하게 하고 하루 종일 편안하게 하며 모든 시간마다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 하시옵소서.”라고 하여 그 권능을 설하고 있다.
<석문의범> 「산신청山神請·가영歌詠」에서는 산신을 “옛날 옛적 영취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으시고, 강산을 위진 하며 중생을 제도하고 푸른 하늘 청산에 사시며, 구름을 타고 학처럼 걸림 없이 날아다니시는 분[靈山昔日如來囑, 威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嶂裡, 雲車鶴駕任閑情]”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산신을 토착신앙의 습합으로만 보는 민속학적 견해는 재고되어야 하겠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3분의 2가 산이기 때문에 선조들에게 있어서 산은 곧 생활의 터전이었으므로 산에 의지하여 살았고 또 죽어서는 그곳에 묻혀야 했던 사람들이 산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산악숭배라는 이유만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수용된 것은 아니다. <화엄경> 등의 교의적 근거와『불모대공작명왕경』에서와 같이 소재강복(消災降福: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내리다)의 현실 구체적인 위신력이 있었기에 외호신으로 습합될 수 있었다.
산신은 조각상보다 탱화로 도상화하여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신탱은 연대 추정이 가능한 초기의 작품에서부터 다양한 형태들이 보이는데 이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는 도상으로 판관형判官形과 신장형神將形이 있다. 지장시왕도의 판관이나 현왕탱화의 현왕과 같이 다소 경직되고 근엄한 표정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호랑이가 빠진 초기 산신도의 형태이다. 역시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는 초기형 양식으로 신장형神將形이 있다. 이는 신장탱화 가운데 불보살의 형태로 주主 존상의 자세와 같이 정면을 의식하고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고승의 영탱影幀과 같은 자세로 그려져 있다. 용광사 산신탱(사진 1)은 현존하는 산신탱 가운데 독특한 구성으로 주목된다. 주존인 산신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의 산왕이 무장武將의 모습으로 도설되어 있으며 호랑이는 등장하지 않는 특이한 도상이다. 이와 달리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있는 기호신선형騎虎神仙形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드물게 볼 수 있다.
산신도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도인형道人形이다. 도인형은 대체로 흰 수염, 긴 눈썹, 벗어진 머리의 노인으로 그려진다. 배경에는 소나무나 공양물이 들려 있는 동자상이나 시동이 나타나며 산신님이 호랑이를 기대거나 쓰다듬고 있는 도상이다. 그리고 <사진 2>와 <사진 3>은 스님이나 나한, 독성과 같은 근엄하고 자상한 형상의 스님형 산신도도 있고, 책을 들고 있거나 책가도冊架圖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학자형學者形의 산신도도 있다. <삼국연의>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관운장의 모습과 같이 부라린 눈을 위로 치켜뜨고 주름진 이마의 음영이 크며, 턱수염이 가슴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 관운장형關雲長形의 산신도도 전한다.
이상과 같이 산신의 유형을 나누어 보았는데, 초기의 산신도들이 신장이나 신선의 얼굴 형태로 굳어 있거나 인색한 웃음을 띠었던 것에 비해 19세기 중반기에는 밝고 자연스러운 얼굴 표정이거나 편안하고 자애로운 웃음을 띤 표정으로 그려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호랑이는 산신탱의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다가 후에 산신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나한도에서 나한의 권능과 위의를 드러내기 위해, 용·호랑이·기린 등의 영수靈獸[신령스러운 동물]가 함께 그려지는 도상적 특징이 반영되어 현재의 일반화된 산신탱으로 정형화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에 조성된 문경 김용사金龍寺의 산신탱화(사진 4)를 살펴보면, 산수와 노송을 배경으로 가운데 큼직이 앉아서 인자한 미소와 눈빛을 보이는 산신은 왼손으로는 흰 수염을 만지며 오른손에는 백우선白羽扇을 잡고 있다. 산신청 ‘거목擧目’에, “만 가지 덕을 갖추고 뛰어난 성품을 한가롭게 가지고 계시며[萬德高勝性皆閑寂山王大神]”, “사찰이 자리한 산에 항상 계실[此山局內恒住大聖山王大神]”뿐만 아니라 “시방법계에서 지극한 영험을 나타내시는 분[十方法界至靈至聖山王大神]”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덕성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의지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넉넉한 산신의 오른쪽에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위엄스럽기보다는 애교스러운 자태로 표현되어 친근감을 주고 있다. 산신도에서 호랑이는 산신의 위엄을 부각시키고, 산신의 자비공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산신도에 표현되는 호랑이의 모습은 눈썹과 콧수염, 눈동자를 강조해 생동감을 주며,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꼬리 표현은 대부분 S자로 기세 있게 힘이 넘치는 모습이다.
산신은 사찰의 호법선신이며 신행자들의 수호자이며 산중생활의 외호신으로 받들어져 왔다. 산신탱화가 전국 사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산신이 토속신으로 소박한 수용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 전법도생의 적극적 실천자이며, 기도자의 입장에서는 절실한 귀의의 대상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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