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달처럼 설레는 달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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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20 년 6 월 [통권 제86호] / / 작성일20-06-22 13:51 / 조회8,459회 / 댓글0건본문
김선미: 도예작가
“높이 약 여덟 치, 지름 일곱 치, 몸체에서 둥글게 아래로 불룩해지면서 다리 굽으로 끝난다. 짧은 다리굽이 지면을 세게 누르고 있다. 몸체에는 이는 자리를 보이며 원만한 곡선이 위쪽 목 부분으로 가서 다물어지고, 다시 주둥이는 기분 좋게 벌어지며 기세가 붙어 원을 만든다. 환원소성으로 된 유약은 아주 약간 푸른빛을 띠며 윤기 나는 빛에 쌓여 있다. 유약을 칠한 면은 균일하지 않다. 유약이 두꺼우냐 얇으냐가 이면을 풍부하게 하여 어떤 효과를 보인다. 지문 자국이나 유약이 벗겨진 자국이 있는 소탈한 것이다. 옛 시절부터 사용되어 온 까닭에 유약 아래의 바탕을 통해 여름철 구름 같은 얼룩이 보인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도자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챘겠다. 이 글은 조선의 미술공예 특히 조선 백자의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고 알린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가 쓴 달항아리(사진1)에 대한 표현의 일부다. 백자 대호라고도 불리는데 성형成形과 번조燔造가 어려워 불에 견디는 힘이 약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몸체를 반씩 성형하여 이어 붙여 찌그러진 형태가 되거나 가운데가 튀어나온 경우가 많은데, 불 속에서도 견디는 비율이 조화로워야 무너지지 않는다.
조선은 백자의 세계였다.
순백의 고요와 기품, 푸른빛의 그림과 여백의 미학, 소박한 자연미와 부드러운 선의 흐름을 백자의 아름다움으로 꼽는다.
조선초기의 잠깐의 분청사기 시대가 지나고, 조선은 유교의 이념에 걸 맞는 검소와 청렴과 절도의 기치를 내세운 사대부의 이념에 따라 백자의 흰색을 받아 들였다.
아름다운 백자 항아리
우선 조선 왕실에서부터 “백자만을 쓰겠다.”고 천명했으며 관요官窯를 설치해 제작공정, 납품과정까지 관여하며 양질의 백자를 만들고자 애썼다. 경기도 광주의 사옹원 분원은 420년간 왕실의 백자를 만들며 명맥을 이어갔다.
우리가 흔히 보던 청화백자의 용무늬 등은 임금에게만 진상하던 귀한 무늬였다. 그것은 최고의 권력을 바라던 염원이기도 한듯하다. 포도 그림도 많이 그려졌는데 이는 다산을 상징했으며 거북이는 장수, 모란은 부귀를 상징했다.
백자는 청자와 달리 왕부터 서민까지 모두 사용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물론 질적인 차이는 크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자를 선호했는데 임금님 대전에서도 백자를 사용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청렴하고 결백함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밝히고 있다.
조선 왕실에서는 청화백자를 좋아했는데 그림을 그리던 염료 코발트, 즉 회청回靑은 귀하기가 금보다도 더했다. 그래서 그보다 좀 더 구하기 쉬웠던 철화鐵畵백자와 아무 무늬가 없는 순백자도 많이 만들어졌다. 순백의 장식은 매우 절제되어 있고 최소한의 장식으로 최대한의 권위와 특징을 미감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도자기 작업을 하면서 이 흙 저 흙을 써보면서 느끼는 것은 기능성에서도 백자는 단연 으뜸이다. 단단해 잘 깨지지 않고 물이 배이지도 않아 식기로 쓰기에도 적당하다. 백토는 가장 오래된 흙이라 그만큼 안정성이 뛰어나다. 우리가 부르는 카오린(고령토)은 백토의 중국식 이름이다. 중국의 카오링산에서 백토가 많이 나오며 고유명사화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동, 산청, 합천 등지에 카오린 광맥이 뻗어 있는데 지금은 질 좋은 흙이 많이 고갈된 상태다.
언젠가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가 내게 분원관요가 해산되면서 도공들이 백토를 찾아 전국 각지로 흩어졌는데 내가 살고 있는 서산으로 많이 내려 왔다고 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백토가 나는 곳이 많았으며 가야산 주변에 많은 가마터가 있었다. 도자기 파편들(사진2)이 굴러다니는 것을 몇 점 살펴보면 백토와 유약이 굉장히 순수하고 맑았다.
그런데 겉으로 봐서 희다고 모두 백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가마를 짓고 흙을 찾아다닐 때 하얀 흙이 산처럼 쌓여 급한 마음에 장비를 동원해 흙 몇 차를 산적이 있다. 실험을 해보니 흙으로 쓰는 소지로나 유약으로나 별 재미가 없는 흙이었다. 지금은 처치곤란으로 쌓여 있을 뿐이다.
도예가들에게 알맞는 흙을 찾는 것은 자신만의 재산을 갖는 것과 같다. 그중에서 최고의 가치는 단연 백토다. 순수하게 철분이나 불순물 없는 흙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 집 주변에도 예전에 가마가 많았고 실제로 도자기 공방에서 일하신 분들도 몇 분 만나 백토의 출처를 물으니 아쉽게도 고속도로 부분으로 전부 들어갔단다.
흙을 찾는 일
일본의 경우 도기의 세계에서 자기의 세계로 넘어간 것은 정유재란 당시 끌려간 공주의 이삼평이 아리타의 이즈미야마에서 백토를 발견하고 부터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우리나라, 중국, 베트남에서만 생산하던 자기磁器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비약적으로 발달해 세계적인 도자기 생산국이 되었다. 그래서 이삼평을 도조陶祖로 숭상한다. 오랜 세월 풍화된 순수한 흙 백토 …. 그 흙으로 빚은 하얀 도자기 …. 오늘 아침, 백자에 목단 한 송이 띄워(사진3) 봄날을 느껴본다. 백자는 정갈하고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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