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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사리탑자문위원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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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  1996 년 9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7,90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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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불사

 

성철 큰스님 사리탑 불사의 현장

 

편집부

 

지난 5월 31일, 성철스님문도회에서는 처음으로 그동안 진행해 오던 성철 큰스님 사리탑에 대한 공개 발표회를 가졌다. 지난해 실시한 ‘퇴옹당 성철대종사사리탑설계현상공모’에서 당선작을 내지 못한 이후의 발표라 더더욱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번 발표는 사리탑 이미지 설계안에 대한 중간발표로서, 일본에서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재은(崔在銀) 씨가 문도회로부터 제의를 받은 지 1년여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리탑자문위원회와의 수차에 걸친 토의 끝에 완성을 본 작품이다. 중간발표 이후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라 불릴 만큼 여러 측면에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사리탑 설계를 첨단 설치 미술가에게 맡긴 것 자체가 파격이었고, 또한 이번에 발표한 작품이 지금까지 사찰에서 보아온 사리탑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도회가 사리탑 건립을 발원하고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큰스님께서 우리 시대의 부처로 불렸던 만큼 과거의 양식을 답습하지 말고 이 시대 조형언어로써 전통과 시대정신, 불교가 하나로 만나는 새로운 형식의 사리탑과 사찰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의견에 도달하고 거기에 뛰어난 작가의 작품성이 만나 이루어진 것이다.

 

작가 최씨는 “백련암을 수차례 방문하고 큰스님 관련 서적과 기사 등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언의 형태’ 즉 설명을 해서는 안 되는 형태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시간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구(球)와 원을 사용하여 스님의 올곧은 삶과 높은 수행력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카오스이론의 창시자인 프리고진 교수도 이 작품을 보고 “동양적 시간의 영원성을 잘 표현했다”고 하였다.

 

현재 이 이미지 설계안을 토대로 실시설계를 진행 중에 있으며, 오는 3주기를 즈음하여 최종 설계가 완성되면 착공식을 하고 대불사의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제 창건 1천 2백주년을 바라보는 해인사에 세워지는 큰스님의 사리탑이 이 시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도록 불자는 물론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리탑자문위원의 의견>

 

큰스님의 사상과 그 시대 문화가 

만나는 사리탑이어야 한다

 

  김동현/국립문화재연구소장

 

우리나라는 부도(浮屠, 사리탑)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도가 남아 있다. 부도는 훌륭하셨던 스님들의 묘탑(墓塔)이다. 이 묘탑은 묘(墓) 그 자체인 동시에 그 조성 당시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해 주는 하나의 기념물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각각 여러 시기에 조성된 묘탑들은 시대적인 조형사상(造形思想)이 반영되어 있고, 각기(各己)의 묘탑 주체인 스님의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성철 큰스님의 부도에도 그러한 외면성(外面性)과 내면성(內面性)이 깃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부도는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범주에서 맴돌게 되면 결국 성철 큰스님의 사상과 이 시대적 조형감각이 내포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의 성철 큰스님의 부도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평면(平面) 구성은 방(方)과 원(圓)의 결합체(結合體)이며, 핵심(核心)은 원에 두었고, 핵심인 원으로부터 방으로의 확산 전개는 단순하면서도 만다라적(曼茶羅的) 구상이 내포되어 정지(靜止) 상태에서 유동적(流動的) 공간에로의 의미 부여가 잠재(潛在)되어 있다. 

 

입면상(立面上)으로는 공간의 서열이 분명하며 허(虛, 空․淸空․空靈․無)와 같으면서도 실(實)이 있어 공허(空虛)하면서도 내실(內實)이 있는 조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직선과 원, 구, 호의 절묘한 조화

정영호/한국교원대학교 박물관장, 문화체육부 문화재위원

 

스님들의 사리탑 건립은 법제문도(法弟門徒)가 선사(先師)를 길이 현창하기 위하여 석재(石材)로써 건조하였던 것이니, 우리나라는 선종(禪宗)이 들어와 일종일파(一宗一派) 사자상전(師資相傳)의 법문(法門)이 확정되면서 이루어졌는데, 그 시기가 통일신라시대이다. 그러므로 각 선문(禪門)에서 고승대덕의 사리탑 건조는 당시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성철 큰스님은 금세기 후반에 있어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위대한 큰 스님이었으니, 사리탑 또한 구래(舊來)의 보편적인 작풍에서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우선 건립 장소가 다시없는 좋은 자리이니, 그 설계 또한 절묘의 작풍을 보일 기본이어야 한다.

 

기단부에 있어서 낮은 지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높직하고 낮은 2단의 기단을 구성하여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상단 중심에 원호형(圓弧形)의 괴임과 받침석을 호선(弧線)에서 접하게 하고 정상에 큼직한 원구석(圓球石) 하나를 놓았다. 괴임석은 밑바닥이 평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받침석은 상면이 평평하여 원구석을 안치해도 안정감이 있다. 다만 괴임과 받침석이 원호면에서 접하고 있어 불안할 것 같으나 그 위의 큼직한 원구석의 중심이 그 밑의 상․하 받침석과 괴임석 중심에 놓여 있어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보아 직선과 각(角), 원호(圓弧)와 원구(圓球) 등이 잘 조화된 기발한 착상의 설계도라 하겠다. 지하에 사리를 봉안하되 8각(八角)의 사리장치를 안치함은 미타정토(彌陀淨土)로 고인의 사리가 귀의(歸依)하는 당처(堂處)가 마련된 부도탑 건립의 본의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불교적 상징성이 살아 숨 쉬는 사리탑


홍 윤 식/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장

 

성철 큰스님은 생전에는 높으신 수행력으로 범부중생에게 크나큰 교화력과 구제력을 미치셨고, 열반에 드신 이후에는 역대 어느 고승보다도 영롱한 사리를 더욱 많이 남겨 불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인들로 하여금 수행의 높은 덕이 영원한 생명체의 상징으로 남게 되는 것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셨다.

 

사리란 높은 수행력의 결정체라 인식되어 성스러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고, 따라서 그것을 봉안하는 사리 장엄구와 부도의 조형화가 일찍부터 이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고승의 사리를 봉안하는 부도의 양식은 대체로 팔각원당형(八角圓當型)과 석종형(石鐘型)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시대를 앞서고 후자는 시대가 내려오면서 전자를 간략화해 나간다는 특징을 지니지만 어느 것이든 원형(圓形)에 접근하려는 마음의 소산에서 조형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설계는 원(圓)의 완성체인 구(球)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철 큰스님의 성덕(聖德)에 걸맞는 설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의 표현법은 원(圓)이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는 최상의 표현법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 원을 입체화한 구(球)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원의 표현법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설계는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내는 만다라적 표현법의 양식을 수용하고 있다는 데서도 그 의의와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예컨대, 이 설계는 측면도에서나 평면도에서나 궁극적으로는 원과 구를 구현하려 하고 있음이 그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측면도에서 보면, 지대석 위에 2층의 방형기단을 마련하고 있으며, 탑신부는 반구(半球)를 대칭적으로 놓고 그 위에 최고의 경지를 나타내는 구를 올려놓은 것은, 돈오돈수를 수행의 표본으로 삼으신 성철 큰스님의 사상과 정신을 사리탑이라고 하는 구조물을 통해 잘 상장화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평면에서 보아도 가장자리의 주변은 방형의 판석으로 중첩되게 하고 있으나 중심부에 가서는 궁극적인 표상으로 원과 구를 핵심적으로 배열하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보면 밀교의 만다라법을 수용하면서도 그를 입체화해 나갔다고 하는 점에서 한층 더 불교적 구조물로서의 의미가 돋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밀교의 만다라적 표현법은 평면적 회화적 표현법을 수용하고 있는 데 반하여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설계도는 그를 입체화한다는 의도를 충분히 살리고 있어 보다 진전된 불교적 구조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는 그 어떠한 표현법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득이 그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조사들의 논의가 있어 왔으나 결국 선가(禪家)에서는 원(圓)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것이라 하여 수묵(水墨)에 의한 원의 표현법을 즐겨 써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십우도(十牛圖)에 표현된 원의 표현법을 꼽을 수 있으나 그 외에도 많은 선사들은 원의 표현법을 금강경의 경의에 의하여 자주 사용하여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의 표현법에 있어서도 돈오돈수냐 점수돈오냐 돈오점수냐 하는 기본 입장이 다름에 따라 원을 최고의 경지로 표현하려고 하는 십우도에서도 그 구도법이 서로 다른 점을 보여 왔다. 예컨대 보명(普明)의 십우도와 곽암(廓庵)의 십우도가 차이점을 보이고 있음이 그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설계는 선가(禪家)에서의 원(圓)의 표현양식과 밀교에서의 만다라적 표현양식을 모두 수용하면서 이들 표현법에서 이견(異見)을 보여 왔던 부분들을 극복해 냈으며, 이를 원(圓)에서 구(球)로 승화시킨 불교적 구조물의 진전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은 전통적 기법과 양식을 모두 수용하면서 그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대적 구조물로서의 불교적 상징성을 충분히 살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를 살고 간 성철 큰스님의 고귀한 정신을 충분히 나타내려 하였고, 그러기에 그것은 후대에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는 불교적 상징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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