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기도]
성전암의 그 곱던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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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6 년 9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7,979회 / 댓글0건본문
김덕이(보덕화)
소녀 모양 부푼 꿈을 안고 파계사 성전을 오른다. 산길이 처음인 초보생은 큰 보살님들의 뒤를 따르며, 일거일동과 오가는 대화 속에 잔뜩 호기심에 부푼다.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오르고 또 오르니 싱그러운 솔바람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더운 땀을 식혀 준다. 하도 힘에 겨워 성전이 아직 멀었냐고 물어보다 한 방망이 맞았다.
다소곳이 뒤를 따라 오른다보니 조그만 사립문이 보인다. 갑자기 보살님들이 주의를 준다. 따라서 긴장하며 살피기 바빠진다. 우선 땀을 닦고 법당에 오르니 부처님이 아주 조그마하다. 의아한 생각이 든다. 큰 도인스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사찰도 부처님도 아주 웅장하리라 상상하였는데, 참 예외다.
큰스님께 인사를 올리려고 들어서며 살그머니 살펴본다. 따뜻하니 반기는 듯한 눈빛,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그때 그 모습이다.
“자, 여기까지 왔으면 돈 좀 벌어서 가야지, 처음이니 한 천냥만 할까.”
어리둥절하여 멀뚱히 쳐다만 보니 언니 보살께서 눈짓을 한다.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면, 돈 버는 규칙이 있어. 첫째, 법당에 갈 때는 꼭 법복입고 새 신발 신을 것, 둘째, 화장실에 갈 때는 법복금지, 다녀와서 목욕할 것, 셋째, 오늘부터 너희들이 이곳의 주인이니 기도 마칠 때까지 알아서 할 것.”
그러고 나자 상좌스님들이 어서 나와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다. 서둘러 저녁공양을 마치고 나자 큰스님께서 숙제를 주신다.
“오늘은 처음이니 관음전에 가서 삼백냥만 벌어라.”
관음전에 올라서니 어찌나 비좁은지 세 사람이 겨우 끼어 섰다. 열심히 따라서 절을 하는데, 너무 힘이 든다. 겨우겨우 마치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문 밖을 바라보니 달빛이 유난히 곱다. 곱게 퍼지는 달빛 속에 처음 큰스님을 뵈었을 때가 떠오른다.
큰스님께서 안정 천제굴에 계시다가 성전으로 옮기시기 전, 건강이 나빠져서 잠시 부산 어느 신도집에 머무르고 계실 때였다. 그때만 해도 30대 초반이 새색시라 절에 다닌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때였는데, 어느 일요일 언니가 어디를 같이 가자며 부추겼다. 그래 어디를 가자고 하느냐고 물으니 “저기 큰스님이 계신데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따라 나서 그 집을 가보니 법복을 입은 신도들이 두 손을 합장한 채 까치발을 해가며 숨을 죽이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까지 줄을 서 있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 계시길래 저리 조심을 하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한 그림자가 어렴풋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부리부리한 눈, 쏘는 듯한 눈빛,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이는 듯한 자비로운 얼굴, 무엇보다 놀란 것은 마치 부처님의 6년 고행상을 닮은 듯한 깡마른 모습이었다.
“우습제! 저 사람들 무엇 때문에 저러고 있노.”
순간, 내 마음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한 말씀에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큰스님은 성전으로 올라가셨고, 오늘 이렇게 3천배를 하며 다시 큰스님을 친견하게 된 것이다.
내려서려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돌계단을 내려갈 수가 없어 가재모양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며 한 발짝씩 내려서니 언니보살이 웃기만 한다. 따끈한 설탕물 한 잔을 내밀면서 내일은 새벽 세 시에 예불을 시작한다고 귀띔을 해준다. 아니 지금이 몇 시이데, 내심 걱정이 앞선다.
사실 성전암은 가기, 아니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곳이었다. 그 때 큰스님은 시자 두어 분 외에는 일체 출입을 금하시고, 더군다나 보살들은 일년에 여섯 번만 들고남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가기 어려운 성전에서 첫 삼천배를 무사히 마쳤으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큰스님을 친견한 지가 벌써 30여 년이 된다. 지금도 빙그레 웃으시던 그 온화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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