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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도]
외상화두로 시작한 나의 삼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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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야행  /  1996 년 12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06 21:16  /   조회8,25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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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절에 발을 들여 놓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께 가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주신다는 시댁 큰형님의 말씀을 듣고, 첫아이를 사대부속국민학교에 넣겠다는 욕심으로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동짓달에 그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러나 절에 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구두를 신고 따라갔다가 무척 고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절뚝이며 정상에 도착해서 부처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나 반가워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간절히 소원을 빌면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서 기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12월, 첫아들은 나의 소원대로 당첨이 되어서 사대부속국민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담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갓바위 부처님을 친견하러 다니고 있고, 그때를 초발심으로 하여 동화사 비구니 스님이 계신 양진암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양진암은 비구니 스님 선방이 있어서 많은 스님네들이 오고 가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6년 전 정월달쯤인가, 스님 몇 분이 삼천배를 하고 큰스님께 세배를 간다고 하길래 “스님, 저도 따라가겠습니다”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한 스님께서 정색을 하며, “보살님은 안 됩니다. 우리도 큰스님을 친견할 듯 말듯한데, 보살님 데리고 갔다가 우리까지 쫓겨나면 보살님이 책임지실겁니까?” 라면서 극구 반대를 했습니다. 자꾸 반대를 하니까 어떻게든지 꼭 따라가서 먼빛으로나마 큰스님을 친견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스님을 졸라댔습니다.

 

“그러면 스님들께서 큰스님 방에 들어가실 때 뒷모습만이라도 볼 테니 데리고 가 주세요.”

자꾸 조르니까 스님들도 “그러면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포기를 하고는 동행을 반승낙했습니다. 스님들을 따라 해인사 백련암으로 향해서 저녁 무렵에야 도착하니 주위가 어찌나 고요한지 더럭 겁이 났습니다. ‘나 때문에 이 스님들께서 큰스님 친견을 못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습니다. 조금 있다가 큰스님을 모시고 계시는 시자스님이 나오더니 “큰스님께서 지금 막 저녁 공양을 마치시고 들어오라고 하니 가보십시오” 라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큰스님께서 종정이 되시고 난 얼마 뒤라 신문기자들이 어찌 스님 인터뷰를 해보려고 진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화장실에는 가시겠지 하고는 담 밑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큰스님을 뵙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구니 스님들도 내심 ‘성공이다’ 하는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내 눈치를 살폈습니다. “염려마시고 어서 들어가세요. 저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하고 뒤로 물러서자 동행을 극구 반대하던 스님께서 두루마기를 벗고는 동방을 벗어주면서 “보살님, 빨간 잠바 벗고 이것으로 얼른 갈아 입으세요” 하신다. 옷을 갈아입고, 스님들 뒤를 따라 조심조심 숨을 죽이며 따라 들어가서 삼배를 올리고 뒷전에 앉았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나를 보더니 “저 보살은 누꼬?” 라고 비구니 스님들께 물으셨습니다. 옷을 벗어준 스님이 “양진암 신도인데 하도 간청을 하길래 같이 왔습니다”라고 대담을 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책상 서랍에서 종이쪽지 한 장을 꺼내 주면서 “보살, 너는 염불도 하지 말고 책도 읽지 말고 어째서 삼서근이 부처님이라고 했는지 이것만 열심히 공부해라” 하셨습니다. 삼배를 올리고 그 종이를 받았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비구니 스님들에게는 “너그들 지금 머슴아 하고 팔씨름 시키면 이기겠나? 질게다. 공부 열심히 해라. 됐다. 나가라” 하셨습니다. 큰 법문을 기대했던 나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해서 비구니 스님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큰스님을 친견하고 나와서는 시자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큰스님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보살님, 때가 되면 다 압니다. 보살님은 지금 외상화두를 탓으니 내려가서 삼천배를 해야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보살님이 삼천배를 하지 않으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보살님 그릇을 아시기 때문에 화두를 주신 것이니 약속을 꼭 지키셔야 합니다.”
‘그렇구나. 조금 전에 받은 것이 큰스님께서 내게 주신 화두였구나.’

 

나는 비록 외상화두를 받기는 했지만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암자에 내려와서 저녁공양을 하고 저녁 8시부터 절을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참회문과 씨름을 해서 삼천배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은 나를 보고 “보살은 너무 복이 많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뒤에 고3 아들을 위해 아비라기도에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 보따리를 싸들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 기도를 참아냄으로써 우리 아이가 대학에 합격한다면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강한 모성애로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 해 아들은 대학에 합격을 했고, 나는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15년 동안 일년에 네 번의 아비라기도를 한 번도 빠짐없이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도 모두 신심이 돈독해져 식구 모두가 삼천배를 하기 위해 백련암을 찾았고, 그 때마다 큰스님께서는 반겨 맞아 주시면서 “절 다 끝나면 밥 먹고 가거라. 인자 몇 배 남았노?” 하면서 챙겨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큰스님께서 우리 옆에 계셨던 부처님인 줄 그땐 왜 몰랐을까? 

불생불멸을 강조하신 큰스님은 결코 열반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우리 옆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실제로 제 마음 속에는 항상 큰스님이 살아계십니다. 스님께서는 극락이 따로 없으며 부처가 따로 없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살고 있는 자리가 바로 극락이며 이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바로 불자의 도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살아있는 철학이며 진리입니까!

 

나는 큰스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으며, 남을 절대로 오해하지 않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하지 않으며, 절망에 부딪혀도 전화위복이 되겠지 하며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과(因果) 아닌 것이 없으며,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내 마음자리도 고요해져 극락에 가까울 것이므로 더불어 행복할 것이고, 갈피를 못 잡고 불안해하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르침만으로도 얼마나 큰 득을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욱더 분명한 것은, 정진하면 정진할수록 마음이 가볍고 고요하며 부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아주 어렵고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부처님께서 꼭 도와주시며, 우리 옆에 계심으로써 모든 무서운 것으로부터 나를 옹호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더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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