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타]
큰스님이 뿌리고 간 법향은 이 땅에 고스란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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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6 년 12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06 21:16 / 조회8,421회 / 댓글0건본문
서돈각 / 전 동국대 총장
1
성철 큰스님과의 소중한 인연을 써 달라는 <고경> 편집부의 부탁을 받고 보니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성철 큰스님에 대한 흠모의 정이 되살아나 감회가 무량하다. 큰 산 같기도 했고 넓고 넓은 바다 같기도 했던 큰스님이 가신 가야산에도 벌써 세 번의 가을이 가고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도 그만큼의 계절을 지나 이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생각하니 한국불교 1천 6백년 역사의 수많은 스님들 중 한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선승(禪僧)으로 우뚝 서 계신 큰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유독 더한다. 큰스님과의 인연을 떠올리자니 잔잔한 호수에 여울이 일 듯 지나간 세월의 편린들이 기억 속에 반짝이며 떠오른다. 남들이 생각하면 그저 스쳐가는 일로 여길지 모르는 잔잔한 기억들, 내게는 늘 특별했을 뿐이다.
나는 대학에서의 법학 강의, 직책상 업무도 중요시하지만 때때로 짬을 내어 부처님의 성지를 답사하고 철마다 전국의 사찰을 참배하여 큰스님들을 친견하고 또 그 분들의 법문을 듣는 일이 더욱 즐겁다. 그 일을 통해 많은 감화를 받게 되고 또 생활에 새로운 힘이 되곤 한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29년 일제시대였던 당시 무엇에 이끌렸는지 모르게 신문에 실렸던 조그마한 사진을 오려서 간직하며 시작된 나의 신앙생활은 집 서재에 마련한 불단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예불과 독경, 108배를 올리고 있다. 지금은 몸이 부실하여 108배를 다 채우지는 못하지만.
어느 해인가, 가을이었을 게다. 서울에 오신 스님께서 뜻밖에도 손수 전화를 주셨다. 그때의 기쁨이야말로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모처럼 서울에 오셔도 스님께서는 계신 곳을 알려주지 않으시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유독 내게 연락을 주셨으니 말이다. 공부하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스님의 자상한 성품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다.
열반 후 여러 보도를 통해서도 알려졌듯이, 스님만큼 널리 책을 읽은 분도 드물 것이다. 또 뜻이 통하는 이와는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셨다. 모든 학문에 조예가 깊으셨던 스님이지만 특히 심령학에 대해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이와 관련된 책도 많이 소장하고 계셨고 더러는 관심이 컸던 내게 보여주기도 하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미국의 스미스 교수가 심령학에 대한 귀한 책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 책을 받자마자 한 걸음에 스님에게 달려가 책을 보여 드렸다. 그러자 “이거 나 주는 거지?” 하며 이내 책을 펼쳐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씀에 오히려 서운하기보다는 ‘귀한 책이 제 임자를 만났구나’ 생각되어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광채로 빛나던 그때 스님의 눈빛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그것은 아마도 진리에 대한 구도심으로 모든 학문을 섭렵하시던 스님의 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스님의 유품 가운데 손때 묻은 그 책이 남아 있을 것이다.
2
1963년 대불련이 창립되었으니 아마 1960년대 중반 어느 여름날로 기억된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대불련 초창기에 나는 대불련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해 여름방학 대학생들을 인솔하고 해인사로 수련회를 떠났다. 무더운 법당 안에서 다소 불만스럽게 3천배를 하면서 학생들은 ‘가야산 호랑이’라는 큰스님의 지엄함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스님을 만나는 순간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육두문자까지 쓰시면서 제자들을 경책하신다는 스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마냥 환히 웃으시며 우리들의 법문을 흔쾌히 들어 주신 것이었다. 스님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시더니 백련암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뜻밖에 가야산 깊은 골짜기 물 맑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큰스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던 학생들에게 이 날의 일은 올곧은 수행과 청정한 삶으로 일관하신 큰스님의 정신세계를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스님은 어린이들도 좋아하셨지만 특히 청년불자들을 아끼셨다. 그때 스님은 대학생 불자들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중생이 본디 부처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이다”라고. 이 말은 본래 우리가 지니고 있는 불성을 일깨워 주는 말씀에 다름 아니다.
대개 우리는 성철 큰스님과 3천배를 동시에 떠올린다. 부처님에 대한 신심의 증표이기도 한 3천배 때문에 생전에 스님을 찾아뵙지 못한 분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스님의 큰 가르침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스님을 만나려면 꼭 치뤄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되어 버린 3천배는 곧 우리들의 본마음을 찾아가는 통과의례인 것을.
3.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백여 년 동안 무분별하게 유입된 서구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인심은 각박해지고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인간의 기본 양심과 도덕성이 상실된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 모두가 인간의 덧없는 욕심,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이다. 이러한 세태를 바로잡고자 올해는 내가 중책을 맡고 있는 대한불교진흥원이 주축이 되고 불교계 여러 단체가 동참하여 지계(持戒)와 보시(布施)의 깨끗한 마음, 깨끗한 세상을 만들고자 ‘청정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이것은 나부터 청정해지면 세상은 저절로 청정해진다는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이다.
계는 불교의 생명이다. 생전에 성철스님도 조계종 종정으로 계실 때 항상 지계청정(持戒淸淨)을 강조하셨다. 유품으로 달랑 남기신 누더기 장삼 한 벌, 검정고무신 한 켤레는 철저하게 검소하고 조금의 번거로움도 싫어하신 성철 큰스님이 이 시대에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이다.
말은 입에서 나올 때보다 행해질 때 값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말을 좇지 말라던 큰스님이 몸소 행하신 무소유의 삶, 청정한 오도적 삶은 우리들 가슴속에 묻혀 있는 불성을 일깨우는 모범이 되었다. 스님 한 분의 깨끗한 구도적 삶이 불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십만 포교사 이상의 몫을 거뜬히 해내셨으니 새삼 ‘청정운동’을 전개하는 우리의 노력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불교가 잘되는 길도 스님과 신도 모두가 계를 잘 지켜 이 사회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성철 큰스님이 우리들 가슴에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는 까닭이 여기도 있다.
열반하시기 몇 해 전부터 여러 가지 일상에 쫓기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스님도 몸이 불편하여 연락이 닿지 않아 오래도록 적조했던 점 모두가 죄스럽기 이를 데 없다. 막상 조문을 가니 옛 인연을 생각하여 상좌 스님들이 퇴설당까지 들어가도록 배려해 주시니 더욱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직무 관계로 다비식을 미처 보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뒤에 많은 사리가 나와 큰스님의 법력에 보는 이들의 환희심을 자아내게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그것을 사리탑에 봉안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기린다고 하니 고맙기만 하다.
스님은 늘 산에 계시고 나는 도시에 있었으나 스님의 가르침은 몇 천 마디 말보다 더 값진 청정법신으로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스님은 가셨으나 스님이 이 땅에 뿌리고 간 법향은 고스란히 남아 오늘도 그윽한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다시금 우리 곁에 제2, 제3의 성철 스님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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