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추모 기사]
북녘동포와 깨달음 그리고 대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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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동 / 1997 년 9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9,254회 / 댓글0건본문
성철 대선사 열반 4주기 추모 칠일칠야 참회법회 /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김판동 / 월간 대중불교 기자
스님. 오늘 스님을 생각했습니다. 기억나세요. 왜- 그날, 눈이 많이 내려 발목까지 빠지는 작년 12월 말이었나요. 스님께선 제 자취집을 찾아와 신열을 앓는 저의 머리맡에 조심스럽게 약 한 봉지를 놓고 가셨잖아요. 파란 만원짜리 지폐 세 장도 함께요. 스님이 가신 후 어스름 새벽녘에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머리맡에 놓여 있는 스님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스님은 항상 저에게 눈물을 흘리도록 만드는 분인가 봅니다. 저는 스님께 항상 힘들다고 투정만 했는데….
그러니까 3일이 넘도록 방안에 머무르면서 저는 아픈 몸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도의 아픔을 스스로 저항해 보자는 모진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젊기도 하고요. 지금 기억으로 한 끼 정도의 빵만 먹은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객기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 때는 내 스스로에게 저항해 보고 싶은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신열은 좀처럼 가라앉을 줄 몰랐습니다. 이대로 죽는가보다 하는 상상도 해보구요.
스님…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스님이 저 모르게 놓아둔 약 한 봉지의 온기 속에 스님께서 저에게 그토록 말씀하신 불법(佛法)의 감동적 가르침이 있음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스님, 작년 여름 때의 일 기억나세요. 저는 스님께 “부처님은 무척이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분이셨다”고 주장하며 예를 들어 말씀드렸잖아요. 어느 죽은 아이를 안고 온 아이의 어머니가 슬피 울며 부처님께 매달렸다지요. 부처님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이 아이를 살려주신다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하겠습니다, 하고요. 그 때 부처님은 그 여인에게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은 집만 골라 겨자씨를 가져오면 살려준다고 했다지요. 물론 그 여인은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죽지 않은 집이 없음을 알고 삶의 무상(無常)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가히 부처님의 침착성 그리고 냉철한 이성과 지혜가 엿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부처님이 사람에 대한 따뜻함보다 서늘한 이성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으니, 고통받는 중생들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있다며 스님께 답을 달라 칭얼거렸잖아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그날 스님이 제 이마에 손을 짚으며 저보다 더 아파했던 것처럼 부처님의 서늘한 지혜의 뒷뜰에는 중생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그 죽은 아이를 안고 온 여인을 부처님은 껴안고 울었던 겁니다. 함께 울음으로서 여인으로 하여금 무상의 깨달음으로 발걸음을 옮기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눈물 많은 대비심이 있었기에 여실지견(如實之見)이 가능했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왜 그날 저의 투정을 스님이 아무 말 없이 받아주셨는지 이제야 잘 알겠습니다.
스님, 제가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능케 한 것이 중생에 대한 사무친 대비심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아갈 그 때, 저의 가슴을 때리는 소식하나가 북녘에서 날아왔습니다. 북한의 식량난 소식은 이미 2년 전부터 들어왔지만 그 때는 그저 담담한 심정이었고,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관계로 이를 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올 초, 아마 양력설이 막 끝났을 때였어요. 저에게 북녘의 굶주린 아이들의 사진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굶주림에 지쳐서인지 엄마 품에 힘없이 안겨 눈만 커 보이는 아이의 모습은 아, 나는 무엇을 했는가란 자책감으로 빠뜨렸습니다. 한 달이 더 지나자 이들은 더 참담한 모습으로 저의 눈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앙상한 뼈마디에 움푹 패인 눈두덩. 영양실조에 노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언론과 몇몇 저의 주변사람들이 ‘이들을 도우면 군량미로 간다’ ‘아직은 대량아사가 아니다’란 말을 합니다. 그리고 때론 정치적 흥정거리로 생명이 논의될 때 스님, 저는요 깊은 무력감과 사람의 대비심이 이렇게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가란 회의감에 빠집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요. 저의 이런 기분을 스님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스님, 저는 스님이 다녀가신 그날 이후 하나의 확신이 생겼어요. 우리의 불교는 냉철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그 대상에 대한 깊은 신뢰와 눈물 나는 애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죠. 북한동포를 돕자는 말에 몇몇 스님과 불자들은 이성적인 판단과 냉철한 시각을 말합니다. 그러나 더 들어보면 이분들에게는 죽은 아이를 엎고 온 여인에게 인생의 무상함만을 서늘하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여인이 삶의 무상함으로 나아가게 만든 부처님의 눈물겨운 위로와 감동적인 발걸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스님, 그런데요. 요 몇 달 전부터 수많은 불자들은 모두들 부끄러운 손에 밥그릇을 들고 북녘동포 돕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첫아이 돌 잔치 때 들어온 반지를 내놓는 불자, 저금통장을 깼다며 고사리 손에 동전 들고 온 어린이, 방생법회를 동포돕기법회로 돌렸다는 어느 스님. 그들이 지금 스스로 밥이 되어, 대비심의 물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소식들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저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립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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