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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노래]
꽃필 때는 춤추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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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  1998 년 3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9,3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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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지금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는 약이 되는 비 즉 약비라고 합니다. 봄 가뭄을 해소시켜 주는 단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벚꽃길을 소재로 하여 쌍계사 국사암을 취재하려고 하는데, 벚꽃이 절정인 이 시기에 비 손님이 오시고 있으니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입니다.
낙엽은 소슬바람에 약하지만 벚꽃은 비를 견디지 못하여 거짓말처럼 일시에 져버린다고 합니다.

 

스님.
그래서 저는 내리는 봄비를 가끔 쳐다보며 스님의 법문집을 뒤적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이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책은 목차대로 읽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뒤에서부터 혹은 순서 없이 읽기도 하지요.
오랜만에 스님께서 대담하신 글들을 봅니다. 언젠가 보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에 밑줄을 쳐 놓은 적이 있는데, 그 구절들을 따라 읽으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이런 식으로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는 맛도 또 다른 느낌입니다.

 

 


 

 

스님.
먼저 눈에 띈 법문은 1981년 1월 19일자의 「중앙일보」에 이은윤 기자가 정리한 기사 중 한 구절입니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이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것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번에는 1982년 1월 1일의 「중앙일보」에 실렸던 법정스님과의 대담 중에 눈에 띄는 구절입니다.
“우리 불교에 대해 항상 걱정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소한 파동보다도, 근본적으로 볼 때 우리 불교가 일반사회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낙후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을 면하려면 불교인의 자질 향상부터 시켜야 하며, 그것은 도제교육이 가장 기본 조건입니다.

 

어느 단체든지 그 장래는 2세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불교계에서도 자질이 저하되는 것이 사실인데, 자꾸 낙후되다 보면 나중에는 탈락되고 맙니다. 존재하지 못해요. 이대로 나가다가는 결국 탈락 현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힘을 다하여 승려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늘 생각하는 쇠말뚝이 하나 있습니다. 쇠말뚝을 박아 놓고 있는데 그것이 아직도 꽂혀 있습니다. 거기에 패(牌)가 하나 붙어 있어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

 

 

1983년 5월 16일의 「경향신문」에 한국불교의 중흥을 걱정하시면서 김지견 박사에게 이런 법문도 하십니다.
“법당의 기왓장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를 가르쳐야 우리 불교가 제구실을 하고 전통을 계승할 것으로 믿고 있어요.”
다시 1983년 5월 20일의 「중앙일보」에는 이은윤 기자에게 초파일 등불 켜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등불이란 한낮에 뜬 해처럼 우주를 항상 비추고 있으니 또 다른 등을 켠다면 이는 대낮에 촛불을 켜는 것 같아서 백련암은 초파일 등불을 따로 켜지 않습니다. 이렇게 등불을 켜지 않는 것은 등불의 본체를 알기 때문이요, 등불을 켜는 것은 비단 위에 꽃을 던짐과 같은 것이니, 두 가지 다 좋은 일이지요.”

 

말하자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처럼 초파일 등불에 대해서 유권해석을 내리시는 말씀 같아 입안에 은단을 머금은 듯 싸하니 상쾌해집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 같은 날의 「동아일보」에 박경훈씨와 대담 중에서는 큰 도둑론을 펼치시며 어린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이시고 있습니다.

 

“돈 몇 푼 훔치는 것은 어린애 같은 것이라, 성인이나 철인이라고 하자면 뭣 좀 아는 체하고 남을 속이는 게 진짜 도둑이고…. 그리고 고관(高官)이라면 우리 사회에선 좋은 집에 좋은 옷을 입는 상류 사회인처럼 인식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여야 되지. 이조판서에다 대제학까지 지냈던 율곡 같은 이는 죽은 후 염할 옷도 없었고 부인이 살집이 없어 제자들이 마련해야 할 정도로 사리사욕이 없었다는 거야. 그런데 요즘 정치인이나 고관들은 보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거야.”

 

“때 안 묻은 어린이를 집안에선 주불(主佛)로 모셔야 돼. 사람이란 나이가 들수록 때가 묻게 마련이야. 때 묻은 어른, 때 안 묻은 어린이 중 더 가치 있는 건 때 안 묻은 어린이야. 어른이 때 안 묻은 생활을 하기 위해선 어린이 본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그리고 또 1984년 3월 17일의 「조선일보」에 법정스님과의 대담 중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남을 돕는 데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이 있고, 정신적인 도움이 있고, 육체적인 도움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도 불공이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도 불공이며,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도 불공입니다. 뿐만 아니라 물에 떠내려가는 벌레를 구해주는 것도 불공입니다. 불공이란 인간끼리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일체중생을 보호해 주고 도와주는 것은 모두 불공입니다.”

 

“불립문자란 최상급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문자도 필요 없다, 부처님 법문도 필요 없다, 조사의 법문도 필요 없다는 소리고 알아서는 큰일입니다. 약이 필요 없다는 것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소리이지 병자에게는 약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본래의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는 약을 곁에 두고 먹어야 합니다.”

 

끝으로 1983년의 「샘터」5월호에 정채봉 작가와의 대담 중에는 이런 유머러스한 법문도 남기시고 계십니다.
“스님이 지금 느끼시고 계시는 것은 무엇인지요.”
“따스하니까 다니기에 좋네.”
“봄이면 젊은이들한테 봄바람이 난다고 합니다만.”
“꽃필 때 춤춰 보는 게 좋지.”
“지금도 기운 누더기의 옷을 입고 계시는데, 그 옷을 입으시면 마음이 편하십니까.”
“똑 같애”

스님, 아직도 봄비는 내리고 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다시 읽다 보니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특히 마지막 ‘꽃 필 때 춤춰 보는 게 좋지’라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절로 터져나옵니다.
따스한 말, 젊은이들이 봄바람 좀 났기로서니 어쩌겠냐는 스님의 너그러운 딴청에 어찌 함박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 스님의 법문을 다시 보며 보내는 비오는 봄날의 한낮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서신 띄워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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