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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노래]
나이론 양말을 도끼로 찢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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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  1998 년 6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5-06 08:33  /   조회8,91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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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스님께서는 ‘천제굴’ 시절 어린 행자들하고 생활하시며 특히 “시물을 화살같이 하라〔施物如箭〕”고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마산·진주·부산 대중들에게 도인으로 소문이 나자, 신도들 사이에서는 너도나도 시물을 가져오니 행자들에게 교육상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행자들에게 야운(野雲)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가르치면서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이라면 누구나 행자 때 배우고 익히는  『자경문』에도 이렇게 절절히 나와 있음이었습니다.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받아 쓰지 말라.

 

 


 

 

갈고 뿌리는 일에서 먹고 입기까지 사람과 소의 수고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벌레들이 죽고 상한 것도 그 수가 한량이 없을 것이다. 내 몸을 위해 남들을 수고롭게 하는 것도 옳지 못한데, 하물며 남의 목숨을 죽여 가면서 나만 살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도 늘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이 따르고, 길쌈하는 아낙네들도 몸 가릴 옷이 모자라는데, 나는 항상 두 손을 놀려 두면서 어찌 춥고 배고픔을 싫어하는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사실 빚만 더하는 것이지 도에는 손해가 된다. 해진 옷과 나물밥은 은혜를 줄이고 음덕을 쌓는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풀뿌리와 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고

송락과 풀옷으로 그 몸을 가리라
산야에 깃드는 새와 구름으로 벗을 삼고
높은 산 깊은 골에서 남은 세월 보내리.

 

이 『자경문』의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이란 구절은 다름 아닌 시물을 말함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중에 호롱불을 훅 꺼버리고 미진한 이야기를 마저 할 때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불을 끈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중생을 제도하라고 신도가 보내준 호롱불 기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불을 끄고 달빛으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행자들은 무슨 이야기이든 어둠 속이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처럼 선명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실제로 법문만 그러신 게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신 까닭입니다. ‘나일론 양말 시물’ 사건이 그랬습니다.

 

스님.
스님의 양말은 3년 이상 된 기운 것들이었으므로 천 조각 뭉치나 다름없었습니다. 반면에 천제굴을 드나드는 내노라 하는 스님들의 양말은 늘 정갈했습니다. 나중에 행자들이 안 사실이지만 구김이 가지 않는 나일론 양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마산 신도가 스님에게도 나일론 양말을 사다 드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스님은 방구석에 던져두고 몇 날 며칠을 신지 않더니 어느 날 이 행자를 불러 소리쳤습니다.
“이 행자, 도끼 가져오그래이.”
“스님, 장작 패실려고요.”
“이눔아, 어서 가져오그래이.”

 

그때 스님의 손에는 나일론 양말이 두어 켤레 쥐어져 있었습니다. 이 행자는 나일론 양말을 얻어 신으려나 보다 하고 기대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나무토막 위에 양말을 놓더니 도끼로 내리찍어 조각을 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그런데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몇 달 뒤, 이 행자에게 이보다 더 아쉬운 일이 벌어졌다구요. 어떤 신도가 천제굴에서 기도를 했더니 자기 아들이 무슨 시험에 합격하였다고 당시 최고급 시계를 갖다 준 일이 있었다구요. 신도가 가버리고 나자 스님께서는 시계를 꺼내 들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기 라도시계라는 거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갖고 싶어하는 시계라는 것을 나도 알지.”

 

이때도 스님은 이 행자 앞에서 나무토막 위에 시계를 올려놓고 돌로 쳐 산산조각이 나게 부숴버렸습니다.
“산중 중이 무슨 시계가 필요 하노.  자경문』 끝에 뭐라캤노.”
“잊어버렸습니다.”
“이 행자야. 금생에 마음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소화시키지 못한다코 했다카이. 그러니 공부하는 놈이라면 한순간이라도 시계 볼 여유가 어데 있겠노.”
물론 신도가 밉고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요. 자신이 먼저 시물을 경계하고, 어린 행자들도 시물을 두렵게 여기라는 스님의 단호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스님.
이처럼 시물을 경계하는 스님의 태도는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진 팔순의 해인사 백련암 시절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재계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모 재벌 부부가 3천 배를 하고는 스님을 만난 적이 있었지요.

 

그 재벌 부부는 스님을 뵙자마자 미안하여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자신들은 따뜻한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스님은 몇 십년 됐다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벌 부부는 신도로서 가슴이 아파 충심으로 말했습니다.

 

“큰스님, 당장 따뜻한 털내의를 사오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스님은 가타부타 말을 안했습니다. 재벌 부부의 호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거절을 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내리신다면 저희는 환희심을 내어 보시하고 싶습니다.”
재벌 부부는 스님이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도 대답이 없자 당황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사람인기라. 하루 두 끼의 무염식으로 좌선하며 정진하는 내가 달리 무엇이 필요하겠노. 그러나 한 가지 청이 있다.”
“큰스님, 청이 무엇이옵니까.”
“처사가 경영하는 회사원들, 특히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환희심을 가지고 털내의를 선물해 주그래이. 자신의 욕망으로 죄업이 운무(雲霧)같이 쌓인 사람이 부처님 전에 불공 몇 번하고 스님들에게 공양한다 해서 지옥고를 어찌 면하겠노. 중생을 위해 대자비심을 일으켜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참 불자요, 먼 미래에 부처를 이루는 기초가 되는 것인기라. 알겠노. 내 청은 바로 그것인기라.”

 

흰눈이 내리는 그날 밤, 재벌 부부는 다시 법당으로 올라가 3천 배를 시작했다고 하며, 스님께서는 이후 열반에 들기 전까지도 신도들로부터 오는 시물을 극구 멀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님. 요즘에는 산사를 가보아도 불사가 한창입니다. 얼핏 보아서는 한국 불교의 중흥기가 도래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겉이 변한다고 안까지 그런 것일까요. 올곧은 수행자가 쏟아져 나와 한국불교의 기둥도 되고, 서까래도 되야 그게 진짜 불사가 아닐까요. 스님께서는 불사를 하더라도 단청을 못하게 하셨지요. ‘단청 값이 가람 한 채 값’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백련암에는 단청이 없다는 것을 저는 보아 알고 있습니다.

 

스님. 양말 한 켤레도 화살처럼 무섭게 여긴 스님의 정신이 그립습니다. 가난해야 도심(道心)이 생긴다는 말씀도 새삼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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