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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중국8- 유식학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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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1:39  /   조회8,13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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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대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유식학의 부흥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서양 문화의 충격과 그에 대한 전통철학의 대응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점은 앞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였다.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로 인한 위기의식 때문에 동양의 지식인들은 서양문화를 배워서 자강自强하도록 분발하였고, 전통문화를 일으켜서 서양문화의 도전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이 때 전통철학 중 첫 번째로 선택된 것이 바로 유식 불교였던 것이다.

 

유행의 배경

 

중국불교는 당대唐代 중기 이후에는 선종이 주류였는데, 선종은 “마음을 고귀하게 여기고 사고를 중시하지 않아 중국인의 심리와 서로 합치하였다.”고 장태염이 지적하였듯이, 근대의 이성적, 분석적 사고를 중시하는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또한 정토종이나 밀종은 타력에 의지하여 구제하기를 구하니, 근대의 비종교적인 조류와 합치하기 어려웠다. 천태종, 화엄종 역시 중국 불교의 전형적인 형이상학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과학이 중심이 되는 근대 시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근대 불교학자 계백화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금 시기 과학 이론은 날마다 더욱 창성하여, 화엄학, 천태학은 듣는 자가 받아들이기 막막하다”라고 표현하였다. 장태염은 “근대의 학술은 실사구시의 길로 나아가므로, 명대 유학자들이 미치기 어렵다. 과학의 맹아에 이르러서는 마음씀이 더욱 치밀해졌다. 따라서 법상학, 유식학이 명대에 적합하지 않고 근대에 특히 적합한 것은 그 학술의 추세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또 다른 불교학자 당대원은 “서양철학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는 유식학 만한 것이 없다.”고 단언하였을 정도이다. 이렇듯 중국 근대 시기에 유식학의 유행은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장태염

 

 

그렇다면 유식 불교가 전통철학의 대표로서 서양 문화에 대응할 수 있었던 특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유식 불교가 갖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분석적인 성격이 과학으로 대표되는 서양 문화에 대응할 만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유식 불교는 종교적인 측면과 학문적인 측면 두 가지를 다 지니고 있으므로, 이성적인 철학으로서 비종교적인 근대의 성격에 걸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불교처럼 직관을 중시하고, 원융을 중시하며, 논리사변적인 측면이 부족한 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예컨대 마음을 8식, 4분, 51심소법으로 나누는 등 인간 심리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나 인명학을 활용한 운용의 논리, 추론과 같은 유식 불교의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격이 동일한 성격의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접점이 되는 동시에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어책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서양 세력의 충격 하에서 유식학을 빌어 서학에 대응하는 것이 당시 많은 학자들의 바람이었다. 유식 불교의 이러한 이중의 신분은 동서 문화의 대립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조건이었다.”는 것이 당시 유식 불교를 보는 근대 지식인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태허와 구양경무

 

유식 불교 부흥의 계기는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근대불교 부흥운동에 앞장선 양문회이다. 양문회가 창립한 기원정사에는 승속 양계의 법상유식학을 대표하는 태허와 구양경무가 있었다. 1910년 양문회는 불학연구회를 세워서 학문 연구를 촉진하고 선종의 종지를 규합하였고, 유식 불교가 “말법 시기의 폐단을 구할 양약”이라고 선언하였다. 양문회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는데, 유식 불교에 뛰어난 인물들로는 구양경무歐陽竟無, 장태염(章太炎, 사진 1), 손소후孫少侯, 매광희梅光羲, 이증강李證剛, 산약목刪若木 등이 있었다.

 


인순스님

 

 

출가자 가운데 유식 불교를 깊이 연구했던 이는 불교 혁신운동의 태두인 태허이다. 그는 일찍이 유식학을 깊이 연구하고 8종 평등을 주장하였고, 어느 한 종파에만 얽매이지 않고 불법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특히 유식 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태허의 『전서全書』 중에서 유식 불교만 논한 것이 5책, 50여 편이고, 그 중 중요한 『법상유식학』은 당시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한다. 물론 태허는 유식 불교보다 『대승기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국불교가 불교의 핵심을 파악하였다는 입장을 취하였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허가 세웠던 무창, 민남, 한장교리漢藏敎理 등의 불학원에는 모두 법상유식학이 중요한 필수 과목으로 들어갔다. 태허를 중심으로 불학원 학자들의 특징은 원융의 측면에서 유식 불교를 해석하여 혁신 불교의 중요한 이론적 기초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았고, 따라서 유식 불교와 『대승기신론』은 모두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인순 스님의 <유식학탐원> 북경: 중화서국. 2011년. 

 

그리하여 태허 문하의 학자들과 불학원을 졸업한 학승들은 유식 불교에 정통하였는데, 그 중요한 인물로는 지봉, 정과, 인순, 법존, 복선, 법방, 자갱, 수배 등이 있다. 지봉(芝峰, 1901-1966)은 오랫동안 『해조음海潮音』을 편찬하였고, 유식학 측면의 논문들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일본어 『유식삼십론 강화』를 번역하였다. 정과(正果, 1913-1987)는 유식 불교를 주장하고 『불교기본지식』을 유식학의 관점에서 저술하였다. 법존(法尊, 1902-1980)은 만년에 진나의 『집량론集量論』, 법칭의 『석량론釋量論』과 승석이 주석 편찬한 『석량론략해釋量論略解』를 번역하였고, 유식학에 대한 공헌이 컸다. 인순(印順, 1906-2005, 사진 2)은 특히 방대한 불교 연구의 성과를 쌓았는데, 그의 『유식학탐원唯識學探源』(사진 3)은 유식 불교의 근원을 원시불교로 소급한 근대유식학 연구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복선(福善, 1915-1947)은 「삼유론三唯論」, 「안난진호사분의지간법安難陳護四分儀之看法」 등 유식학 논문을 발표하였다. 법방(法艕, 1904-1951)은 『해조음』을 주편主編을 맡았고, 인도·스리랑카 등에 유학을 갔다 와 가르쳤고, 『유식사관급기철학唯識史觀及其哲學』 등을 편찬하였다. 수배(守培, 1908-1984)는 옥산불학사를 세웠고 『신팔식규구송新八識規矩頌』, 『유식삼십론석唯識三十論釋』, 『진실의품략해眞實義品略解』, 『유식신구양역부동의견唯識新舊兩譯不同意見』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남구북한南歐北韓

 

거사계에서 유식 불교를 발전시킨 이들은 더 많았는데, 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는 ‘남구북한南歐北韓’의 두 계열이었다. ‘남구南歐’는 구양경무(1870-1943)를 가리킨다. 양문회가 세상을 뜬 이후 구양경무는 금릉각경처를 이어받아 이증강, 계백화 등과 함께 불교회를 창립하여 불교를 가르치고 연구하였다. 그는 1922년 장태염, 진삼립 등과 함께 ‘지나내학원’을 세웠으며, 원장을 역임하였다. 당시의 이름 있는 학자들, 여징呂澂, 탕용동湯用彤, 양수명(梁漱溟, 사진 4), 양계초(梁啓超, 사진 5), 진명구陳銘樞, 왕은양(王恩洋, 사진 6), 황수인(黃樹因) 등이 모두 지나내학원에 들어와서 구양경무 문하에서 유식 불교를 공부하였다. 지나내학원에서는 1952년까지 30년간 수백 명의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구양경무는 유식 불교에 중심을 두고 불전을 정리하고 연구하였고, 주요 경전을 정선하여 교감, 간행하고 『장요藏要』를 편찬하여 유통시켰다. 구양경무의 유식 불교 저술은 「유식결택담」, 「유식연구차제」 등 30여 종이 있다. 구양경무를 계승한 사람은 여징(呂澂, 1896-1989)인데, 그는 지나내학원 출신으로 수십 년간 불교 연구에 투신하고 내학원 원장, 교수의 임무를 맡았다. 유식 불교에 관한 『인명입정리론강해因明入正理論講解』, 『인명강요因明綱要』 등의 저술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안혜삼십유식석략초安慧三十唯識釋略抄』, 『광소연연논회석觀所緣緣論會釋』, 『집량론석략초集量論釋略抄』 등을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구양경무의 학통을 물려받아 유식 불교를 독존獨存으로 삼았고, 중국 불교에는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양수명(1942년 모습)

양은양

젊은 시절의 양계초

 

 

구양경무 문하에는 왕은양(王恩洋, 1897-1964), 황수인(黃樹因, 1898-1925), 황천화黃忏華 등이 있었다. 왕은양은 1929년 귀산서원歸山書院에서 불교와 유학을 배웠고, 1942년에 동방문교연구원에서 강학하였다. 유식 불교를 주로 연구하여 「유식통론唯識通論」, 「팔식규구송석론八識規矩頌釋論」, 「섭대승론소攝大乘論疏」, 「이십유식론소二十唯識論疏」, 「인명입정리론소因明入正理論疏」 등의 저술이 있다. 황천화는 『유식학윤곽唯識學輪廓』 등의 저서가 있다. 

 

 

젊은 시절의 한청정

 

‘남구’와 병칭되는 ‘북한北韓’은 북경에서 활동했던 한청정(韓淸淨, 1884-1949, 사진 7)을 가리킨다. 1921년 그와 주절황朱節煌, 서림옥徐森玉, 전풍황錢風璜, 한철무韓哲武 등은 법상연구회를 세우고 유식 불교를 연구하였고, 1927년 ‘삼시학회三時學會’로 개명하였다. 삼시학회에서는 『송장유진宋藏遺珍』 중에서 법상유식학 전적 47 종을 찾아서 교감, 간행하였다. 한청정은 특히 『유가사지론』을 수년간 연구하여 『유가사지론과구瑜伽師地論科句』, 『파심기披尋記』를 써서 착간의 잘못을 바로잡았고, 「유식삼십송전구唯識三十頌詮句」, 「유식지장唯識指掌」 등을 저술하였다. 한청정의 제자로는 주절황, 주숙가 등이 있는데, 주절황은 『법상사전法相辭典』을 편찬하였다. 

 


웅십력 

 

남매북하南梅北夏

 

그 외에도 매광희(梅光羲, 1880-1947)는 양문회에게 불교를 배웠고 불교 사업에 헌신하였다. 『상종강요相宗綱要』, 『상종사전략록相宗史傳略錄』, 『종경법상의절요宗鏡法相義節要』 등의 저서를 써서 명성을 얻었다. 북경의 하연거夏蓮居와 함께 ‘남매북하南梅北夏’라고 칭하여졌다. 당대원(唐大圓, 1885-1941)은 무창불학원에서 유식학을 강의하였고, 『해조음海潮音』, 『동방문화東方文化』를 편찬하였으며, 그가 출판한 『유식방편담』, 『유식역새』, 『유식 삼자경』, 『유식적 과학방법』 등의 소책자는 당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와 함께 무창불학원에서 연구한 장화성(張化聲)은 「촉지연구觸之硏究」, 「견색지연구見色之硏究」 등 유식불교 논문을 발표하였다. 

 


최근 완간된 웅십력 전집 

 

무창불학원의 또 한명의 저명한 교수인 사일여(史一如, 1876-1951)는 인명학에 정통하였고, 『불교윤리학』을 편찬하고 유식 불교를 전공하였다. 범고농(范古農, 1881-1951)은 상해불학서국에서 편집을 맡았던 유식학계의 중요한 인물로서, 1947년 상해에서 ‘법상학사 法相學社’를 세우고 『팔식규구송관주석八識規矩頌貫珠釋』, 『관소연연론관주석觀所緣緣論貫珠釋』 등을 편찬하였다. 장극성(張克誠, 1865-1922)은 『성유식론제요成唯識論提要』, 『백법명문론천설百法明門論淺說』, 『팔식규구송천설八識規矩頌淺說』 등을 써서 유식 불교를 널리 알렸다. 

 

유식학이 중국 근현대철학에 끼친 영향 

 

  그 외에 적지 않은 문사철 전공 학자들이 유식 불교를 연구하였다. 류주원(劉洙源, 1875-1952)는 성도에 소성불학사를 세우고 십여년간 강설하였는데, 저서 『유식학강요』에서 유식 이론을 서술하였다. 사무량(謝無量, 1884-1963)은 양문회 문하에서 불교를 연구하였고, 저술인 『불학대강』, 『윤리학정의』 중 유식학, 인명학에 대한 논술이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철학자 웅십력(熊十力, 1884-1968, 사진 8)은 구양경무에게 불교를 배우고 북경대학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는데, 저서 『불가명상통석佛家名相通釋』은 법상유식의 불교 입문서로서 당시 큰 영향을 미쳤다. 웅십력은 『신유식론新唯識論』, 『인명대소산주因明大疏刪注』, 『당대불학구파반대현장지암조唐代佛學舊派反對玄奘之暗潮』 등 유식학과 관련된 저서가 많다(사진 9). 그는 유식 불교와 유학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체계를 형성하였다. 태허, 거찬, 유정권 등 구양경무 제자들은 이를 비판하였고, 이에 대해 웅십력은 『파파신유식론破破新唯識論』을 지어 반박하였다. 웅십력에게도 당군의(唐君毅, 1909-1978), 모종삼(牟宗三, 1909-1995) 등 현대신유학 제자들이 있다. 

 


담사동

 

  양계초, 담사동, 장태염, 양도 등도 유식 불교에 관련된 저술을 남겼다. 양계초는 지나내학원에서 구양경무에게 불교를 공부하였고, ‘유심唯心’, ‘불교심리천측佛敎心理學淺測’ 등의 글에서 유식 불교를 해설하였다. 담사동(사진 10)의 『인학仁學』과 장태염의 『제물론석齊物論釋』은 유식 불교를 기본으로 각각 유학과 장자 사상을 통합한 저서이다. 개인적으로 담사동의 『인학』, 장태염의 『제물론석』, 그리고 웅십력의 『신유식론』이 중국 근현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저서라고 생각하는데, 이들 저서들이 모두 유식불교를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시기 유식 불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경향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의 연구 저작으로는 대만 오여균吳汝鈞의 『유식철학唯識哲學』, 양백의楊白衣의 『유식요의唯識要義』, 한정걸韓廷杰의 『유식학원리唯識學原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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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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