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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도]
다회, 일상과 비일상의 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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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  2020 년 9 월 [통권 제89호]  /     /  작성일20-09-21 10:22  /   조회8,52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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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부터 일본 다도에 대한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고 한편 조심스럽다. 반가운 이유는 일본 다도가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다도관을 가진 선문화로서 『고경』의 독자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겠다는 점이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일본 다도가 특히 조선의 찻사발과 관련해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연이 있어 필자는 20대에 일본 다도를 만났고 현재 일본 다도 사범으로서 또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부터 일본 다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일본 다도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먼저 그 모습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아 일본에서 가장 큰 유파流派 가운데 하나인 우라센케다도의 모습을 간략하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분들은 일본 다도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직접 체험한분들이라면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 등의 동영상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그 모습을 엿볼 수 있겠다. 단 여기서 말하는 일본 다도란 가루 녹차인 말차 중심의 다도를 의미한다. 찻잎을 우려 마시는 잎차 다도도 있지만 말차 다도가 주류의 위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 다도는 다회茶會라는 찻자리 양식을 통해 집약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고 하겠다. 다회란,주인이 손님을 초대하여 다실에서 소박한 식사와 차를 대접하는 다사茶事를 일컫는다. 이때 주인과 손님은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즉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의 찻자리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다.

 

다실, 다회를 위한 전용공간

 

주인이 일기일회의 다회를 열기 위해서는 손님을 모실 수 있는 전용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다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다실을 옛 선인들은 ‘초암다실’ ‘시중의 산거’라고 불렀고 요즘은 ‘비일상적 세계’ ‘청정무구한 별세계’라고도 한다. 일본 다실의 특징은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의 다실과 로지라는 다정茶庭을 함께 포함한다는 점이다. 

 

 

사진1. 로지

 

 

로지를 걷다

 

로지露地(사진1)는 다실로 이어진 길이라는 의미로, 손님은 로지를 걷는 동안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 다실로 들어가게 된다. 명상을 하듯이 마음을 집중하며 걷는 로지에는, 손님이 길을 헤매지 않고 다실을 찾아가도록 징검돌을 놓아둔다. 또 그 주변에는 푸른 식물을 심어 청정한 느낌을 주도록 한다. 특히 집중된 마음을 흩트리지 않도록 손님의 시선을 끄는 빛깔과 모양의 꽃과 같은 식물들은 심지 않는다.

 

츠쿠바이, 마음의 먼지를 씻다

 

로지를 따라 다실에 다다르면 다실입구 앞에 츠쿠바이蹲踞(사진2)라 불리는 석지石池 형태의 물그릇이 있다. 손님은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손과 입안을 깨끗이 헹구며 속세의 먼저를 씻어내도록 한다. 이와 같은 로지를 번뇌가 없이 진실함이 드러난 백로지白露地라고 하며 다실과 함께 청정무구의 정토세계淨土世界라고도 부른다. 

 


사진2. 츠쿠바이

 

다실과 니지리구치

 

실제로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의 찻자리가 이루어지는 곳을 좁은 의미의 다실이라고한다. 다실은 공간의 크기에 따라 세가지로 나뉜다. 선종의 방장方丈(一丈四方)에서 유래한 다다미 4장반 크기의 다실과 이를 기준으로 이보다 더 큰 다실을 히로마広間, 더 작은 다실을 고마小間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일본 다도의 초암 다실이라고 하면 작은 다실 고마를 의미한다. 

또 다실은 다음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선승의 묵적과 다화를 장식하는 공간인 도코노마床の間(사진3) 주인이 차를 내는 자리인 행다석点前座, 그리고 손님을 모시는 객석客席으로 이루어진다. 또 손님에게는 보여주지 않지만 주인이 다회의 전 과정을 준비하는 부엌인 미즈야水屋가 다실 옆에 딸려있게 된다.

 

 


사진3. 도코노마의묵적, 한閑 

 


사진4.니지리구치 

 

 

 

일본 다실의 출입문은 반드시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주인이 차를 내기 위해 드나드는 다도문茶道門이며 또 하나는 손님 전용의 니지리구치躙り口문(사진4)이다. 니지리구치문은 머리와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키 작은문이다. 이는 자기를 겸허히 낮추는 동시에 상대방을 높힌다는 의미를 가진다. 때로 문이 세 개인 경우는 차가 아닌 식사와 다과를 낼 때사용하는 급사문 給仕門이 있다. 급사문은 고마에서만 볼 수 있다. 

 

다실은 계절에 따라 크게 두 시즌으로 나뉜다. 같은 다실이지만 겨울 화로인 로炉(사진5)를 사용하면 로의 다실이 되고, 겨울 화로를 덮고 여름 화로인 후로風炉(사진6)를 사용하면 후로 다실로 변한다. 로는 다다미 아래로 사방 42센치 크기의 화덕을 파서 만든 다다미 화로를 말한다. 로가 있는 다실은 주로 한기가 느껴지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사용하는데 일본 다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다실이다. 이에 비해 여름 화로는 다다미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데 모양은 매우 다양하다. 화로와 차솥이 붙어 있는 것은 중국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는데 일본적 다도가 발달하자 화로와 차솥이 분리되고 차솥을 받치기 위해 삼발이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고토쿠五徳를 사용했다. 후로 다실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5월부터 10월까지 사용한다.  

 

 


사진5.로 

 


사진6. 후로 

 

 

 

다회의 흐름

 

다음으로 정식 다회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정식 다회는 정오에 열리는 다회를 말한다. 손님은 다섯 사람이 넘지 않도록 초대한다. 찻자리 흐름은 크게 전반석初座(2시간)과 후반석御座(1시간40분), 그 사이에 휴식仲立(20분)을 넣어 약 4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가벼운 다회는 차와 다과만을 준비하여 30분 내지 1시간 정도의 다회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정식 다회는 전반석에서 소박한 차음식을 즐기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후반석에서 두 종류의 말차, 즉 진한 농차와 연한 박차를 마시게 된다. 이때 사용되는 그릇과 기물들은 다회에 어울리도록 특별히 선별한 것으로 이를 감상하는 것은 손님들이 갖는 즐거움의 하나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다회에 사용되는 다도구는 사용하는 용用의 기능과 미美적 감상의 대상이되므로 다도구는 미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전반석, 차음식을 공양하다

 

전반석에서는 그날 다회 테마를 연상할 수 있는 선승의 묵적을 도코노마에 장식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전반석의 대부분은 소박한 차음식인 가이세키懐石를 즐기는데 소요된다. 가이세키는 원래 선승이 수행시의 공복을 잊기 위해 따뜻한 돌을 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로 공복을 가시게 할 정도의 소박한 음식이란 뜻이다. 다도에서는 쓴맛의 말차를 마시기 전에 공복이 되지 않도록 가이세키를 먹는다. 이와 같은 가이세키는 사찰음식의 공양법과 공통점을 가진다. 반드시 음식은 자신이 먹을 만큼만 담아 남기지 않으며 마지막에 숭늉과 단무지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서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점이다.

 

가이세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계절감을 살려 자연의 풍류를 즐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가이세키의 마지막에 나오는 다과에까지 계절을 담아 표현한다. 또 가이세키는 음식을 한꺼번에 내지 않고 만들어진 순서대로 한 가지씩 차례대로 대접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전반석에서 가이세키와 함께 꼭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은 화로에 숯불을 피워 찻물을 끓이는 일이다. 

 

휴식

 

전반석이 끝나면 손님은 로지로 나와 휴식을 취하며 후반석 안내를 기다린다. 이때 다실에서는 찻솥의 찻물이 끓기 시작한다. 찻물이 준비되면 은은한 징소리로 후반석 안내를 한다. 징소리의 울림이 완전히 사라지면 츠쿠바이에서 다시 손을 씻고 니지리구치를 거쳐 후반석 찻자리로 입실한다. 

 

후반석, 차를 마시다

 

후반석에는 도코노마의 다화茶畵가 손님을 반긴다. 전반석의 묵적이 다화로 바뀐 것이다. 또한 차솥에서 물끓는 소리가 마치 솔바람처럼 손님을 맞이한다. 후반석이야말로 차를 마시기 위한 의미의 찻자리인 것이다. 이때 마시는 차는 농차濃茶와 박차薄茶로, 이 두 종류의 차를 차례로 마시게 된다. 정식 다회에 초대를 받게 되면 반드시 먼저 농차를 마시게 되는데, 죽처럼 걸쭉한 농차는 한 다완에 담겨져 있고 손님들은 무언으로 농차를 돌려 마신다. 차를 나누어 마실 때 마음까지 서로 나누게 될 때 농차를 마시는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차는 거품을 낸 말차로 각각의 다완으로 마신다. 박차를 마시는 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다담을 나누며 찻자리를 마무리하게 된다. 

 

좋은 다회를 위한 주의점

 

마음에 남는 좋은 다회를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점이 있다. 첫째는 일기일회一期一会의 마음으로 지금 여기의 다회에 집중한다. 둘째 다회는 주인과 손님이 하나되는 자리인 일좌건립一座建立의 장이므로 서로 논쟁이 될 세상사의 화제는 피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종교, 남의재산과 가족, 정치, 전쟁담, 남의험담, 남녀에 관한 것 등이 그것이다. 덧붙여 집중에 방해가 되는 화려한 장식의 옷차림이나 진한 향수 등도 피하는 것이 좋다. 좋은 자리를 위해서는 오로지 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스스로 삼가며 한적을 즐기고 서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다도는 자기 수련과 수행의 과정

 

이와같은 4시간에 걸친 정식 다회는 준비하는 주인은 물론이며 초대받은 손님 역시 다도 수행의 경륜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손님으로서 다회의 흐름을 알아야하며, 로지와 다실의 사용법, 도코노마에 걸리는 선묵적禪墨跡에 대한 이해, 가이세키(사진7)와 차과자(사진8)를 공양하는 법, 농차와 박차를 마시는 법, 다도구를 다루는 법 등 손님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법을 배워야 한다.

 


사진7. 가이세키 

 


사진8. 가을 단풍을 담은 차과자 

 

 

다회를 주최하는 주인은 상기의 손님 예법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 가이세키와 차과자를 만드는 법, 농차와 박차의 행다법, 종이・칠기・도자기・나무・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도구에 대한 지식에서부터 다회 테마에 맞는 다실과 다도구의 조화로운 표현까지,이것들을 몸에 익히는 데는 짧지 않는 실로 오랜 수행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일본의 다도를 배운다는 것은 늘 자기 수련과 수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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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한일차문화연구자, 우라센케유파다도사범, 예술학 박사. 현재 일본에서 한일차문화교류연구회와 국제전통예술연구회 디렉터로 활동. 저서로 『소소의 철학(麁相の哲学)』(思文閣, 2019), 『소소-차의 이상적 모습을 찾아서(そそう―茶の理想的姿をもとめて)』(f.c.l Publish 2017) 등이 있다. 공저로 『茶室露地大事典』(淡交社, 2018)과 번역서로 『일본다도의 이론과 실기』( 월간다도, 2007)가 있다. 2014년 일본 타카라즈카대학에서 「예도 수행에 대하여-소소와 수파리를 중심으로(芸道の修行について―そそうと守破離を中心に)」라는 논문으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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