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세계]
화엄 7처9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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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10:25 / 조회7,900회 / 댓글0건본문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조성된 불화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나 대광명전大光明殿 등의 전각에 봉안되는 ‘비로자나후불탱’이다. 비로자나후불탱은 화엄경을 설법한 장소의 하나인 ‘보광명전普光明殿’(제2·7·8회)이나 ‘적멸도량寂滅道場’(제1회)’의 설법장면을 도설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불화에 있어 화엄사상과 관련한 탱화로는 ‘화엄7처9회탱’이 있다. ‘화엄7처9회탱’은 마치 경전을 읽는 것처럼 서술적이면서도 화엄사상의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도상의 경전적 근거는 『80화엄경』의 일곱 장소, 아홉 모임에서 설법되는 7처9회설이다.
사진1. 송광사 화엄탱
선재 동자는 문수 보살의 설법을 듣고 발심해 구법 여행에 나서는데, 문수 보살을 첫 선지식으로 하여 53선지식을 역참한다. ‘화엄7처9회탱’은 바로 이 7처9회의 설법회를 도상화 한 것이다. 7처9회 39품 80권으로 된 『80화엄경』은 초당(初唐, 618-704) 시기인 695-699년 실차난타가 한역했다. 이러한 화엄경변상도는 송대宋代 이후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조선후기 불화인 ‘화엄7처9회탱’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불화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 7처9회의 내용을 하나의 화면에 그린 탱화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1770)<사진 1>, 선암사 화엄경변상도(1780)<사진 2>, 쌍계사 화엄경변상도(1790), 통도사 화엄경변상도(1810)<사진 3>등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2. 선암사 팔상전 화엄탱
이 가운데 통도사 화엄경변상도는 금니흑탱金泥黑幁으로 그 이전에 조성된 세 변상도와는 약간 형식을 달리하여 포괄적인 의미의 신앙체계를 구현하고 있다. 화면구성에서 특히 상단 중앙에 노사나불, 하단 좌우에 준제관음과 천수관음이 모셔져 있고 제9회 지말법회가 하단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지말법회는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남순南巡하는 「입법계품」 내용인데, 이를 통해 조선후기에 성행한 화엄성중 신앙과 대칭적으로 표현한 53선지식 표현 방식을 통해서 선지식들을 존중한 한국불교의 전통을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이 ‘화엄7처9회탱’은 송광사, 선암사, 쌍계사, 통도사에 전하였지만 현재 송광사 ‘화엄7처9회탱’과 통도사 ‘화엄7처9회탱’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4점의 화엄7처9회도는 화면구성과 표현양식에 따라 두 가지 형식을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80화엄경』의 7처9회만을 표현한 것으로 송광사, 선암사, 쌍계사의 ‘화엄7처9회탱’이다. 이 세 점의 ‘화엄7처9회탱’은 노사나불 설법회說法會를 아홉 장면으로 재구성하였다. 둘째는 『화엄경』의 7처9회에 새로운 도상이 결합된 것으로 통도사 ‘화엄7처9회탱’이다. 송광사, 선암사, 쌍계사 화엄탱화 역시도 서로 유사하게 화면을 구성하고는 있지만 조성시기와 개인적 화풍에 따라 각각의 탱화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진3. 통도사 화엄변상흑탱
기본 구성은 5회의 지장설법회를 하단에 배치하고 상단에 5회의 천상설법회를 배치하는 7처9회로 구성된다. 여기에 수평 구조로 볼 때 공간적 비중은 크지 않지만 지상 설법회 아래에 연화장 세계가 기호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선암사 화엄탱화는 송광사 화엄탱화와 거의 같지만 쌍계사 화엄탱화는 각 회의 존상이 생략되면서 명칭을 통칭하여 적고 있다.
세존께서 7처9회에서 설법하시는 장면을 나타낸 장엄한 불화인 이 ‘화엄7처9회탱’은 전국적으로 많지 않은 탱화이고 송광사와 선암사 화엄탱화는 채색彩色 화엄탱화華嚴幁畵의 2대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불화에 등장하는 낱낱 존상의 옆에는 그 명칭을 기록하였는데 제1 보리장회의 제불보살과 제천왕, 팔부중, 천녀를 비롯한 주산신 등 104위 신중을 비롯하여 제9 서다림회의 시방제불과 보현 보살, 문수 보살, 그리고 선재 동자가 친견하여 삼매문을 증득하는 53선지식을 등장시키고 있다. 흑탱화로 완성된 화엄탱화는 유일무이한 수작이 통도사에 있으나 이곳에서는 채색으로 조성된 것이 다르다. 『화엄경』 7처9회 설법의 내용과 구성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화엄탱화에서 설법회는 설법회의 배경, 주존 노사나불, 제주 보살諸主菩薩, 시방제불, 제諸 보살, 화엄성중에 기록된 명문을 근거로 『화엄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제1회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전개되는 8회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제1회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전개되는 8회의 구성에 통일감을 주기 위해 노사나불 방광의 위치를 경전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지상설법회에서 노사나불의 방광은 신체 상단에서 나온다. 제1회에서 노사나불은 정수리와 양 눈에서, 양 옆의 노사나불은 발바닥에서 방광하며, 왼쪽의 제9회 노사나불은 양 눈에서 방광하고 있다. 실제로 7처9회의 표현과 39품의 내용이 완전히 부합하지 않지만 한 화면에 9개의 공간을 분배하여 합리적으로 구성하였다. 9회 중 품수가 적은 제4회‧제5회‧제6회‧제8회‧제9회 등은 몇 개의 품들을 생략하여 나타내고 있다. 설법회 가운데 경전의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제1회와 제9회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점의 화엄탱화는 9개의 설법장면을 화면 내에 동일하게 배치시키고 있지만 각 화사들 만의 독특한 존상 표현방식과 색채의 사용으로 서로 다른 화풍을 만들어 내었다.
사진4. 송광사 화엄탱 부분도
이와 함께 하단의 연화장세계는 「화장세계품」 1·2·3권에서 서술하는 비로자나불 정토로, 화엄탱화에는 푸른 물결 위에 대연화와 녹색대, 녹색대 안에 원들이 연결되는 모습들이 표현되었다. 푸른 물결과 대연화는 「화장세계품」 1권의 풍륜風輪 위의 보광마니장엄향수해普光摩尼莊嚴香水海에 떠있는 중중광명예향당重重光明橤香幢 대연화의 모습이다<사진 4>.
구성방식으로, 이 방식에 의해 세 점의 화엄탱화의 연화장세계가 완성된다. 송광사 화엄탱화의 「화장세계품」은 녹색대 안에 복잡하게 펼쳐진 세계종世界種의 관계를 기호화시켜 선으로 연결하는 데 비해 선암사 화엄탱화는 녹색대나 세계종을 연결하는 선이 생략되었으며, 쌍계사 화엄탱화는 좁아진 화면 때문인지 15개의 세계종이 생략되고 세계종의 배치도 순차적으로 전개하지 못하였다. 이는 화엄탱화에 비로자나불의 행원에 의해 이룩된 연화장세계를 하단에 배치하여 상단에 7처9회의 설법장면의 근거를 마련하고 세계종을 가로로 펼쳐 화면에 안정을 주려는 화사의 의도로 파악된다.
이상과 같이 조선불화에 있어 화엄사상과 관련한 세 점의 탱화와 함께 19세기 초에 조성된 통도사 화엄탱화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조성되어 현존하는 몇 점의 ‘화장찰해도’<사진 5>가 우리나라 화엄사상과 관련된 불화연구의 폭을 확대되도록 해주고 있다. 비록 관련 도상이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귀중한 문화적 사상적 자산임이 분명하다.
사진5. 내원사 화장찰해탱
이와 관련하여 돈황 막고굴에 남아 전하는 화엄7처9회도와 우리나라의 화엄7처9회탱의 차이점과 함께 관련성을 확인할 수도 있다는 점은 동북아시아 불화의 중요한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긴 시간적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도상 배치 형식이 돈황 막고굴에 전해오는 당‧오대에 조성된 6점의 ‘화엄경변상도’와 조선시대의 화엄7처9회탱은 도상배치 형식이 지상과 천상으로 연계되는 『화엄경』 설법내용에 따라 3단3열로 설법회 배치가 동일하면서 또한 9회의 각각 배열된 자리는 굴窟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점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모두 『80화엄경』 의 변상도이고 조선후기에 조성된 송광사, 선암사, 쌍계사 등의 ‘화엄7처9회탱’에 보이는 선재구법의 이야기도 다르게 묘사되어 있으나 그려지던 당시, 선재구법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은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화엄7처9회탱이 조선 후기에 불화형식으로 출현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 시기 화엄사상의 성행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화엄7처9회탱’은 동북아시아와의 관련과 신라 이래의 도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결정적인 요인은 조선 후기에 성행했던 화엄사상을 배경으로 새롭게 창출된 독자성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며 이는 교학과 문화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모색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원력이 그 바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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