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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손가락 사이]
어느 하나 향기로운 집 한 채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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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10:19  /   조회7,5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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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난 빈 밭고랑이 

쪼그리고 앉았다

빼앗을 건 다 빼앗아 

뿌리마저 뽑혀 말라비틀어진 

세상의 바닥, 

생애의 반은 잊혀지고, 

그 나머지 반은 허전하다

 

그런 곳으로도 새들은 

먹이 찾아 날아들고 

간혹 비닐도 날려 와 허리를 쭈욱 펴고 

너덜너덜 쉰다

땅의 한 구석엔 고요가 

국화꽃처럼 노랗게 피어 익어가고,

가을 벌떼 윙윙대며 꿀을 퍼 날라 

극락전을 짓는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냥 막 살아 온 것 같아도 

어느 하나 

향기로운 집 한 채가 아니랴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최재목
영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영남대 철학과 졸업,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 취득. 전공은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문화비교. 동경대, 하버드대,북경대, 라이덴대(네덜란드) 객원연구원 및 방문학자. 한국양명학회장 · 한국일본사상 사학회장 역임했다. 저서로 『노자』,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일본판, 대만판, 중국판, 한국판),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상상의 불교학』 등 30여 권이 있고, 논문으로 「원효와 왕양명」, 「릴케와 붓다」 등 200여 편이 있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6권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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