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현전 최초의 불교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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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1 년 1 월 [통권 제93호] / / 작성일21-01-13 15:51 / 조회6,061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잡지 산책 1 - 『조선불교월보』(1912.2-1913.8)
근대불교잡지는 1910년대부터 1945년까지 약 23종 420여 호가 발행됐다. 근대 전환기의 불교계는 교단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천도교 기독교 등 타 종교와의 경쟁에서 교세를 확장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과제와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불교계는 잡지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불교잡지는 타종교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종수와 분량에 있어 가장 많은 결과물을 산출하였다. 당시 불교잡지는 불교계의 변화를 거의 실시간으로 반영한 뉴 미디어였으며, 불교 지성들이 현실에 대한 자신의 논리와 학술적 성과를 공표하는 유일한 장場이었다.
잡지의 ‘雜’이 뜻하듯, 잡지에는 고도의 목적성이 담긴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전문학교 졸업 소식과 강원의 이력 정보, 청년으로서 겪는 고뇌와 문학적 감수성, 학우 간의 우정과 본산 주지와의 갈등, 선배 세대와의 긍정적인 교류와 정치적인 갈등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근대불교잡지는 종교 잡지이자 시사 잡지, 문화 잡지이며 여기에 학술성까지 포괄하는 종합교양지의 성격이 강하다.
사진1. 조선불교월보 표지사진(13호)
발행된 순서에 따라 개별 잡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다양한 문화적 성격을 일부나마 풀어내고자 한다.
발행 기관과 발행인
『조선불교월보』(사진 1)는 1912년 2월에 창간되어 1913년 8월, 19호로 종간되었다. 발행 기관은 조선불교월보사朝鮮佛敎月報社인데, 4호까지는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의 기관지로, 5호부터는 ‘조선선교양종 각본사 주지 회의원朝鮮禪敎兩宗各本寺住持會議院’의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은 권상로(權相老, 1879~1965)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잡지의 마지막 장에 있는 ‘판권장’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르다. 그는 1912년(34세) 1월 조선불교월보사 사장으로 취임하여 잡지 발간을 주도했지만, 그해 9월에 사임하고 낙향하여 김용사 경흥학교 교수, 김용사 감무직을 수행하였다.(1912.9-1916.7) 잡지의 판권란에는 19호까지 권상로가 발행인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실제로 그는 각황사에 있던 조선불교월보사에 상주하지 않았으며, 8호(1912.9)부터 실제적인 편집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8호부터 그 역할을 대신한 이는 백양사, 구암사 출신의 박한영, 선암사 출신의 최동식이다. 박한영이 본격적으로 『월보』에 투고를 시작한 시기와 권상로가 서울을 떠난 시기는 1912년 9월 경으로 정확히 일치한다.
이 시기 불교계의 가장 큰 이슈는 원종종무원의 대표 이회광이 조선 불교를 일본 조동종에 귀속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였다. 이에 대해 비판적이던 박한영, 진진응, 김종래, 한용운 등은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임제종지에서 찾는 임제종을 설립하여 이에 맞섰다. 양자의 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의 압력으로 조정국면을 맞이했는데, 1912년 7월에는 원종(이회광)과 임제종(박한영)의 갈등이 봉합되고 불교고등불교강숙을 설립하고 박한영을 강사로 위촉하기로 약조했다.(『월보』 7호의 「잡보」) 이러한 구도 변화에 따라 박한영은 교단의 전면에 등장하였고, 『조선불교월보』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보』의 편집 겸 발행인이 권상로에서 박한영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잡지의 주요 필진이 문경의 김용사, 대승사 중심에서 선암사(구암사, 백양사) 중심으로 이동하였다. 선암사 중심의 역사자료를 다수 수록한 최동식의 등장은 박한영이 등장하며 수반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이다.
[불교 대중화의 혁신적 면모]
한글로 여성을 호명하다
전반기 발행인인 권상로는, 1910~20년대에 국한하여 보면, 잡지라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여 근대불교의 기획을 주도한 문제적 인물이다. 『조선불교월보』에 최초로 한글로 여성의 역할을 당부하는 논설을 쓰고 「언문란」을 신설하여 여성독자의 글과 자신의 포교용 시가詩歌를 소개하였다.
사진2. 언문란의 한글 투고(3호)
「언문란」에 실린 논설은 다음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성독자나 일반 대중의 역할을 당부한 글, 불교의 교리를 평이하게 풀이한 글, 사회 현상의 변화, 불자의 정신적인 자세, 불교계의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은 글 등이다. 이상의 주제는 이후 발행되는 불교잡지에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이다. 다만 첫 번째 소개한 여성독자를 위한 사명감 고취는 『 조선불교월보』에서 가장 혁신적으로 지면을 배치했고, 이후의 잡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중한 성과다.
불교 대중화의 맥락에서 여성독자를 설정하거나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정신적인 자각과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하는 일련의 글에는 「신교하시는 부인계에 한 말슴으로 경고함」(춘수관녀사 쳔일쳥, 3호), 「불교는 보텬하 형뎨자매의 교」(권상로, 3호), 「불교와 여자」(권상로, 4호), 「우리 부텨님의 교가, 우리동포형졔, 자매의게, 관게가, 엇더함을, 한 번 의론홈」(묘길상 비구니, 12호) 등이 있다.
「신교하시는 부인계에 한 말슴으로 경고함」은 여성 최초의 투고 원고로서 여성계의 구습을 타파하고 의식의 혁명을 유도하는 글이다. 필자는 오랜 어둠 속에 고난의 삶을 살았던 여성계의 아픔을 제시한데 이어 ‘우리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평등으로 보시며’, ‘관세음보살 삼세 제 보살이 다 여성 대중’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독자들의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였다. 그러나 말미에는 ‘사구고事舅姑 양자손養子孫 봉제사奉祭祀에 태홀치 안니하라’는 덕목을 제시하여 종교의 의미를 봉건적인 ‘수신’의 차원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불교가 사회에 필요한 덕목으로 수신이라는 전통적인 규범을 제시한 것은 한계가 있다. 다만 이는 전근대와 근대적 사고가 혼종상태에 있던 당시에 적합한 현실적 담론으로 독자의 근기에 적합한 내용을 담아 변화를 유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권상로의 글은 불교가 출가자만의 특권이 아니라 대중이 마음발심을 하는 종교라는 점을 한글로 풀어 전달하였다.
대중적인 시가 양식을 수용하다
새로운 시대에 학교 교육에서 부르는 창가와 기독교의 찬송가가 교육과 포교에 월등한 효용성이 있음을 자각한 여타의 종교에서 다수의 창가를 제작하여 각 종교의 포교에 활용하였다. 이 시기 유행했던 시가 장르로는 창가 외에도 시조, 가사, 언문풍월 등이 있다. 『월보』가 간행되던 1910년대 초는 아직 본격적인 근대문학이 발현되기 전이라 근대시는 등장하지 않았고, 대중가요도 민요, 잡가 등 민속음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시대였다. 수준 있는 지식인은 여전히 한시를 창작하고 음영하는 것을 취미로 삼았고, 여가에는 정가, 시조창을 부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대중들은 민요, 잡가, 시조창과 함께 우리말 한 음절을 머리글자로 하여 시상을 이어가는 언문풍월을 적극 향유하였다. 『월보』에도 창가, 시조, 가사, 잡가, 언문풍월 등이 고루 등장한다. 이는 매우 적극적으로 유행하는 가요장르를 불교포교용으로 활용한 것이다. (본문과 작품 제목의 표기를 일부 수정함)
가갸, 거겨, 가고가고 가는광음光陰 거뉘라셔 붓들손가
고교, 구규, 고해중苦海中에 빠진중생衆生 구제救濟할일 급急하도다
나냐, 너녀, 나아가셰 나아가셰 너른길로 나아가세
노뇨, 누뉴, 노구담老瞿曇의 탄탄대도坦坦大道 누구인들 막을손가
(중략)
파퍄, 퍼펴, 파도심波濤甚한 저 업해業海를 퍼셔말일 서원誓願으로
포표, 푸퓨, 포승捕繩같은 애욕망愛慾網을 푸러버서 해탈解脫하면
하야, 허혀, 하하일소呵呵一笑 할터이니 허언虛言으로 듯지마오
호효, 후휴, 호사다마好事多魔 못하오면 후회後悔할날 불원不遠일셰(5호)
「언문가」(사진 3)는 언문풀이 형식이다. 언문풀이는 일종의 민요이자 잡가로 1910년대를 전후로 하여 대중적으로 확산된 새로운 양식이다. 이 작품은 『조선불교월보』를 나침반으로 삼기를 권장하고, 오랜 인습에 젖어 잠을 자는 청년들에게 잠을 깨어 우리 불교를 다시 닦자는 내용을 담고 있어 문학적 참신성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계몽의 시대에 대중적 불교가요를 새로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언문풀이 양식을 활용함으로써 불교계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가갸 거겨’라는 동일한 음성이 반복되는 일종의 라임에 다양한 가사를 붙여 변주하는 「언문가」는 당시의 포교 가요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근대 의례의 정립을 모색하다
『월보』에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석탄일, 성도일, 열반일 행사의 절차와 성황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 시대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의식 절차의 하나로 찬가讚歌나 창가唱歌를 불렀다는 기록이 빠지지 않았다. 포교당의 건축이나 행사시에 창가는 필수적인 절차의 하나로 각인되는 상황도 「잡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5호의 「잡보」에는 ‘범어사 주최 경성 포교당 건축(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 개교식 거행)의 식순’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진3. 한시와 한글 시가(5호)
1.개회 2.귀의삼보 3.창가唱歌(사립호동학교학생) 4.주악奏樂(고아원음악) 5.취지설명(한용운) 6.입정入定 3분간 7.설교(백용성) 8.찬연 9.축사 9.주악 10.창가(상동) 11.불교만세 12.폐회 13.진다과進茶菓
이러한 식순은 『월보』의 1~6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이 시기 매우 새롭고 이목을 끄는 행사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행사에 소개된 창가 역시 불교계의 의식에 새로 유입된 절차로 주목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7호 이후에는 더 이상 자세한 의식절차의 소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이러한 행사 식순이 일반적 경향으로 자리 잡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1913년에 이르면 기존의 의식에 환등회幻燈會라는 포교 방식이 등장하여 주목된다. 경성의 각황사(중앙포교당)에서 연행된 열반일(15호)과 성탄절(17호)이 성대하게 진행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에 ‘여래 팔상 환등’, ‘여래응화사적 환등회’가 열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장관 기관’을 이루었음을 보고하였다. 석가여래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눈 슬라이드를 제작하여 보여주면서 연사가 각 장면에 대한 설명을 부가하는 상황이 그려지는데, 당시로서는 대중들의 호기심과 탄성을 자아내는 전무후무한 광경을 연출한 것을 보고하였다.
“경성 조선불교중앙포교당에셔는 열반일에 성대한 기념식을 주야 2회에 설행設行하며 야회夜會에 여래팔상如來八相 환등幻燈이 유有함으로 인산인해를 성成야 비상한 성황을 정呈하얏는데 그 순서는 여좌如左하더라.」 (15호, 「잡화포」)
『조선불교월보』의 불교행사 소식란에는 당시 새로운 문화로 등장하는 포교 가요(창가)가 널리 확산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고, 1913년에는 일종의 슬라이드인 환등회가 서울 각황사에서 열려 당시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내었음을 잘 보여준다. 불교의 혁신과 대중화는 대중들이 향유하는 가요 양식과 대중의 긍정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체의 혁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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