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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불교와 유교의 방법론적 유사성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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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1 년 1 월 [통권 제93호]  /     /  작성일21-01-15 10:28  /   조회5,8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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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1 - 웅십력

 

 

불교와 유교, 방법론적 유사성

 

중국 근대시기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한 마음에 열린 두 개의 문) 사상과 웅십력 철학의 ‘체용불이體用不二’로 요약되는 두 사상 사이의 본체론의 유사성이 현대신유학, 또는 현대신불교가 등장하게 되는 필연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지난 호에서 다루었다. 이 두 사상 사이의 본체론의 유사성은 방법적인 측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웅십력 철학 방법론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본성의 지인 ‘성지性智’와 과학적 지인 ‘양지量智’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지와 양지, 또는 ‘본심本心’과 ‘습심習心’의 구분은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 사상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한 마음에 두 개의 문이 열렸지만, 이 두 문 중에 주도자가 있을 뿐 아니라 다른 하나의 부정을 통해 나머지 다른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심개이문’이란 본체와 현상이라는 두 세계를 찢어서 완전히 분리하거나 두 세계의 인식을 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측면, 이중 세계와 이중 인식은 도덕 실천을 통하여 함께 융합되고 통일되어 나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대신유학의 사고방식이다. 

 

‘불이不二’ 형식

 

이 둘이 아니라는(‘불이不二’) 형식은 웅십력 철학 전반에 그대로 활용된다. 웅십력 철학에서는 본체가 현상과 이분되지 않고 현상으로 현현하므로, 본체와 현상은 둘이 아니게 된다(체용불이體用不二). 본체는 도道라고도 하고 현상은 물질 우주를 가리키므로, 도와 물질 세계도 둘이 아니다(도기불이道器不二). 인간 자신의 근원과 우주의 본원이 둘이 아니므로, 진정한 자신과 우주 본체는 하나를 이룬다(천인불이天人不二). 이것은 커다란 바닷물과 그 바다의 파도가 둘이 아닌 것과 같다. 본체는 두 방향으로 유행하여 나타나므로, 그렇게 나타난 인간의 마음과 사물도 둘이 아니다(심물불이心物不二). 본체라는 근원에서 볼 때는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욕망도 둘이 아니며(리욕불이理欲不二), 본체가 유행하는 신비한 변화는 움직임 속에 고요함을, 고요함 속에 움직임을 담고 있으므로 움직임과 고요함도 둘이 아니다(동정불이動靜不二). 본체를 아는 지식과 그에 근거한 행동도 둘이 아니고(지행불이知行不二), 지혜와 지식도 둘이 아니다.(덕혜지식불이德慧知識不二) 그리하여 자신을 완성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도 서로 다르지 않은 한 가지 일이다.(성기성물불이成己成物不二) 이것은 상반상성을 통하여 일원론의 유기체로 귀결되는 방법인데, 이 또한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 형식의 방법론적 활용이라고 할 만하다. 

 

천태종의 십불이문十不二門

 

그런데 웅십력의 ‘불이不二’ 이론의 골격은 실제로 전통 불교에서 온 것이다. 예컨대 천태종의 ‘십불이문(十不二門, 12개의 문)’은 지의가 시작해서 담연이 완성하였다. 담연의 『법화현의석참』에서는 지의의 『묘법연화경현의』에 나오는 ‘십묘(十妙)’를 해석하여 십묘의 법상을 색심(色心), 내외(內外), 수성(修性), 인과(因果), 염정(染淨), 의정(依正), 자타(自他), 삼업(三業), 권실(權實)로 통섭하였다. 그리고 매 하나의 문마다 모두 일념삼천, 삼제원융의 이치를 적용하여 ‘둘이 아니며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무이무애無二無碍)고 하였고, 그것들을 ‘십불이문’이라고 불렀다. 이 중 색심불이色心不二는 우주 일체가 모두 범부의 일념 속에 통섭되므로 심 외에 법이 없고, 하나의 티끌 속에 우주 일체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색법과 심법이 둘이 아니고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내외불이內外不二 역시 지혜가 관조하는 대상은 내외의 구분이 있더라도 일념삼천, 삼제원융의 이치에 의거하면 본질상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수성불이修性不二는 일념의 본성의 덕은 본래 일체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지혜의 힘을 빌어 후천적인 실천 수행으로 비로소 나타나므로, 본성과 수양의 관계는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천태종의 ‘불이’ 구조나 웅십력의 ‘불이’ 구조 모두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의 형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본체와 현상 두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둘이 아니라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지혜, 성지性智와 양지量智

 

웅십력의 ‘본심’과 ‘습심’, ‘성지’와 ‘양지’, ‘형이상학 진리’와 ‘과학 진리’의 이분은 결국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모두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 사상의 활용인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사실은 송명 유학에서 ‘덕성지지德性之知(덕성의 지혜)’와 ‘견문지지見聞之知(보고 들어서 아는 경험적 지식)’의 이분을 계승한 것이다. 그러나 둘로 나누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러한 특징에 따르면 한 마음이 두 부분(이문二門)으로 나뉘더라도, 두 부분 중에는 주도자가 있을 뿐 아니라 이 한 마음은 한 부분의 굴곡과 변화 과정을 거쳐 다른 부분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두 부분은 하나의 두 측면일 뿐이므로,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논리 구조를 띠게 된다. 

 


웅십력 지음 원유, 상해고적출판사, 2019. 

 

일심에서 이문으로 나아가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무루청정법은 직접적 방식이고, 유루잡염법은 간접적 방식이다. 불교의 근본지根本智, 송명유학의 덕성지지, 웅십력의 성지는 직접적 방식이고, 불교의 후득지後得知, 송명유학의 견문지지, 웅십력의 양지는 간접적 방식이다. 웅십력은 불교의 근본지, 후득지 개념을 끌어들여 인간에게 이 두 종류의 지혜가 있다고 보았다. 근본지는 진여에 연하는 것이고, 후득지는 사물에 연하는 것이다. 근본지는 본체를 깨닫는 지혜이고, 근본지가 일어난 뒤에야 후득지가 일어나 일체의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사려하게 된다. 웅십력의 성지와 양지의 구분은 바로 이러한 이론에서 왔다. 『대승기신론』에서 생멸문은 현상계이고 생사유전하는 현상이다. 진여문은 청정법계이고 본체계이다. 두 문은 또한 두 가지 인식 경로를 가리킨다. 하나는 간접적 경로로, 우리의 진심이 본래 청정하지만 현실계에서는 단지 한 순간 생각의 차이만 있어도 무명에 떨어지고 오염된다. 이를 부정해야 비로소 도덕 본성에 오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직접적 경로로서, 반야般若의 지혜가 있으면 바로 본성양지本性良知, 또는 자성청정심이 나타난다. 『대승기신론』에서 긍정하는 ‘여래장 자성청정심’과 맹자의 ‘본심’, 양명의 ‘양지良知’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중국 전통철학은 인간에게 반야지가 있고 자성청정심이 있음을 긍정하고, 현상과 물 자체(自在之物)을 나누는 것을 부정한다. 현상이 바로 자재지물이고, 본체가 바로 현상, 즉 체가 바로 용이기(체용불이)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은 현상계와 본체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인식틀이다. 웅십력은 『대승기신론』의 이러한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여 성지와 양지 개념을 설정하고, 자신의 체용불이 철학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임현규 등 옮김, 원유, 세창출판사, 2020. 

 

 

서양 제국주의 비판과 현실 긍정

 

실제로 웅십력의 신유식론은 『대승기신론』에 근거한 진상심 사상에 가깝다. 당시 태허太虛는 웅십력의 신유식론이 진여종眞如宗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고, 인순印順도 웅십력 사상이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에 가깝다고 판단하였다. 여징은 “웅십력 그대의 논의는 완전히 ‘성각性覺’에서 나온 학설로, 중국의 모든 위경僞經, 위론僞論과 한 콧구멍에서 나온 숨이다.”라고 하여, 웅십력의 신유식론이 중국의 위서와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웅십력은 “성각을 위론이라고 구분한다면, 위론도 존중받을 만하다.”고 하며 『대승기신론』을 폄하하는 견해에 반대한다. 웅십력 철학의 핵심은 도덕적 주체성의 확립을 위한 현실성의 긍정이다. 그를 위해 웅십력은 초현실적인 성향의 유식 불교를 비판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묘유妙有’) 현실 긍정의 중국 불교를 수용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을 싫어하여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인도 불교의 해탈이었다면, 이 세상에서의 번뇌가 그대로 해탈의 모습(‘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이라는 현실 긍정의 종교가 『대승기신론』으로 대표되는 중국 불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웅십력의 체용불이 철학이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 사상을 수용하여 형성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웅십력은 ‘체용불이’ 사상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가 본체 그 자체가 나타난 것이라고 봄으로써, 이 현실 세계를 무가치하거나 덜 중요한 것으로 보고 평가절하하는 모든 사고 방식을 부정한다. 이 현실 세계 외에 피안의 또다른 세계는 없으며, 따라서 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도덕적 행위는 최대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결국 체용불이 사상은 현실 긍정의 표현이자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중국 전통철학의 대응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물질 문명이 동양을 침범한다고 해도 동양의 바탕은 성선론을 통한 현실 긍정에 있으며, 동양은 결국 도덕의 측면에서 서양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현대 신유학의 이러한 의도가 유식 불교를 부정하고 중국근대에서 『대승기신론』을 중시하던 학자들과 같은 방향에 서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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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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