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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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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1 년 3 월 [통권 제95호]  /     /  작성일21-03-05 09:41  /   조회6,09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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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과 천체의 운동  

 

 코로나 백신은 항체가 형성되는 비율이 90%만 넘으면 우수한 것으로 평가한다. 항체 형성 비율이 그보다 낮은 제품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 항체가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항체가 형성되는 기전을 알기 때문에 백신을 만들었지만,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가보다. 일반적으로 약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체질 때문에 그렇다는 인과관계를 회피하는 모호한 진단을 듣게 된다. 약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확률이 등장한다.

 

 

 

 확률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의학이나 약학과 대비되는 영역이 천체의 운동이다. 백신을 맞고 3일 후에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를 예측하지는 못하지만, 300년 후의 3월 1일에 태양이 언제 떠오르고 지는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300년이 아니라 3만 년 후라도 가능하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차이가 생기는가?

 

 만유인력에 의한 천체의 형성과 우주공간

 

 만유인력에 의해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지구가 우리를 잡아당기기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이 힘들고 내려오는 건 쉽다. 지구가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물 컵을 책상 위에 놓을 수도 있고, 그 컵에 물을 따를 수도 있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물체를 지구가 잡아당기는 순간에는 유성우를 보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천체가 형성되는 것도 우주 공간이 진공인 것도 모두 만유인력 때문이다.

 

 우주에 널려 있던 물체들이 만유인력에 의해 뭉쳐진 것이 천체다. 천체의 덩치가 커지면서 내부 압력과 온도가 높아지면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시작되고, 스스로 빛과 열을 발산하는 별이 된다. 덩치가 작으면 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이나 혜성이 되기도 하고 행성 주위를 공전하는 위성이 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덩치를 갖는 천체는 주변의 물체를 끌어당기므로 우주 공간은 거의 완벽한 진공이 됐다. 인공적으로 만드는 진공보다 수천만 배 적은 압력의 진공이다.

 

 천체의 운행에 대한 예측과 설명 

 

 우주 공간에 극미량의 성간물질이 존재하지만 그 정도로는 천체의 운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천체의 운행 궤도를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은 상당히 큰 다른 천체와의 충돌이다. 그러나 우주 공간에서 천체가 차지하는 부피는 지구에 있는 모래 전체에서 모래 한 알이 차지하는 부피 정도에 비견된다. 그 마저도 천체 모두가 자신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므로 서로 부딪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은하가 형성되는 불안정한 시기가 지나면, 천체의 운행궤도는 수십억 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그런 안정된 은하에 살고 있다.

 

 천체의 운동이 규칙적이라는 사실은 근대 과학 이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규칙적인 운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천문학도 왜 그런 운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다. 태양중심설은 인류의 세계관을 근원적으로 바꾼 위대한 도약이었지만, 천체 운행의 원인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를 위해서는 뉴턴을 기다려야 했다.

 

 천체의 운동을 완벽하게 설명한 뉴턴 역학 

 

 동력학에 관한 세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이뤄진 뉴턴역학은 태양계 행성의 운동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미분과 적분을 만들어낸 뉴턴은 적분을 통해서 지구와 달을 하나의 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뉴턴역학은 행성의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작용하는 만유인력으로 어떻게 원 궤도가 가능한지를 보여줬다. 태양의 만유인력에 의해 행성이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혜성이 태양에 가까워졌을 때 속도가 빨라지고 멀어졌을 때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설명했다. 행성의 궤도 반경과 공전 주기 사이의 관계도 인상적으로 설명했다.

 

 무엇보다 극적인 사건은 해왕성의 발견이었다. 천왕성의 궤도는 뉴턴역학이 예측하는 타원 궤도가 아니라 흔들리는 궤도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뉴턴역학이 천왕성의 운행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뉴턴을 믿었던 과학자들은 이 가능성을 배제했다. 다른 하나는 뉴턴역학은 맞지만 천왕성의 궤도를 흔드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관측 자료를 근거로 뉴턴역학을 이용해 계산했고, 그 결과가 가리키는 위치에서 해왕성을 찾아냈다. 뉴턴역학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지상의 현상에 대한 설명 

 

 그 당시의 사람들이 물리학에는 설명할 게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뉴턴역학은 성공적이었다. 지상의 물리현상 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밀물과 썰물에 대한 설명이다. 밀물이 달의 인력에 의한 것이라면, 달이 하루에 한 번 뜨고 지므로 밀물과 썰물도 하루에 한 번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대략 두 번씩 일어난다. 아주 간단히 말한다면, 달이 바닷물만 끄는 게 아니라 지구도 끌기 때문이다. 뉴턴역학은 이것도 아주 명확하게 설명했다.

 

 밀물과 썰물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는 해와 달의 인력에 의한 것이다. 천체와 관련 없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면, 상황이 아주 복잡해진다. 지상에서는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동력학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을 살펴보자. 이는 뉴턴역학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보다 간단한 예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쉽지 않다. 왜 그런가?

 

 관성의 법칙 

 

 엔진을 켜야 자동차가 가고, 책상 위의 컵을 밀어야 컵이 움직인다. 엔진을 끄거나 컵에서 손을 떼면 정지한다. 이처럼 힘을 가해야 물체가 움직이고 힘을 가하지 않으면 정지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다. 이와 달리 관성의 법칙은 힘을 가하지 않아야 물체의 속도가 일정하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과 상반된다. 갈릴레이가 행했던 관성에 관한 정교한 실험과 논리는 경험과 상반되는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 어려움 때문에 그리스 이후 2천 년 이상 관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찰력은 관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소다. 엔진이 만들어내는 힘이 마찰력에 의해 정확하게 상쇄될 때, 자동차는 일정한 속도를 낸다.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힘의 크기가 같으면 두 힘은 서로 상쇄된다. 그 결과 자동차에는 힘이 작용하지 않게 되고, 자동차의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관성의 법칙이다.

 

 복잡한 세계 

 

 화성이나 금성의 궤도 운동은 거의 전적으로 태양의 인력 하나로 결정된다. 천상에서는 이처럼 하나의 힘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지상에서는 여러 힘이 작용한다. 이 때문에 근대물리학의 가장 간단한 관성의 법칙조차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뉴턴역학이 예측하는 대로 현상이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아주 많다. 가벼운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라. 날아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영역을 벗어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경제학이나 정치학처럼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기라도 하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정확한 예측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생물학 내지는 생명공학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생명체는 태양계보다 복잡한 것이어서, 백신의 작동 기전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신할 수는 없다.

 

 잘 드러나지 않는 진리 

 

 우주 공간에서는 천체의 운동을 방해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천체의 운행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든 것이 서로 얽혀있는 지상이다. 그러나 관성의 법칙을 통해 살펴봤듯이, 뉴턴역학이 틀렸다거나 지상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 맞고 다 적용되지만,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만, 보이는 것이 그대로 진실은 아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세계의 진실은 파악되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세계는 자신의 변치 않는 본질essence인 자성自性을 지닌 존재자로 구성돼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건 진공 속을 고독하게 떠돌아다니는 천체의 세계에나 어울리는 세계관이다(물론, 이마저도 무상無常하다). 우리는 존재 이전에 본질이나 이데아가 상정되는 플라톤의 세계에 사는 게 아니다. 우리의 세계는 어떤 것도 그 스스로 존재하지 못 하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무자성無自性의 연기緣起의 세계다. 그러나 진리는 너무나 많은 것에 가려져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어서, 부처님 이전에는 누구도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꽃 피고 새 우는 空의 세계 

 

 의상스님은 법성게法性揭에서 “참된 성품은 아주 깊고 지극히 미묘하니, 자성自性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루어진다[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고 하셨다. 만일 우리의 세계가 자성만을 고집하는 존재자로 꽉 차 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따분할 것인가?

 

 관성의 법칙이 성립하지만, 컵을 밀어야 움직인다. 컵을 밀어야 움직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관성의 법칙이 성립한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무자성無自性의 연기공緣起空의 세계에서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귄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바로 그 자리가 공空이다. 구름이 흘러가고 별이 빛나는 것은 이곳이 바로 연기緣起하는 공空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무비 스님이 강설하신 화엄의 4조 청량징관 스님의 「왕복서」 한 구절로 글을 맺는다.

 

雖空空絶跡        비록 공하고 공하여 자취가 끊어졌으나

而義天之星象燦然  이치의 하늘에는 온갖 별이 찬연히 빛난다.

 

 


경남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산 352-4. 1월19일 오후 5시47분-7시13분 촬영. 고심정사 석문숙 불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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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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