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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라집, 승조, 도생 조사선 성립에 지대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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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1 년 2 월 [통권 제94호]  /     /  작성일21-02-05 11:45  /   조회10,86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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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선 이야기 2 | 불성佛性과 돈오頓悟

 

 

중국불교의 흐름은 위진魏晋시기를 거치며 초기의 선수학禪數學으로부터 점차 대승의 반야학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동한으로부터 조위曹魏를 거쳐 서진西晋에 이르는 왕조의 명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동한의 황실에서 통치이념을 수립하고자 적극적으로 역경譯經을 통하여 불교를 민중에 이식하고자 하였으나 황로도黃老道로부터 출현한 초기 도교의 반란에 의하여 멸망하고 위魏・촉蜀・오吳의 삼국으로 분열되었다.  

 

그 가운데 중원中原지역을 차지한 조위曹魏는 새로운 통치이념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조위의 입장에서는 양한兩漢에서 통치이념으로 설정한 도가와 유가의 사상을 다시 채택할 수는 없었고, 지역적으로 양한의 핵심세력들이 운집한 중원에서는 불교를 채택하기에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따라 조위에서 채택한 것은 바로 유가의 강상명교綱常名敎와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유有’의 세계를 추구하는 유가와 ‘무無’를 추구하는 도가의 사상을 결합시키는 것은 중국의 전통사상으로는 명확한 한계를 보였는데, 이를 가장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상이 바로 반야般若의 논리였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에서는 물질의 변화와 정신의 관계성을 세밀하게 분석, 즉 ‘석공析空’하면서 점차적인 교의敎義를 시설하는데, 그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생멸生滅’로 보는 현상을 ‘유무有無’로 전환시킨다. 그러나 ‘반야법’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유무’조차도 집착에 의한 ‘상相’으로 파악하여 ‘소상파집掃相破執’의 입장에서 이른바 ‘유무쌍견有無雙遣’, ‘진속무이眞俗無二’의 논리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중생즉불衆生卽佛’,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하는 진리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는 철저하게 ‘즉卽’의 관계, 호상관대互相觀待라는 논리적 단안을 제시한다. 이러한 반야의 논리과정은 역으로 ‘유’와 ‘무’를 모두 버리지 않으면서도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를 창출할 여지가 존재하는데, 이를 교묘하게 활용한 천재가 바로 왕필王弼이며, 그를 본격적으로 논구한 것이 바로 ‘현학玄學’이다.

 

현학은 바로 유가의 강상명교와 도가의 무위자연, 즉 철학적인 입장에서의 ‘유’와 ‘무’를 지양止揚하여 이른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완벽한 통치이념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왕필의 ‘귀무론貴無論’,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나타난 배위裴頠의 ‘숭유론崇有論’, 이 ‘무’를 귀하게 여김과 ‘유’를 숭상해야 한다는 두 가지 논리를 지양하여 나타난 곽상郭象의 ‘즉유즉무卽有卽無’를 통한 ‘독화론獨化論’을 통관하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러나 조위는 사마의司馬懿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 세력들의 쿠데타인 ‘고평릉高平陵 사변(249)’으로 인하여 실권을 빼앗기고, 265년에 망하게 되어 서진西晋이 시작되었다. 서진은 역사가들이 ‘군마시살도群魔弑殺圖’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이 50여년의 짧은 역사 동안 수십 차례의 내란과 북방 소수민족들의 침입을 겪었고, 결국 ‘영가永嘉의 난(307-312)’을 통해 북방을 잃고 남하하여 건강(建康. 현 南京)을 도읍으로 동진東晋을 세웠으며, 북방에는 다섯 소수민족[五胡: 匈奴・羯・鮮卑・氐・羌]이 16국을 건립하여 이 시기를 ‘동진십육국’이라 칭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암흑기에 중국 민중들 대다수가 불교를 신앙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조위시기에 중국인들의 출가를 허용한 이후 서진시기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출가하였고, 또한 끊임없는 전란의 상황에서 불교가 제공하는 피안彼岸의 세계에서 안심安心을 찾고자 하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시대사조時代思潮는 여전히 현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경향에 따라 중국불교의 흐름은 바로 대승 반야학이 주도하였다고 하겠다. 특히 주사행朱士行은 당시 유일한 반야부 경전인 『도행반야경』과 그에 대한 재역본인 『대명도무극경』에 미진함이 있다고 생각하여 원본을 구하러 서역으로 구법행을 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서진시기에 축법호竺法護, 축숙란竺叔蘭, 지민도支愍度 등 수많은 역경승들이 중국에 도래하여 반야부 경전들을 역출하였는데, 이들이 채택한 번역의 방법론을 바로 ‘격의格義’라고 칭한다. ‘격의’란 바로 중국의 유사한 사상과 배대하여 난해한 반야의 논리를 쉽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격의는 바로 당시 시대사조인 현학을 원용한 것이고, 불교의 역경뿐만 아니라 강설, 찬술 등의 전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이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격의불교’라고 칭한다.  

 

 동진십육국 시기에 들어서 중국불교에는 사상적으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구마라집鳩摩羅什이다. 구마라집이 수행한 중국불교에 대한 공헌은 몇 권의 책으로 설명해도 모자랄 정도이지만, 가장 중요한 공헌은 바로 반야학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제법의 시설施設에는 반드시 성립근거를 제시한다. 예컨대 십이처十二處와 삼법인三法印을 통한 업설業說에는 ‘삼세인과三世因果’를, 육육법六六法에 있어서는 ‘십팔계十八界’, 오온五蘊은 ‘육계六界’, 십이연기十二緣起는 진리의 세계인 ‘명明’을 그 성립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반야’는 바로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인 ‘명’조차도 스스로 존재[自在]할 수 있는 자성自性이 비어있음[空]을 여실하게 ‘앎’이라는 개념이며, 그러한 반야도 역시 자성이 비어있다는 ‘반야개공般若皆空’을 변증법적으로 전개해 나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반야법은 역시 성립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어떠한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를 제시한다면 제법에 자성이 없다는 반야의 개념과 자체모순이 발생한다. 그 때문에 제법의 성립근거를 ‘유有⋅무無⋅역유역무亦有亦無⋅비유비무非有非無’의 ‘사구四句’로 ‘무한부정[百非]’, 즉 ‘사구백비四句百非’로 진행시켜 반야법의 성립근거는 인간이 가진 논리형식으로는 결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자체가 다만 ‘희론戱論’일 뿐이므로 ‘지식止息’해야 하고, 반야법은 ‘부사의不思議’하게 성립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구마라집

 

그런데 구마라집은 서역의 반야학과는 다르게 반야법의 성립근거로서 ‘실상實相’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반야의 대표적인 논리가 ‘소상파집’인데, 궁극적인 진리를 ‘실상’으로 제시한다면 역시 모순이 발생하지만, 구마라집은 이를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논리로 해결하고 있다. 이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승조僧肇의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에 실린 구마라집의 주석을 살펴보면 도처에 ‘실상’과 관련된 논술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구마라집 『실상론實相論』 2권을 지어 후진後秦의 군주인 요흥姚興에게 헌상하였다는 기록(주1)이 있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 

 

구마라집의 ‘실상무상’은 서역의 ‘희론의 지식’과는 다르게 묘한 사상적 탄력성을 지닌다. 더욱이 이러한 ‘실상론’에 입각하면 앞에서 언급한 ‘사구백비’는 수정될 여지가 있으며, 실제로 구마라집이 번역한 용수龍樹의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 제바提婆의 『백론百論』을 바탕으로 설립된 삼론종에서는 ‘이사구離四句, 절백비絶百非’를 제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주2) 이러한 반야학의 실상론은 이후 중국불교의 사상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구마라집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중국불교의 흐름에 중요한 사상적 제시를 한 이들이 바로 승조僧肇와 도생道生이다. 승조는 흔히 스승인 구마라집과 함께 ‘중국 반야학의 비조鼻祖’라고 평가한다. 승조의 여러 작품 가운데 『조론肇論』에는 특이한 서술방식이 눈에 띠는데, 그것은 길지 않은 『조론』 가운데 97개 구절이 『노자』 혹은 『장자』와 일치하거나 그로부터 인용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서술은 바로 당시 시대사조였던 현학을 겨냥한 것이고, 직접적으로는 현학의 사유를 차용한 ‘격의불교’의 오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부진공론不眞空論』에서는 대표적인 격의불교의 ‘본무종本無宗⋅심무종心無宗⋅즉색종卽色宗’에 대한 오류를 비판하고 있으며,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논증하는데, 이는 또한 곽상의 ‘즉유즉무’를 ‘실상무상’의 입장에서 한 차원 높게 논증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승조의 노력으로 ‘격의불교’는 점차 종식되었으며, 중국에서 본격적인 반야학이 전개되었다고 하겠다. 

 

한편 도생은 어려서 축법태竺法汰를 만나 출가하여 15세부터 강설하여 강남에서 유명한 명사가 되었는데, 여산廬山 혜원慧遠의 문하에서 가제바伽提婆로부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의를 몇 년간 수학하였다. 당시 구마라집이 장안長安에 도착하자 혜원은 18차례에 걸쳐 서신을 보내 법을 물었고, 구마라집은 상세히 회답하여 문답을 주고받게 되었고(『大正藏』45, 『鳩摩羅什法師大義』 3卷 所收), 그에 따라 도생은 혜원의 문도인 혜예慧睿, 혜관慧觀, 혜엄慧嚴 등과 함께 가서 ‘중관반야학’을 수학하였는데, “관중關中의 승려들이 모두 ‘신오神悟’라고 칭하였다.”(주3)라고 하여 구마라집 문하의 중요한 제자가 되었다.

 

도생의 중요한 업적은 바로 중국불교의 ‘불성론’을 본격적으로 제창했다는 점에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이라는 개념이 바로 도생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도생은 “무아無我는 본래 생사生死 가운데 ‘아我’가 없음이요, 불성佛性이 있지 않음이 아니다.”(주4)라고 하고, “부처는 일극一極이 됨이니, 일一을 드러내어 나타난 것이다. ‘리理’에는 진실로 ‘삼’이 있으니, 성인聖人 또한 ‘삼’을 삼아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리’ 가운데 ‘삼’이 없고, 오직 미묘한 ‘일’일 뿐이다.”(주5)라고 논한다. 이로부터 도생은 ‘불성아佛性我’(주6)를 제창하고 있다. 그런데 도생은 ‘리’를 극도로 중시하고 있으며, “부처[佛]는 이치[理]를 깨달은 체體”(주7)라고 논한다. 이렇게 ‘리’를 중시한 것은 바로 현학과 아비다르마에 훈습된 상태에서 구마라집의 성공지학性空之學을 지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리’의 중시는 바로 ‘돈오頓悟’를 도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도생은 “진리眞理는 스스로 그러하여[自然]하여 깨달으면 그윽이 부합符合한다. 진리는 차등이 없으니, 깨달음에 어찌 변화[易]를 용납할 것인가? 변화가 없는 체體는 담담히 항상 비추지만, 다만 어리석음을 따라 근본에 어긋남으로 깨달음이 내게 있지 아니할 뿐이다. 진실로 능히 이르러 구한다면, 바로 미혹을 되돌려 극極으로 돌아간다.”(주8)라고 하여 참다운 ‘리’의 성격을 ‘변화가 없는 몸[不易之體]’이고 ‘담연상조湛然常照’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그를 통하여 “‘돈頓’이라 하는 것은 이치를 나눌 수 없음[理不可分]을 밝힌 것이고, ‘오悟’는 지극히 비춤[極照]을 말한다. 불이不二의 깨달음으로 나눌 수 없는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치[理]와 지혜[智]가 함께 어우러짐을 ‘돈오’라고 한다.”(주9)라고 ‘돈오’의 개념을 도출하고 있다.

 

구마라집은 중관반야학을 중국에 전래하면서 ‘실상무상’의 ‘실상론’을 개진하였고, 승조는 본격적인 중국반야학을 전개하면서 ‘비유비무’를 통해 ‘촉사이진觸事而眞’, ‘체용불이體用不二’, ‘즉체즉용卽體卽用’, ‘입처즉진入處卽眞’ 등의 개념들을 제시하였다. 또한 도생은 본격적인 ‘불성론’을 제시하면서 ‘돈오’라는 인류문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중대한 ‘기제機制’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구마라집과 승조, 도생은 중국불교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들이 제시한 개념들은 후대에 성립한 조사선에서 핵심적인 선리禪理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주)_

1) [梁]慧皎撰, 『高僧傳』卷2(大正藏50, 332c), “唯為姚興著實相論二卷.”, [後秦]僧肇撰, 『肇論』(大正藏45, 162b) “什法師立義, 以實相為宗, 作實相論.”

2) ‘離四句, 絶百非’는 吉藏의 『涅槃經遊意』, 『大乘玄論』, 『二諦義』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3) [梁]慧皎, 『高僧傳』卷7(大正藏50, 366c), “關中僧衆, 咸謂神悟.”

4) [後秦]僧肇撰, 『注維摩詰經』卷3(大正藏38, 354b), “無我本無生死中我, 非不有佛性也.”

5) [宋]竺道生撰, 『妙法蓮花經疏』(卍續藏27, 5a), “佛為一極, 表一而為出也. 理苟有三, 聖亦可為三而出. 但理中無三, 唯妙一而已.”

6) [梁]寶亮等撰,『大般涅槃經集解』卷18(大正藏37, 448b) “여러 종류의 相이란 자연의 性이다. 佛性은 반드시 諸佛에서 생한다. 이전에는 我가 곧 佛藏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佛性이 곧 我라고 한다.[種相者, 自然之性也. 佛性必生於諸佛. 向云, 我卽佛藏; 今云, 佛性卽我.]”

7)  [後秦]僧肇撰, 『注維摩詰經』卷3(大正藏38, 360a), “佛爲悟理之體”

8) [梁]寶亮等撰, 『大般涅槃經集解』卷1(大正藏37, 380c), “夫眞理自然, 悟亦冥符, 眞則無差. 悟豈容易, 不易之體, 爲湛然常照, 但從迷乖之, 事未在我耳. 苟能涉求, 便反迷歸極.”

9) [唐]慧達, 『肇論疏』(卍續藏54, 55b), “夫稱頓者, 明理不可分, 悟語極照. 以不二之悟符不分之理. 理智兼釋, 謂之頓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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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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