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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조선 문화사 자주적 이해 확대한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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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1 년 5 월 [통권 제97호]  /     /  작성일21-05-04 14:58  /   조회5,19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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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근대사서 5 |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

 

『대동선교고』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불교기록을 ‘다듬어서 엮은’ 우리나라 고대불교사다. 조선후기 대흥사 스님들이 대흥사의 역사와 문화를 찬술한 『대둔사지大芚寺志』 권4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다산(1762-1836)이 유배지 해남에서 1814-1818년 사이에 찬술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산 정약용

 

전반부는 「고구려선교시말高句麗禪敎始末」․「백제선교시말百濟禪敎始末」․「신라선교시말新羅禪敎始末」로 분류하여 고대 삼국의 불교사를 전래傳來와 유통流通의 사실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후반부는 신라 말까지 국내외에서 활동한 승려들의 전기傳記와 법맥法脈 등을 정리했는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와 같은 중국의 불교전적에 수록된 신라 스님들을 가려 뽑아 사승嗣承관계, 스승과의 선문답禪問答 등을 정리했다. 아울러 최치원(崔致遠, 857-908?)이 찬술한 명문장 사산비명四山碑銘이나 조선 후기에 간행되어 주목받고 있었던 사암 채영(獅巖采永, 생몰년 미상)이 1764년(영조 40) 찬술한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를 참고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 스님들의 법맥 전승을 정리한 책이다. 다산은 이들 책에서 홍척洪陟․혜철彗徹․무염無染․도의道義 등 신라 말 선종禪宗의 개창조開創祖를 위시한 스님들의 법맥을 정리하기도 했다. 다산은 『대동선교고』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신의 견해, 즉 사론史論을 26개의 ‘안설案說’로 표기하여 『삼국사기』 기록이 남긴 오류와 내용의 소략함을 지적하고, 철저한 고증考證을 통해 바로잡기도 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불교기사는 전체 143건이다. 이 가운데 신라본기에 수록된 기사가 104건으로 가장 많이 수록되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각각 9건으로 매우 빈약하다. 지志와 열전列傳 역시 신라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고 있다. 

 

 


한편 다산이 『대동선교고』에서 본문으로 활용한 『삼국사기』 불교기사는 왕기王紀가 명확하게 제시되어 『삼국사기』 원문과 대조가 가능한 기사가 전체 57건이다. 우선 「신라선교시말」은 신라본기의 기록에서 약 35회 인용되었다. 이것은 원문에 수록된 불교기사 104건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그러나 다산이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는 신라의 사찰과 명승名僧에 대한 부분을 개별적으로 정리하지 않고 절의 이름과 스님들의 법명만을 한 곳에 모아 나열하였기 때문에 실제적인 횟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고구려선교시말」은 12건으로 원전原典보다 많이 수록되었다. 다산은 고구려의 불교기사가 고구려본기에 수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백제본기나 신라의 김유신․거칠부 열전에서 발췌하여 「고구려선교시말」에 수록했다. 「백제선교시말」 또한 전체 10건에 불과하며, 보조 자료도 최치원이 찬한 지증대사비문智證大師碑文을 1회 정도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삼국의 선교시말은 그 인용횟수에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삼국사기』 원전의 내용이 신라불교사 중심의 편향성이 그 일차적인 원인이다. 다산 또한 『대동선교고』 전반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동선교고』는 이외에도 『불조통재佛祖通載』․『전등록傳燈錄』․『염송집拈頌集』․『사산비명四山碑銘』․『불조원류佛祖源流』 등을 자료로 활용했다.  

 


사진1 최남선의 <대동선교고> 해제 

 

다산의 고대불교사 정리 작업은 단순한 자료정리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조선후기의 시대 상황과 문화의식이 반영되었다. 조선의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국가적 위난危難과 급격한 변동의 시기다. 사회변동에 수반한 문화변동이 폭넓게 진행되기도 했다. 사상계思想界는 성리학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시대적인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양명학陽明學이나 선진유학先秦儒學과 외래문물에 자극받은 실학사상 등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아울러 불교에 대한 재인식과 천주교의 수용과 같은 탈脫성리학적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문사조는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인 주자학적 사회규범이나 순수한 이론적․추상적․비현실적인 학풍에 대하여 반성과 비판을 통해 부상하였다. 이들은 정치적․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함께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도 강화시키고 있었다. 실학자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재인식은 제한적이었지만, 그동안 이단異端으로 여겨 왔던 불교에 대한 이해와 불교사 편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약용의 『대동선교고』는 불교가 탄압받는 시대적 상황에서 실학자가 찬술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더욱이 그는 불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유학자였지만, 우리나라 불교사를 소개하는 단순한 동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불교사를 체계화시키고자 했으며, 그 정리를 통해 조선 문화사의 자주적 이해를 확대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의 불교사 찬술은 한국문화사 이해의 성과뿐만 아니라 당시 불교계의 사지寺誌․승전僧傳과 같은 불교계의 저술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시기 스님들의 조선불교사에 대한 적극적 이해나 철저한 고증을 기초로 한 편찬방식은 왜란과 호란 직후 편찬된 사지寺誌의 부실함을 비판하고 극복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았다. 다산의 영향은 이와 같이 지대한 것이었다.

 

한편 다산은 불교전래를 종교적 측면이 아닌 역사적 측면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즉 조선과 중국관계를 기초로 한 역사적 측면에서 그 전래를 해석했고, 특히 백제의 불법이 침류왕 때 동진東晋으로부터 전래되었지만, 한강 이북이 타국의 영토였던 탓에 사찰을 널리 창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다산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체계이기도 했던 영토의식이 불교사 편찬에도 작용한 것이다. 다산은 『대동선교고』 후반부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수록된 신라 스님들을 소개할 때는 구체적으로 그 권수까지 표기했고, 동일 인물은 『경덕전등록』과 『불조원류』를 비교 검토하는 세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의 『경덕전등록』에 수록된 신라 순지 선사順支禪師에 대해서는 스승 앙산적 선사仰山寂禪師와의 선문답禪問答을 소개하고, 채영이 찬한 『불조원류』에는 ‘오대산순지선사五臺山順支禪師’로 표기되었음을 밝혔다. 아울러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간 원상圓相에 대해서는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하다는 뜻 같다”고 선문답을 해석까지 하고 있다.

 


사진2. <대동선교고> 

 

그는 『불조원류』에 수록된 ‘신라명덕新羅名德’을 참고할 인물이나 ‘흔적을 살필 수 있는자’․‘흔적이 끊어져 살필 수 없는자’로 분류하여 정리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후기에 간행된 『불조원류』가 신라의 명덕名德에 대한 사실을 잘못 기록하여 믿기 어렵다고 했지만, 참고하도록 덧붙여 둔다고 전제했으며, 흔적이 끊기고 없는 사람은 명자名字라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이 알아보게 할 만큼 인용 자료의 비교검토와 후대의 연구를 염두 해둘 만큼 치밀함을 보였다.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결국 다산은 『삼국사기』의 단편적인 불교기사를 통해 한국 고대불교사의 개요를 소개했고, 『불조원류』나 사산비명과 같은 자료를 통해 불교계 내부와 승려의 법맥과 수행 등 『삼국사기』가 지닌 한계를 보충하고자 했다. 다산은 『삼국사기』와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를 불신했던 상황에서 단편적인 불교기사를 한 곳에 모아 우리나라 고대불교사를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대동선교고』는 불교사에 대한 단순한 자료집이기 보다는 문화전통을 중심으로 한 자국사의 주체적 체계화 작업을 위한 불교사 편찬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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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동국대 및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조선후기 사지寺誌편찬과 승전僧傳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동향사』, 『사지와 승전을 통해 본 조선후기 불교사학사』, 『한국근대불교사론』, 『석전영호대종사』(공저), 『신흥사』(공저)등이 있다. 조선시대와 근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역임.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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