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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원력과 공생이 이루는 아름다운 미래 - 푸르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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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5 년 12 월 [통권 제152호]  /     /  작성일25-12-04 13:40  /   조회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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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사무실에 오니 책상 위에 푸르메재단에서 온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10월 29일 오후 4시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홀에서 개최하니 참석을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초청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초청장을 받아 들면서 ‘연세대학교 백양로 지하 1층’이라는 단어에 눈이 꽂혔습니다. 

 

“아니 백양로에 언제 이런 지하 건물이 들어섰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엄스님에게 전화하여 “연세대 백양로에 지하시설이 생겼다는데, 그 규모와 시설에 대하여 검색해 보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1963년에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하여 1967년 2월에 졸업한 모교인만큼 관심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일엄스님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에 잠시 지난 시절을 회고해 보게 되었습니다.

 

추억의 백양로, 30년 전에는 지상으로 걸어서 이번엔 지하로

 

소납이 1972년 정월 보름에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 문하로 출가하고 처음 모교를 방문한 것은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성철 종정예하의 탄신 86주년을 기념하여 ‘선불교와 해체론시대의 서구철학’이라는 주제로 춘계학술세미나가 1997년 5월 3일 연세대 인문관에서 열린 것입니다. 이 세미나는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설 성철(선)사상연구원이 주최하고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가 주관하였는데, 당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선불교적 시각에서 정리, 분석해 보고자 하는 획기적이고 참신한 토론의 장이었습니다. 또한 이 세미나를 연세대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연세대 철학과에 재직중이며 성철(선)사상연구원의 연학실장이었던 신규탁 교수의 도움이 컸습니다. 졸업한 지 30여 년이 지나 스님이 되어 백양로를 걸어 인문관을 찾아가는데, 백양목를 벗삼아 걷던 ‘추억의 등하굣길’은 어디로 가고 차량 통행으로 매우 복잡했던 기억입니다.

 

사진 1. 1997년 5월 3일, 연세대 인문관에서 열린 춘계학술회의 모습. 


사진 2. 춘계학술회의를 마치고 정심사 신도들과 함께한 사진. 출가하고 처음으로 모교를 방문해서 찍은 사진이다.

 

일엄스님이 보내온 자료를 간단히 요약하면, “백양로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중심축 역할을 하며 캠퍼스의 상징과도 같은 길인데, 차량 통행이 늘어나면서 보행자가 밀려나는 꼴이 되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를 통해 지상은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중심으로 공사를 하고, 지하 공간을 활용하여 쾌적한 캠퍼스 환경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2015년에 백양로 지하화 사업이 완공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소납은 28년 만에 푸르메재단 창립 초대 이사로서 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초정을 받아 두 번째로 모교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졸업 후 30여 년 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백양로를 걸어서 갔고, 이번엔 상좌가 운전하는 차로 지상이 아닌 백양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푸르메재단과의 인연과 미안함

 

백양로 지하화 사업에 놀라고 주위를 신기하게 둘러보면서 지하 1층 행사장에 도착하니, 8인석 테이블이 총 30여 개가 놓여 있고 27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초정 자리에 앉아 자료를 뒤적여 보니, 소납은 2004년 푸르메재단 발기대회에 참석하여 2005년 푸르메재단 창립 이사로 참여하여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사직을 달고 있었습니다. 

 

사진 3. 푸르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 현장. 270여 명이 참석하여 함께 이룬 기적과 미래에 대해 기쁨을 나누었다. 사진 푸르메재단 홈페이지.

 

그런데 제대로 세운 이력도 없이 세월만 보낸 게 아닌가 싶어 부끄럽고 부끄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사진은 각계를 대표하는 분들로서, 이중에는 신부님과 목사님도 계신데 스님은 저 하나뿐이어서 불교인으로서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몇 차례 이사직을 반려하려 했으나 푸르메재단의 상임대표인 백경학 이사는 “스님 이름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라고 손사래를 쳐서 한 걸음 물러선 게 오늘의 자리가 된 것입니다.

 

함께 이룬 기적, 함께 만들 미래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푸르메재단 설립과 사업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 적을 것 같아서 그 연역을 짧게나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대표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CBS와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습니다. 1998년 6월, 2년간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통일전문기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마치고 귀국 한 달을 앞두고 백 대표(당시 35세)는 아내, 유치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영국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글래스고를 지나는 국도에서 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기 위해 도로 옆에 차를 세웠는데, 아내가 잠시 자동차 뒤쪽으로 갔을 때 벤츠 승용차가 와서 사정없이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백 대표가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차 밑에 깔린 자신을 빼내고 있었고, 아내는 두 차 사이에 낀 채 피투성이었다고 합니다. 간신히 아내에게 기어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차 안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 정신없이 기자의 본능으로 현장 사진을 몇 장 찍었고, 그 사진들이 8년이라는 긴 소송 끝에 아내 황혜경 씨가 배상금을 받는 데 결정적 증거자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100일 동안 혼수상태였고 대수술도 세 번이나 받았는데, 첫 수술에서 다리를 잘라냈고, 두 번째 수술 전에는 영국 의사가 마음의 준비까지 단단히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진 4. 푸르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필자. 사진 푸르메재단 홈페이지.

 

그런데 혼수상태에서 세 번째 수술을 받은 뒤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죽음의 기로에서 아내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으며 깨어난 것입니다. 이후 독일에서 재활훈련을 받고 귀국해서 장애인 재활병원을 찾아보니 국내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독일과 영국에서 체험한 국내와는 다른 환경, 의료진의 태도, 의사가 아닌 환자 중심의 병원생활을 생각하며 국내에 장애인 재활병원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입니다.

 

2006년 부부는 8년 만에 받은 피해보상금과 백 대표가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세운 회사의 지분을 합해 재단 설립 기금으로 출연하여 창립부터 2년여가 지나 요건이 갖추어져 푸르메재단을 출범하게 됩니다. 인간적으로는 견딜 수 없는 불행한 사고였지만 오히려 그 불행이 재단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백 대표는 나중에 이 사고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우물을 파보라는 ‘신의 뜻’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소납은 ‘신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며 관세음보살의 무한한 자비와 중생구제의 원력을 찬탄하는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원력과 공생의 아름다움

 

푸르메라는 ‘푸른 산’이 우뚝 솟게 단초를 놓은 황혜경 여사는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제22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독일 뮌헨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한국 신부님과 교민들이 와서 눈물바다가 됐어요. 그때 제 딸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희 엄마 다리는 곧 자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딸의 친구도 ‘맞아요, 아줌마 다리는 곧 다시 자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과분한 상, 소중하게 간직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말처럼, 2005년에 창립한 푸르메재단은 2012년 서울 종로에 푸르메센터를, 2016년 서울 마포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2022년에는 발달장애 청년 일터인 푸르메소셜팜을 차례로 건립하여 국내 장애인 의료, 복지 분야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꺼이 나눔을 실천한 기부자는 총 5만 1135명, 총 기부액은 1,124억원에 달합니다. 푸르메재단은 재활의료 지역사회복지, 자립, 장애가족 지원 분야에서 사업을 이어오며, 20년간 총 815만 449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을 지원했습니다.

 

사진 5. ‘제22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수상한 황혜경 씨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푸르메재단 임직원들. 사진 푸르메재단 홈페이지.

 

또한 재활치료를 마치고도 갈 곳이 없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자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일자리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설립한 푸르메소셜팜은 이상훈, 장춘수 부부가 1만 1800㎡의 토지를 기부하고, SK하이닉스, 여주시, 한국지역난방공사, 장애인 고용단, 에너지기술원 등에서 힘을 보탰고, 많은 시민의 기부로 2020년 10월 착공해 건립되었습니다. 특히 첨단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팜인만큼 수익성이 높을 뿐 아니라 장애인 직원들이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이 소셜팜의 특장점입니다. 소납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일반 사회인으로서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발달장애 청년들의 밝은 모습에서 방울방울 열리는 희망을 보고 기분이 절로 좋아진 기억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했던가요. 어리석어 보일 만큼 눈물겨운 한 부부의 원력과 노력은 결국 산을 옮기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러나 백대표는 늘 겸손하게 “이 모든 일은 시민과 기업 그리고 지자체의 협심으로 이루어 낸 것이지요.”라고 하며 손을 모읍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해인사 큰스님 사리탑전에서는, 성철 종정예하의 열반 32주기를 맞이하여 500여 명의 불자들이 ‘일체중생의 행복’을 기원하며 3천배를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도전하기 힘든 3천배이지만 ‘지심귀명례’ 선창에 맞춰 대중과 더불어 하다 보면 어느새 삼천배를 이루어냅니다. 

 

그 힘을 원동력 삼아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는 우리보다 좀 못하거나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에 힘을 보태는 불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을사년 목탁소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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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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