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독일 ❶ 독일에 불법을 펼쳐 온 함부르크불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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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2025 년 2 월 [통권 제142호] / / 작성일25-02-04 11:15 / 조회111회 / 댓글0건본문
이 글에서는 함부르크불교협회를 소개하고, 지난 70년의 역사와 함께 협회가 추구하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제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여정과 함부르크불교협회로 오게 된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함부르크불교협회의 설립 과정
함부르크불교협회는 1954년 10월 9일, 스리랑카의 나라다 마하테라 스님께 감명받은 불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함부르크의 불교 단체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고 독일 전체로는 세 번째입니다. 창립 회원이신 폴 데베스, 막스 글라스호프, 헬무트 헤커 박사, 빌프리드 클링거 박사, 도로테아 폰 마투슈카 백작부인, 칼 로젠, 빌헬름 슈테게만이 그려낸 비전이 살아있는 전통으로 이어져 온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진 1. 2024년, 함부르크불교협회 창립 70주년 기념식 모습.
협회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공동 설립자이자 스승이었던 폴 데베스의 여식 모니카 데베스 여사의 회고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모니카는 올해 우리 협회의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인상적인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툽텐 잠빠 스님께서 제 아버지 폴 데베스와 저 자신, 그리고 함부르크불교협회의 초창기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70년 전에 함부르크불교협회가 어떻게 창립되었을까요?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당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1차 그리고 2차세계대전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심신이 상한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1945년의 함부르크는 마치 백골 같았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적십자의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 나왔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찾고,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찾는 방송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함부르크-반즈베크에 있던 우리학교는 파괴되었습니다. 아이들 52명이 한 학급으로 지하실에서 공부했고, 의자는 각자 가져왔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 널브러진 벽돌에서 시멘트를 떼며 놀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간절히 모색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리도 극심하게 파괴되었나요? 이런 참상을 아무도 원하지 않았거늘! 또 다시 겪게 될까요?” 이런 시기에, 1948년부터 부친 폴 데베스의 강연이 호응을 얻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함부르크대학, 브레멘, 첼레, 엘름스회른, 프랑크푸르트,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킬, 뤼벡의 인파 가득한 강당에서 강연하셨습니다. 또한 교회 대표, 이슬람의 지도자인 이맘, 철학자들과 어울려 ‘논쟁 없는 원탁 토론’을 주최하며 아래와 같이 대형 포스터로 주제를 전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말하는 구원과 여실한 가르침의 구원’, ‘신앙인가 지식인가?’,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무엇이 운명을 결정하는가?’, ‘무엇이 세상을 형성하는가?’, ‘현상에서 존재로’, ‘불교: 종교와 과학의 가교’, ‘기독교의 은총과 불교의 자기 수행’
700여 명이 넘는 청중들이 모여 대학의 강의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저녁에는 학교와 노동조합 강당에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1949년부터 1983년까지, 뤼네부르크 하이데의 후슈테트에서 2주에서 3주 과정으로 여름 세미나가 23회 열렸고, 매번 80명까지 참석했습니다. 또한 21회의 주말 세미나가 있었고, 그중 10회는 로제부르크에 위치한 ‘침묵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실한 인생의 이정표》라는 잡지를 발간하셨고, 1955년부터 《지혜와 변화》를 펴내셨습니다. 한편 《불교적 관점과 삶의 실천》이라는 연속간행물도 출판했습니다. 매월 32쪽, 특집호는 64쪽 분량으로 총 62권이 간행되었지요. 이렇듯 폭넓은 교화 활동으로 수천 명이 감화를 받았고, 스리랑카의 나라다 마하테라 스님과 인연을 맺어 1954년 10월 9일 함부르크불교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협회 창립의 주역들
창립 대중은 폴 데베스, 막스 글라스호프, 헬무트 헤커 박사, 빌프리드 클링거 박사, 칼 로젠, 빌헬름 슈테게만, 그리고 마투슈카 백작부인 도로테아였습니다. 글라스호프는 1955년에 설립된 독일불교연합(DBU)에서 1960년부터 1984년까지 대표로 활동하셨고, 백작부인은 헬무트 팔미에 박사의 모임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잉게트라우트 안더스는 1950년대에 불교 세미나에 참여했고, 아버지께 가장 든든한 도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녀의 헌신으로 아버지의 심오한 법문이 책으로 다듬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아버지께서 인연을 맺은 구스타프 프리치는 불교 세미나를 하도록 아파트를 보시하시고 나아가 베를리너 토어 근처 당신의 부지에 법당을 지어 주셨습니다. 이로써 법문과 참선 도량을 마련하려던 오랜 발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슈테게만 부부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1954년 제가 개신교 입교식을 할 때 부부께서는 진녹색 가죽 필기구를 선물로 주셨는데,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쓰고 있습니다. 두 분은 법당을 설계하시고 법사님을 새로 초청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담미코 스님은 젊은 독일인으로서 영국에서 건너오셨습니다. 스님의 고요하고 자비로운 모습에 저는 물론 남동생 헬무트도 깊이 감동했습니다. 헬무트도 출가를 희망했지만 담미코 스님은 남동생에게 우선 고등학교를 졸업하라고 조언하셨지요. 스님의 조언에 따라 헬무트는 학업을 마쳤지만 출가하지는 않았습니다.
라마 고빈다 스님과의 인연도 생각납니다. 언젠가 스님의 꽃이 아름답다는 법문에 저는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는 감각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벗어나야 한다고만 생각했으니까요.
이에 비해 제 아버지 폴 데베스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진리를 찾던 청년 시절, 아버지께서는 부처님의 최초 법문을 읽고 바로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내가 찾던 스승을 만났구나’ 하고요. 이후에는 『맛지마니까야』와 『디가니까야』, 『숫타니파타』를 공부하셨습니다. 경전은 거의 전적으로 출가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아버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는 한편 재가자로서 균형을 잡으며 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절제하며 수행자답게 살고, 수행자 답게 살고, 부처님의 지혜를 쉽게 풀어 서양인에게 전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1947년, 아버지께서는 제자 둘과 함께 ‘깨달음을 위한 불교 모임’을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로는 헬무트 헤커, 그리고 영국의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법학도 프리츠 셰퍼가 함께했으며, 장소는 그로스한스도르프-슈말렌벡에 있는 저희 집이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에게는 자녀가 넷이었고, 게다가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도 폭격으로 거처를 잃었던 터라 함께 살았습니다.
수년간 아버지께서는 베를리너 토어의 목조 건물(암 슈트로하우스 14/16)에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맛지마니까야』를 강독하며 현상 너머의 진실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감각 기관을 제어하고 공양을 절제하는 것 등이 법문 주제였고, 저녁 행사로 막스 글라스호프, 헬무트 헤커 박사, 빌헬름 슈테게만과 함께 질문하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법회 때마다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당시 함께 공부하던 도반 대부분은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85세인 우르술라 비엔 법우는 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저희 다섯 남매의 삶이 쉽지는 않았지만, 저희 대부분은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현상 이면의 진실을 보여 주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언젠가 제게 “다시 태어나더라도 네 아버지와 결혼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레모 바이얼라인 거사께서는 제 아버지를 아들처럼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거사님은 도반인 프리츠 슈타인슐테와 함께 불교 출판사를 세워, 빨리어 삼장의 독일어 번역, 아시아와 독일의 스님들, 그리고 진지한 수행자들의 법문을 펴내셨습니다. 이 출판사는 콘스탄츠에 있는 크리스티아니 출판사에서 간행한 불서도 인수했습니다.
2005년경, 독일 바이에른 주 프랑켄 지역에서 비구 보디 스님과 레모 바이얼라인 거사께서 포행 중에 부지를 발견하셨습니다. 이곳에 지금의 묵토다야 숲속 수행처가 세워졌습니다. 현재 이 도량에는 유럽의 스님들이 부처님 당시처럼 수행하고 계십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고 평화를 찾기를.
- 모니카 데베스 보살님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한 울타리 안에 여러 불교 전통 공존
데베스 여사께서는 2024년 9월 22일 불교협회 70주년 기념식에서 이 강연을 하셨습니다. 저희에게 매우 감동적인 강연이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부르크불교협회(BGH)는 모니카 여사의 부친이신 폴 데베스 법사를 위시한 창립회원의 원력을 이어받아 테라바다의 전통을 튼실하게 잇고 있습니다. 이 전통에 따라 테라바다의 비구 또는 비구니 스님께서 협회의 지도법사를 맡아 주셨습니다. 초대 지도법사는 나라다 마하테라 스님이셨고, 1987년에는 독일 출신의 테라바다 비구니 아야 케마 스님께서 이어받으셨습니다. 1998년부터는 스리랑카의 실라완사 테로 스님께서 협회를 후원하고 계십니다. 스님은 박사학위를 받으셨으며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냐나뽀니까 법당의 주지입니다.
데베스 보살님의 말씀대로, 함부르크불교협회는 초창기에 개인 가정에서 법회를 열었고 1956년 베를리너 토어 인근에 120명을 모실 수 있는 규모로 목조 건물을 마련하여 법당과 도서관으로 활용했습니다. 임시 처소를 몇 차례 거쳐, 여러 불자의 보시에 힘입어 1979년 현재의 도량(Beisserstr. 23, 22337 Hamburg)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는 법문과 세미나, 수련을 진행할 공간이 두 곳 있고, 3,000여 권의 불교 서적을 갖춘 도서관, 사무실, 공양간, 그리고 정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 협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전하고, 깊이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며, 일상 속 수행을 돕는 것을 소임으로 합니다. 사람마다 신심과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저희 불교협회에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깨달음을 지향하지만 수행도가 다른 불교 전통이 각자의 가르침을 나누도록 합니다. 이처럼 함부르크불교협회는 여러 불교 전통이 한 울타리 안에서 화합하는 도량입니다.
초심자는 여러 전통의 수행과 명상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고, 오래 수행하신 분들도 독일과 유럽, 아시아의 스승을 모시고 열리는 주말 정진을 통해 더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대다수 프로그램은 초심자에게도 적합합니다. 불법의 오랜 전통에 따라 모든 행사는 자발적인 보시로 이루어지고, 종교에 관계 없이 누구나 참여가능합니다.
<기사 관련 웹사이트>
함부르크불교협회: www.bghh.de
잉게트라우트 안더스-데베스: www.buddhistisches-seminar.de
바이얼라인 출판사: www.buddhareden.de
묵토다야 숲속 수행처: www.muttodaya.org
스라바스티 도량(미국): www.sravastiabbey.org
함부르크티베트센터: www.tibe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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