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불교]
하나의 물체가 온 우주를 바꾼다
페이지 정보
양형진 / 2025 년 2 월 [통권 제142호] / / 작성일25-02-04 10:32 / 조회288회 / 댓글0건본문
상대성이론의 세계 ❹
일반상대성이론을 다룬 지난 호의 글에서 뉴턴역학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와 수긍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었던 타원 궤도의 문제를 지난 호에서 다뤘고, 이번 글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는 ‘원거리 상호작용(action at a distance)’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작용의 세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그들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여기서 두 물체의 질량의 곱을 두 물체의 전하량의 곱으로 바꾸면 전자기학에서의 쿨롱(Coulomb, 1736∼1806)의 법칙이 된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쿨롱의 법칙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멀리 떨어진 두 물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이다. 이 글에서는 만유인력을 중심으로 논의하겠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안드로메다 성운은 200만 년 전에 그 성운을 떠난 빛이고, 내가 지금 보는 태양은 500초 전에 태양을 떠난 빛이다. 그런데 태양은 언제나 자신이 있었던 방향으로 지구를 끌어당긴다. 500초 전의 태양이 지금 지구가 어디 있을지를 예상하고 자신을 향하는 방향으로 지구를 끌어당긴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200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 성운이 지금 지구가 어디 있을지를 안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뉴턴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뉴턴역학의 엄청난 성공에 파묻혀 그냥 넘어갔다. 이 문제는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가 물리학에 장場(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실마리를 찾게 됐고,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시하면서 완벽하게 해결됐다. 뉴턴역학이 안고 있던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패러데이의 장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살펴보자.
패러데이의 장: 존재가 우주를 바꾼다
태양 주위에서 빛이 휘는 것처럼, 존재자가 공간을 바꾼다는 생각은 사실 현대물리학 이전에도 있었다. 패러데이의 장이 그것이다. 패러데이는 현대물리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전자기 유도(electromagnetic induction) 법칙을 세우면서 고전 전자기학의 체계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턴역학의 성공은 우주 전체가 뉴턴의 법칙으로 운행되는 역학적 체계라고 믿게 했지만, 뉴턴의 역학적 모형으로는 적절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과학의 영역에 나타났다. 그게 전자기 현상이다. 패러데이는 이 분야에서 혁명적인 돌파구를 마련했고, 맥스웰(James Maxwell, 1831∼1879)은 전자기 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 종합하여 맥스웰 방정식을 세우면서 전자기학을 완성했다.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는 이 방정식이 예측한 전자기파를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패러데이는 갈릴레이와 함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였다. 수많은 업적이 있지만, 여기서는 패러데이의 장(field)만 다루겠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두 질량이 서로 끌어당기는 것으로 표현되고, 쿨롱의 전기력의 법칙은 두 전하가 서로 밀거나 당기는 것으로 표현된다. 패러데이는 이런 현상을 이전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전하가 주위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전하가 어떤 공간에 놓이면 이 전하의 영향으로 공간은 전하가 없었던 이전과 다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는 이 달라진 공간의 변화를 화살표를 사용하여 전기력선으로 표현했다. 이 달라진 정도를 물리학에서는 전기장(electric field)이라고 한다. 이는 전하에 의해 공간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나타낸다. 이에 의하면 두 전하가 직접적으로 서로 힘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전하가 바꿔놓은 공간의 전기장에 두 번째 전하가 반응하고, 두 번째 전하가 바꿔놓은 공간의 전기장에 첫 번째 전하가 반응한다.
이 달라짐을 자기 현상에 적용한 게 자기장(magnetic field)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막대자석 위에 놓인 판 위에 철 가루를 뿌려 놓으면 막대자석이 만든 자기장에 따라 철 가루가 정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자석이 자기장을 만들면서 주위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자석뿐 아니라 전류(전하의 흐름)도 자기장을 만들어 낸다.(주1) 패러데이는 자기장도 화살표를 사용하여 자기력선으로 표현했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칭하여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이라고 한다.

이렇게 물체가 주위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중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하나 전류처럼, 질량을 가진 물체도 공간을 변화시킨다. 이에 의하면 물체를 낙하하게 하는 것은 지구가 아니다. 지구가 중력장을 만들면서 공간을 바꾸면, 중력장이 형성되어 바뀐 공간에 물체가 반응하면서 지구 방향으로 끌려간다. 이 순간의 안드로메다 성운이 지구를 끄는 것이 아니다. 200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 성운이 지구 주변의 공간을 변화시켰고, 이 변형된 공간을 따라 지금의 지구가 끌려간다. 이렇게 보아야만, 나는 이 순간의 태양을 볼 수 없고 내가 보는 것은 8분 전의 태양이지만, 지구와 태양 사이의 만유인력은 지구를 태양이 있었던 방향으로 끈다는 현상이 이해될 수 있다.
안드로메다 얘기를 하면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200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 성운에 의해 현재의 지구 공간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영향력을 행사한 안드로메다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거 시제를 써야 하고, 변화한 현재의 지구 공간에 초점을 맞춘다면 현재 시제를 써야 한다. 이는 공간의 변화가 공간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간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와 공간과 시간이 이렇게 한덩어리로 같이 변한다는 것만으로도 우주는 신비롭다.
세간: 우리가 사는 우주
전하나 전류나 자석이 전자기장을 만들건 질량이 중력장을 만들건, 우주를 구성하는 물체가 공간의 성질을 바꾸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이는 세계의 실재(reality)를 바라보는 관념에 있어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심오한 변화일 것이다. 뉴턴역학의 기본 전제인 절대공간과 절대시간과 결별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뉴턴과 칸트의 우주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 위에서 운동하는 물질로 구성돼 있다. 패러데이의 장은 이 고전적 우주관에서 탈피하는 돌파구를 만들었다. 물질에 의해 형성되는 장이라는 개념을 패러데이가 제시함으로써, 공간이라는 배경 위에 존재하는 원자의 집합체가 우주라는 근대적 우주관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존재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배경 위에 단순히 그저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시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패러데이에서 시작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거치면서 더욱 깊고 명확해진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시간과 공간이 서로 넘나든다는 것을 보이면서, 우리가 사는 우주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의 세계가 아니라 4차원 시공간(space-time)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존재자가 뿜어내는 중력장(gravitational field)이 공간과 시간을 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존재자와 상관없는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 성립할 수 없음을 확증했다.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는 존재자로 구성된 것이 우리 우주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는 존재자로 구성된 것이 우리 우주다.
유클리드기하학의 착각
여기서 우리는 유클리드기하학의 5번째 공리인 평행선공리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 공리에 의하며 그림 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 직선과 교차하는 제3의 선분이 만드는 한쪽 내부 각의 합이 180°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은 언젠가 만난다. 이는 두 직선이 평행하면, 이 두 직선과 교차하는 제3의 선분이 만드는 한쪽 내부 각의 합이 180°라는 것이다. 이런 두 직선을 우리는 평행선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런 평행선이 과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가이다.
그림 ① 두 직선과 교차하는 제3의 선분이 만드는 한쪽 내부 각의 합이 180°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은 언젠가 만난다. 내부 각의 합이 180°이면 두 직선은 평행하다.



원융圓融: 온 우주가 하나에 들어온다
이제 손에 들고 있는 물건 하나를 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 물건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지구 중력 때문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지구를 구성하는 수많은 하나하나의 입자들이 그 물건을 각각 자신의 위치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 끌어당김을 방향까지 고려해서 하나하나 더하면 그게 지구 중력이 된다.(주2) 이는 하나의 물건이 낙하할 때 전 지구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낙엽 하나가 떨어지는 것은 아주 단순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단순한 현상마저도 끝없이 켜켜이 쌓인 연기緣起,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연기緣起가 맺어져서 나타나게 된다.
낙하와 관련하여 지구를 구성하는 질량이 만드는 중력장을 생각해 보자.(주3)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낙하 현상은 지구 근처에서 나타나는 시공간의 휘어짐에 의해 생긴다. 이 시공간의 휘어짐은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물체의 질량이 만들어 낸 것이다.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모든 물체는 지구 근처의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물체를 지구 중심 방향으로 낙하하게 한다. 시공간을 휘어지게 한다는 것은 우주를 바꾼다는 것이고, 물체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그 물체에 벌어지는 사건(event) 혹은 현상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물체가 온 우주를 바꾸고, 하나의 현상과 하나의 물체가 온 우주에 개입한다.
낙하하는 한 물체뿐 아니라 이 우주의 모든 물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로 개입하는 것을 화엄에서는 상입相入(mutual penetration)이라고 한다. 의상스님은 하나의 작은 티끌이 온 우주를 품는다[一微塵中含十方]고 하셨다. 지금까지 한 얘기가 모두 이것이므로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화엄의 3조 법장스님은 서까래가 집이라고 하셨다. 서까래는 집 밖에 있으면 단지 나무토막일 뿐이다. 이 나무토막이 서까래의 위치에 자리 잡을 때, 집의 모든 것이 다 들어오면서 비로소 서까래가 된다. 집의 모든 것이 다 들어와 있으므로 서까래가 집이다. 숫자 123도 마찬가지다. 1은 2나 3보다 작지만, 123의 1은 2나 3보다 큰 백이다. 왜 1이 백이 되는가? 2와 3이 1에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1을 백이라고 읽는다. 서까래가 집을 만들고 1이 123을 만들지만, 집이 있어야 나무토막이 서까래가 되고 123이 있어야 1이 백이 된다. 이 원융圓融이 우리 우주의 모습이다. 하나가 온 우주에 다 들어가고, 온 우주가 하나에 다 들어온다. 하나가 온 우주를 만들고, 온 우주가 하나를 만든다.
<각주>
(주1)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오직 상대속도만 있으므로, 하나의 물체가 정지해 있는지 아니면 움직이는지는 관측자에 따라 달라진다. 정지한 전하에 의해 전기장이 생기고 움직이는 전하에 의해 자기장이 생기므로, 전기장과 자기장의 세기 또한 관측자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한 전하를 정지해 있다고 보는 관측자에게는 전기장이 나타나고, 이 전하를 움직인다고 관측하는 관측자에게는 자기장이 나타난다. 이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근원적으로는 같은 현상이라는 것이다. 전자기학을 종합한 맥스웰의 네 방정식은 상대성이론에서는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통합된다.
(주2)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입자들과 한 물체 사이에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이 한 물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을 모두 더하면 지구 중력이 된다. 뉴턴은 자신이 만든 적분을 사용하여 이를 증명했다. 적분은 미세하게 나눈(分) 것을 더하는(積) 계산이다.
(주3) 패러데이의 장은 원래 전자기장에 대한 것이었다. 전자기장이 중력보다 세기는 크지만, 거의 모든 원자는 중성이어서 우주의 전체적인 운동이나 진화는 거의 전적으로 만유인력에 의해 진행된다. 존재자에 의한 시공간의 변화도 만유인력에 의한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만유인력만 다룬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의상조사 법성게 강설 ②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하나가 전체고, 전체가 하나로 제법이 융통무애하기 때문에 무량한 원겁이 즉 일념이고 일념 이대로가 무량원겁…
성철스님 /
-
아득히 멀고 먼 따왕사원
따왕사원이 자리 잡은 아루나찰주는 아득히 멀다. 거대한 인도대륙에서도 최동북부에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이름마저도 ‘해가 뜨는 곳’으로 불린다. 북쪽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방글라데시, 동쪽으로는…
김규현 /
-
독일 ❶ 독일에 불법을 펼쳐 온 함부르크불교협회
이 글에서는 함부르크불교협회를 소개하고, 지난 70년의 역사와 함께 협회가 추구하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제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여정과 함부르크불교협회로 오게 된 이야기도 함께 나누…
고경 필자 /
-
지금 바로 이 순간, 연근 톳밥
요즘 우리 사회는 있지도 않은 행복을 과장하고 자랑하기 위해 사는 삶보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사는 삶으로 피로감을 줄이고,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행복감을 주는지 알아가는 중이란…
박성희 /
-
원불願佛, 나를 향상의 길로 이끄는 부처님들
질문요즘은 어느 사찰에서나 원불願佛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냥 석가모니불만 조성하는 사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을 조성하지요. 그런데 원불을 모실 때 개개인마다 …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