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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쌍차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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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4 22:06  /   조회6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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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을 어지럽히던 손오공은 부처님의 손이 변한 오행산에 깔려 불이중도의 이치를 체화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500년의 시간이 끝나갈 때쯤 삼장이 경전을 구하기 위한 서천 여행을 시작한다. 당시 삼장법사 현장은 당태종이 거행하는 수륙재의 법주로 추대된 상황이었다. 삼장이 막 법단에 올라 설법을 하는데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그것을 비판한다. 삼장이 설하는 법이 소승이므로 대승불법을 구해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1. 경전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돈황 벽화).

 

이에 삼장은 황제의 부촉을 받아 서천여행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중국과 서천의 경계가 되는 두 갈래 고개[쌍차령雙叉嶺]에서 요마의 함정에 빠진다. 그를 잡은 것은 호랑이 요마였다. 호랑이는 친구인 곰 요마·소 요마와 함께 두 명의 시종을 잡아먹어 버린다. 이때 태백금성太白金星이 나타나 삼장을 구해 큰길로 안내해 주지만, 그는 다시 호랑이와 독사와 독충들에게 포위되어 버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백흠劉伯欽이라는 사냥꾼이 나타나 삼장을 도와 곤경에서 구해준다. 

 

세 요마의 공격을 당하다

 

당태종의 전송을 받으며 중국을 출발한 삼장은 서쪽 변방의 여러 도시를 거쳐 하주위河州衛라는 국경도시에 도착한다. 이곳은 서역과 중국을 나누는 국경이자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전략도시였다. 이 도시가 정식으로 설치된 것은 명나라 때이므로 소설이 창작되던 후대의 상황을 당나라 시대에 적용한 셈이 된다. 어쨌거나 삼장은 그곳의 한 사찰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불교 최고의 지도자에다가 황제와 의형제까지 맺은 신분(실제 역사로 보자면 현장은 불법 출국자로서 체포령이 내려진 상태였다.)의 귀빈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2. 경전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청대 그림).

 

그런데 이곳에 유숙한 삼장은 하루빨리 서천에 도착할 생각에 새벽 2시가 겨우 넘은 시간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 몇십 리를 갔을까? 삼장은 길 없는 산을 만나게 된다. “저 험한 곳을 지나갈 수 있을까? 길을 잃으면 어쩌지?” 이렇게 걱정하는 중에 발을 잘못 디뎌 두 시종과 함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삼장이 함정에 빠지자 요마가 나타나 소리친다. “저것들을 잡아와라!” 삼장이 보니 이마에 흰 털이 있는 호랑이 요마였다. 설상가상으로 곰 요마와 수소 요마가 이곳을 방문한다. 호랑이 요마는 이들과 함께 두 명의 시종을 잡아먹고 삼장은 나중에 먹을 작정으로 남겨둔다.

 

호랑이 요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유기』에서 요마의 크기는 장애의 거칠고 미세함을 반영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여행의 초기에는 거칠고 무거운 장애[麤重煩惱]를 상징하는 크고 흉악한 요마가 나타나고, 뒤로 갈수록 미세한 장애[微細煩惱]를 상징하는 작거나 예쁜 요마들이 나타나게 된다. 호랑이는 크기와 흉악함에서 일등이니까 최초의 장애를 상징하는 요마로 나타난 것이다. 그를 방문한 곰이나 수소 요마도 크기나 흉악함이 엇비슷하다.

 

당연히 그것들은 충동의 힘이 강하면서도 쉽게 감지되는 거친 번뇌를 원관념으로 한다. 그것들은 또한 이제 막 서천여행을 시작한 삼장이 불러낸 요마들이기도 하다. 이들 상호 간의 대화와 삼장의 시종을 잡아 나눠 먹은 부위에 그들의 정체가 암시되어 있다. 요마들이 서로 만나 인사말을 나눈다. 그들의 인사말은 전도망상의 표현이므로 역설로 이해해야 한다.

 

사진 3. 호랑이 요마에게 잡힌 삼장법사 일행.

 

먼저 호랑이 요마에게 곰이 이렇게 인사를 한다. “장군 호랑이[寅將軍]께서는 요즘 일이 잘 풀린다니 축하합니다.” 호랑이가 수행이 잘 풀려 빠른 성취가 있기를 바라는 속성심의 상징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이 호랑이는 시종을 잡아 팔과 다리를 자기 몫으로 먹는다. 수행의 손과 발이 잘린 것이다. 손이 없으니 어떻게 해볼 수단이 없고, 발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빨리 성취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일들이 시시하게 보인다. 이로 인해 팔다리가 잘린 거친 원리주의적 몸통만 남아 수행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산 임금 곰[熊山君]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곰 요마는 어떠한가? 요마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중에 곰은 자신의 근황을 이렇게 말한다. “본분을 지킬 뿐입니다.” 본분을 제대로 지킨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런데 왜 곰은 요마가 되는가? 사실 곰은 본분을 까맣게 잊고 몇 달씩 잠을 자는 동물이다. 수행에 들어가면 곰의 잠과 유사한 비자각 상태가 수행을 방해한다. 혼침이다. 아니나 다를까! 곰 요마는 두 시종의 머리를 자기 몫으로 먹는다. 머리가 없으므로 밝은 관찰과 자각이 없다. 곰 요마는 혼침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사 수소[特處士]는 어떠한가? 수소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때에 따를 뿐입니다.” 이 말 역시 사실과 정반대다. 순종을 모르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수소의 특징이다. 높은 뿔을 휘두르며 어느 곳으로 날뛸지 모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수행자에게도 이렇게 휘젓고 날뛰는 장애가 찾아온다. 도거掉擧, 혹은 산란이다. 그래서 수소는 자기 몫으로 두 시종의 심장과 간을 먹는다. 내면적 안정과 실속이 사라진 상태에 대한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호랑이와 같은 속성심에 사로잡혀 요령 없이 서둘기만 하다가 곰과 같은 혼침, 수소와 같은 산란에 빠져 버린 것이 삼장의 현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그것이 서천 여행에서 최초로 맞이하는 숙제이다.

 

태백금성의 구원

 

그렇게 삼장법사는 호랑이 요마와 곰 요마와 수소 요마가 자신의 두 시종을 잡아먹는 것을 목도한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어 날이 밝은 줄도 모르고, 동서남북이 어딘지도 모른 채 묶여 있는데, 태백금성이 나타나 그를 구해 큰길[大道]까지 안내한다. 그러나 삼장은 얼마 안 있어 다시 호랑이와 뱀과 독충의 무리들에게 포위되고 만다.

 

여기에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세 요마는 왜 삼장을 남겨둔 것일까? 세 명이니까 나누기도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두 시종은 삼장과 한 몸이다. 그들은 산란과 혼침의 반대인 선정과 지혜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런데 두 시종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직 초심자라서 겨우 개념만 세워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삼장[藏]은 우리에게 간직되어 있는 여래장[藏]을 뜻한다. 여래장은 불생불멸이므로 삼장은 묶이거나 갇힐 수는 있지만 죽어서 사라질 수는 없다. “그 본성이 온전하고 맑아서 요마에게 잡아먹힐 수 없다.”고 한 태백금성의 말이 가리키는 바가 이것이다. 

 

사진 4. 삼장법사를 구해주는 태백금성.

 

그런데 어째서 해가 뜬 아침에 태백금성, 즉 금성이 출현한 것일까? 원래 태백금성은 밝은 관찰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가 해가 뜬 아침에 나타났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백주 대낮의 금성 출현을 전하는 역사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낮에 나온 금성은 제대로 된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옛 중국에서는 금성이 새벽녘 동쪽에 있을 때는 계명啓明, 해질녘 서쪽에 있을 때는 태백太白(아주 밝은 별)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서쪽 여행을 하는 삼장에게 서쪽에 뜨는 태백금성은 서천을 가리키는 방향타로써의 의미, 밝은 비춤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 방향 지시와 밝은 비춤에 의해 삼장은 요마의 미궁에서 빠져나와 큰길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금성이 밝은 대낮에 나왔으므로 향도별로써나 밝음으로나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삼장이 큰길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호랑이, 뱀, 독충, 괴수 무리에게 포위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천행을 막 시작한 입장에서 아직 방향도 헷갈리고, 밝게 비춰보는 일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쌍차령의 사냥꾼, 유백흠

 

그렇게 삼장이 요괴에게 두 시종을 잡아 먹히고 태백금성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했다가 다시 맹수와 독충들에게 포위된 곳은 쌍차령雙叉嶺이라는 고개였다. 쌍차령은 두[雙] 갈래[叉] 고개[嶺]라는 뜻이다. 이 갈래 길에서 곤경에 빠진 삼장에게 유백흠劉伯欽이라는 사냥꾼이 나타난다. 그가 나타나자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맹수와 뱀과 독충들이 모두 달아나 버린다. 맹수와 뱀과 독충의 무리들로 상징되는 다양한 번뇌들을 일거에 사라지게 한 것이다. 이 유백흠은 진정한 수행 의지의 촉발과 그것에서 기인하는 강한 수행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사진 5. 유백흠의 출현에 달아나는 맹수와 뱀들.

 

많은 이들이 서천 여행의 길에 나서지만 누구나 제대로 된 궤도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간절한 궁금증에 의해 추동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장만 해도 그렇다. 그의 서천 여행은 진정한 자기 탐구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막연한 선망과 당나라 황제의 격려로 시작된 것이었다. 심지어 삼장에게는 일종의 변형된 영웅심리까지 발견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처음의 수행은 일종의 흉내에 가깝다. 물론 당사자는 그것을 모른다. 나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삼장만 해도 집중과 관찰이라는 두 시종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속성심과 과잉 의지 그 자체가 두 시종을 혼침과 산란이라는 요마에 바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후 태백금성의 출현으로 갈 길이 분명해진 듯 했지만 다시 길을 잃고 호랑이와 독사와 독충과 괴수들에게 포위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수행의 장애는 곧 수행의 진전이기도 하다. 지움 자신의 계획이나 일거수 일투족이 장애에 가로막히는 것을 목도한 삼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마음이 된다. 이때 전혀 다른 차원이 열린다. 자포자기적 마음이 되어 오직 맡길 뿐인 마음이 된 것이다. 바로 수행이 힘을 얻는 시점으로서 용맹한 사냥꾼 유백흠의 출현이 그것을 상징한다. 그렇게 유백흠이 나타나자 모든 맹수와 독충이 저절로 사라진다.

 

육식 유백흠과 채식 삼장의 겸상

 

유백흠은 삼장을 구해주고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돌아가는 중에 호랑이까지 한 마리 잡아 삼장에게 대접해 주겠다고 한다. 삼장은 자신이 육식을 하지 않음을 밝힌다. 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길을 택하겠다(과하다! 과하므로 문제가 된다. 더구나 육식을 금하는 계율은 중국에서 발명한 것이다.)는 것이다. 이에 유백흠의 모친이 고기 냄새와 기름이 밴 솥을 잘 씻어 나물 반찬과 강냉이밥을 지어 올린다. 삼장은 온갖 짐승들의 고기를 쌓아놓고 먹는 유백흠과 겸상으로 채식 공양을 든다. 식사 후에는 유백흠의 집을 구경하는데 정자에는 각종 살벌한 무기와 호랑이 가죽이 널려 있고, 정원에는 유백흠이 키우는 사슴과 노루가 뛰놀고 있었다.

 

유백흠의 육식은 어마어마하다. 호랑이 고기, 노루 고기, 뱀 고기, 여우 고기, 토끼 고기를 쟁반 가득 담아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는 진정한 수행의 동기와 그것에서 기인하는 강력한 수행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호랑이 등이 상징하는 번뇌를 잡아먹는 힘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유백흠의 육식은 번뇌와 싸워서 극복하는 방식의 수행을 상징한다.

 

사진 6. 삼장법사를 집으로 초대하는 유백흠.

 

이 유위적 공부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그 한계도 분명하다. 극복하는 주체와 극복의 대상이 둘로 나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싸움에서 이길수록 그 주체가 강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진산태보鎭山太保라는 그의 별명이 가리키는 바가 이것이다. 진산태보는 산을 제압하는[鎭山] 우두머리[太保]라는 뜻이다. 번뇌의 산을 제압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와 동시에 강력한 우두머리라는 주체가 세워지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불교수행의 길에서 그것은 새로운 숙제의 대두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삼장의 채식은 무위적 수행, 맡겨놓는 수행의 길을 상징한다. 아직 제대로 된 힘을 얻지는 못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본격적인 수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채식 삼장이 육식 유백흠과 겸상을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한 상에서 식사를 했으니까 육식과 채식의 공존이라 할까? 유위적 싸움과 무위적 내려놓음의 공존이라 할까? 그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쌍차령의 이야기에는 수행의 획기적 전기가 되는 지점을 가리키는 상징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남은 얘기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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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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