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자연의 선물,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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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5 년 1 월 [통권 제141호] / / 작성일25-01-04 21:45 / 조회160회 / 댓글0건본문
유네스코가 우리나라 김장문화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변화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김장 인구가 점점 줄어들면서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문화도 점차 사라져 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네스코가 우리나라의 김장문화를 소중한 유산으로 인정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물론 마을공동체에서 가족공동체로 축소되긴 하였지만 김장문화는 아직도 우리나라 가족 행사 중에 가장 즐거운 모임문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김장할 때는 기가 막힌 레시피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집집마다 기억하는 김치의 맛이 있으므로 그 맛을 찾아서 양념을 하고 맞춰 나간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기억하는 맛이 최고의 레시피가 되는 셈입니다. 혀가 기억하고, 향기가 기억하고, 그리고 가족의 추억이 기억하는 맛이 바로 우리집 최고의 김장맛이 됩니다. 유네스코가 김치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김장문화를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이 된 한국의 장문화
김장문화에 이어 작년 2024년 12월 3일 드디어 한국의 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장 담그기 문화가 공동체 문화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하고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는 평가입니다.
사찰음식은 장을 기본양념으로 활용하는 한식의 틀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음식입니다. 절메주, 절된장, 절간장이라는 말로 사찰의 장은 일반 장보다 특별하게 여기기도 하였으니 거기에는 분명 중요한 포인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통의 맛과 지혜가 담긴 장담그기 문화는 미래의 씨앗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사람을 건강하게 연결시키는 발효醱酵의 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발효는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기다림과 정성을 통해 완성되는 장은 철학적이고 끈끈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단순히 음식에 지나지 않은 소중한 가치를 담아 만들어지는 장이기에 정말 장한 음식입니다.
장 담그러 절로 절로
장 담그기 문화는 장을 담그는 행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콩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콩 한 알 한 알이 어떤 과정을 통해 수확되는지, 재배 과정에서부터 메주를 쑤는 일까지 공동체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기에 장 담그기 문화는 씨앗을 심는 순간부터 장이 발효되는 시간까지 모든 시간을 통틀어 그 의미를 달리합니다.
유네스코는 장 담그기의 문화적 배경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벽사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의식과 장독대를 지키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은 정성과 사랑이라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인류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2025년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의 문을 열며 장 담그기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고경》과 함께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지난 원고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월장을 담그는 일은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 풍습입니다. 지금 정월달이 되었고, 우리는 장을 담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정월 장을 담그기 위해서는 미리 메주를 만들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장을 직접 담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장을 담기로 마음을 내셨다면 발효가 잘된 메주를 구입해서 사용할 것을 추천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해남에서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신 장을 먹었지만 장 담그기에 관심을 갖고 아파트와 전원주택에서 여러 번 만들어 보고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청정한 곳에서 장 담그기 행사도 진행하게 되었고, 스님들의 장담그기 비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장 담그기 행사를 시작으로 장 가르기까지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좋은 콩을 선별하고 메주를 만드는 과정부터 발효까지 완벽하게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찰에서도 장 담그기 행사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장독을 분양하고 함께 담그는 문화를 이끄시는 스님들이 계시니 가까운 곳에서 배움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궁중음식 속에 사찰음식
조선시대 고조리서 중에 학자인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와 조선 말기 요리책으로 지은이가 밝혀지지 않은 『시의전서』에는 장김치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색李穡은 『목은고牧隱藁』에서 “개성 사람 유순이 우엉, 파, 무와 함께 침채장沈菜醬을 보내 왔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의 침채장 역시 일종의 장김치입니다.
지난 정월달에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을 통해 장 담그기에 대해 자세히 배워 보았으니, 이번에는 장김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에 궁에서는 장고醬庫를 만들어 장독대를 지키는 장고마마라는 소임을 주어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간장과 된장을 갈라서 사용하지만 궁에서는 된장보다 간장을 매우 귀하게 여겼으며, 궁중음식은 간장으로 양념하는 음식이 대부분입니다. 하여 장김치 역시 궁중음식의 대표적인 음식이었습니다.
장김치는 소금 대신 간장으로 절이고 간을 하여 밤, 잣, 석이버섯, 배 등을 넣어 국물을 넉넉하게 부어서 만든 김치입니다. 장김치의 종류인 벼락김치나 장통김치의 요리에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면 사찰음식의 장김치와 만드는 법이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강은 들어가되 마늘은 들어가지 않았고, 미나리는 들어가되 파는 넣지 않았으며, 간장을 넣되 젓갈은 넣지 않았습니다.
궁중음식과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궁중음식 속에서 사찰음식을 찾아내고, 사찰음식 속에서 궁중음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귀한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장김치는 주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서 발달할 수밖에 없던 음식이었습니다. 장김치는 궁중과 가까이에 거주하던 관리 계급, 또는 이들과 문화 교류가 가능한 지방의 양반층에서 즐겨 먹던 김치였습니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떡을 안주로 올린 주안상이나 떡국상에 올렸던 기록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잘 발효된 간장으로 장김치沈醬葅 담그는 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장김치沈醬葅
【 재료 】
재료_ 배추 1통, 무 1개, 배 1개, 토종갓 300그램, 생강 1톨, 잣, 밤, 석이버섯, 실고추.
채소절임 재료_ 진간장, 소금.
국물 재료_ 끓여서 식힌 물, 간장, 소금, 꿀(조청).
【 만드는 법 】
1. 무와 배추, 갓은 깨끗이 씻어 준비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줍니다.
2. 준비된 채소에 진간장을 넣고 절여 주세요.
3. 배, 생강, 밤, 석이버섯을 얇게 썰어 준비합니다.
4. 준비된 채소에 식힌 물을 넣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줍니다.
5. 꿀이나 조청을 넣고 간을 맞춰 줍니다.
6. 바로 먹는 물김치로 잣과 실고추를 띄워 고명을 올려 냅니다.
TIP.
- 생강은 빻지 않고 얇게 저며서 사용합니다.
- 주로 겨울에 먹는 김치이지만 지금은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채소를 넣어 만들어 먹으면 좋습니다.
- 소금에 절인 채소에 간장 달임물을 만들어 넣으셔도 좋습니다.
- 채소를 통으로 담글 때는 장을 끓여서 한 김 나가면 부어 주는데 오래 먹을 때는 장을 한 번 더 끓여 식혀서 부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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